저자 : 잭 피니 (Jack Finney, 1911∼1995)
1911년 미국 위스콘신 주 밀워키에서 태어났고, 본명은 월터 브레이든 피니Walter Braden Finney 이다. 뉴욕의 〈피츠제럴드 샘플〉이라는 광고회사에서 카피라이터로 근무하며 소설을 쓰기 시작했다. 1947년에 추리소설잡지인 《엘러리 퀸즈 미스터리 매거진EQMM》의 신인상을 받은 후, 미스터리와 스릴러와 SF를 넘나드는 우아하고도 독특한 작풍의 단편들을 《콜리어즈》를 위시한 고급 잡지에 잇달아 발표함으로써 두각을 나타냈다.
잭 피니는 1955년에 출간된 『바디 스내처The Body Snatchers』를 계기로 과학소설계의 총아가 된다. 이 책이 출간된 다음 해에 영화화된 돈 시겔 감독의 걸작 『Invasion Of The Body Snatchers』(1956)를 필두로, 1993년까지 할리우드에서 무려 세 번이나 영화화되기도 한 이 작품에서, 피니는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난 뒤 냉전시대에 현대인이 느끼던 잠재적인 위협감이 사회 전체의 편집증으로 변해 가는 과정을 때로는 우화적으로, 때로는 소름끼칠 정도로 리얼하게 묘사한 것으로 평가받고 있다.
미국의 전형적인 소도시에서 평화로운 일상생활에 젖은 등장인물들이 아무도 모르는 사이 외계인들의 침략에 의해 잠식당한다는 플롯이 독자들에게 준 충격은 실로 강렬한 것이었고, 그런 맥락에서 『바디 스내처』는 잭 피니의 가장 유력한 대표작으로 간주된다.
스릴러성이 농후한 『바디 스내처』와 더불어 잭 피니에게 명성을 안겨 준 것은 시간여행에 관한 여러 작품들이다. 단편집 『지하 3층The Third Level』(1957)을 발표하면서 그는 복고적 향취가 물씬 풍기는 감상적인 단편들로 큰 성공을 거뒀고, 1963년에 출간된 『게일즈버그의 봄을 사랑한다I Love Galesburg in the Springtime』에서는 다시 한 번 시간여행을 비롯한 여러 환상적인 소재들을 매력적이고 우아한 그만의 독특한 스타일로 풀어냄으로써 서정파 SF의 거두인 레이 브래드베리에 버금가는 정서적인 독서의 즐거움을 선사했다.
이후 계속 시간여행의 개념에 심취한 피니는 1968년 『우드로우 윌슨의 은화The Woodrow Wilson Dime』를 발표했다. 작가 자신을 연상시키는 뉴욕의 광고 카피라이터 벤을 주인공 삼아, 미 대통령 우드로우 윌슨의 얼굴이 찍힌 10센트짜리 동전을 통해 시간여행을 한다는 이 소설은 이후 잭 피니의 시간여행을 소재로 한 다른 작품들을 예견하게 하는 보석과도 같은 소품이다.
1970년에는 그의 대표작이라고 할 수 있는 『과거로 돌아가면Time And Again』이 출간된다. 뉴욕에서 근무하는 사이먼 몰리라는 사내가 정부의 극비 프로젝트에 참가하여 일종의 심리적 능력을 이용해서 과거의 뉴욕으로 시간여행을 한다는 내용의 이 작품은, 1882년 뉴욕의 분위기를 살리기 위해 다양한 사진과 신문 스크랩을 소설 내에서 효과적으로 사용하고 있다. 피니는 주인공 몰리가 과거로의 여행에서 사랑에 빠지면서 정부의 극비 프로젝트의 성패를 좌지우지하는 운명에 처한다는 내용을 포근한 터치로 묘사하고 있다. 이 장편이 나온 지 25년째 되는 해인 1995년에 잭 피니는 다시 한 번 시간여행을 다룬 후속편격인 『From Time To Time』를 낸다. 1880년대의 뉴욕에 정착한 주인공 사이먼 몰리가 정부의 극비 프로젝트가 다시 진행되고 있음을 알게 되면서 원치 않지만 다시 한 번 모험에 휘말리게 된다는 내용으로, 피니의 가장 큰 장점인 서정성과 의외성이 가득 담긴 인상적인 작품이다.
『바디 스내처』에서든, 시간여행을 소재로 한 다양한 장·단편에서든, 잭 피니는 평범하고 안온한 생활에 젖은 미국의 소시민을 등장시켜 때로는 섬뜩하고 때로는 유쾌한 모험담을 펼침으로써 미국의 백인 중산층이 꿈꾸는 과거의 '좋았던 시절'을 되풀이해서 성공적으로 작품화한 지극히 이색적인 작가임에 틀림없다.
잭 피니는 1995년 11월 14일 고향인 밀 밸리 부근의 종합병원에서 폐렴으로 작고했다.
본명 김상훈. 과학소설 및 판타지 평론가, 번역가, 기획자. 시공사의 '그리폰북스'와 열린책들의 '경계소설'시리즈, 행복한책읽기 'SF총서' 등을 기획했다. 주요 번역 작품으로는 로저 젤라즈니의 『신들의 사회』 『전도서에 바치는 장미』, 알프레드 베스터의 『파괴된 사나이』, 로버트 홀드스톡의 『미사고의 숲』, 그렉 이건의 『쿼런틴』, 테드 창의 『당신 인생의 이야기』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