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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독된 사랑

중독된 사랑

린다하워드 저 | 신영미디어 | 2000년 07월 31일   저자/출판사 더보기/감추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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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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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행일 2000년 07월 31일
쪽수, 무게, 크기 326쪽 | 크기확인중
ISBN13 9788941311973
ISBN10 894131197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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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속으로 책속으로 보이기/감추기

캐서린은 피곤에 젖은 모습으로 슈트케이스를 발치에 내려놓고는 낯익은 얼굴이 눈에 들어오기를 기대하며 공항 대합실 주변을 돌아보았다. 휴스턴 국제 공항은 모처럼의 전몰 장병 기념일 연휴를 이용해 여행을 떠나려는 사람들로 몹시 붐비고 있었다. 그녀는 연결 비행기편에 탑승하려는 승객들 틈에서 이리저리 밀리다가 슈트케이스를 발로 떠밀며 겨우 최악의 혼잡을 벗어난 터였다.

캐서린은 비행기가 그리 일찍 도착한 편이 아니었는데도 자신을 마중하러 나온 사람이 없다는 사실에 슬슬 짜증이 나기 시작했다. 이번 방문이 근 3년 만의 귀향이었으니 틀림없이 모니카가 마중을 나오리라 여기고 있었던 것이다.

"캣!"

하지만 귓전에 울리는 허스키한 목소리와 함께 그녀의 가는 허리를 휘감아 돌려 단단한 몸으로 끌어당기는 남자의 두툼한 손을 느낀 순간, 그녀의 불쾌한 기분은 순식간에 사라지고 말았다. 도무지 무슨 생각을 하는지 전혀 읽을 수 없는 검은 눈동자와 그 위로 내리깔린 길다란 검은 속눈썹이 인상적인 남자의 얼굴이 깜짝 놀란 그녀의 시야를 가득 채웠다. 그리고 남자의 뜨거운 입술이 살짝 벌어진 그녀의 입술을 덮쳤다. 1초, 2초, 3초…… 키스가 점점 깊어짐에 따라 그의 혀가 마치 소유권을 주장하듯 관능적으로 그녀의 입 안을 마구 헤맸다. 그리고 그녀가 충격에서 회복되어 가까스로 저항을 표시하려는 순간, 그가 갑자기 키스를 끝내더니 그녀를 포옹에서 풀어주고 뒤로 물러섰다.

"대체 이게 무슨 짓이에요!"

그녀는 야멸차게 소리를 지르다가 주위 사람들의 미소 띤 시선을 의식하고 양볼을 빨갛게 물들였다.

룰 잭슨은 검은 모자를 다시 깊숙이 눌러썼다. 그리고 그녀가 비쩍 말라서 온통 긴 팔과 다리만 있는 것 같았던 열두 살 소녀 시절부터 익숙히 보아왔던 웃을 듯 말 듯한 미소를 지으며 그녀를 쳐다보았다.

"내 생각에는 우리 둘 다 키스를 즐겼던 것 같은데."

그는 몸을 숙여 그녀의 가방을 집어들었다.

"이게 다야?"

"아뇨."

그녀는 불쾌하다는 듯 그를 쳐다보며 대답했다.

"그렇군."

그는 곧장 몸을 돌려 수화물 대기소로 향했다. 캐서린은 그의 행동에 속으로 무척 화가 났지만 그에겐 그 사실을 숨기겠다고 단단히 결심하며 그의 뒤를 따라갔다. 그녀는 이제 잔뜩 겁먹은 열일곱 살 소녀가 아니라 스물다섯 살이나 된 성인 여자였다. 그러니 더 이상 그가 일방적으로 위압감을 내뿜게 내버려두지 않을 것이다. 게다가 그녀는 그의 고용주이고, 그는 단지 목장을 관리하는 감독에 불과하다. 사춘기 소녀 시절 그녀가 상상했던 것처럼 전지전능한 악마가 아니라.

물론 그는 아직도 모니카와 리키를 수중에 쥐고 있긴 하지만, 모니카가 그녀의 법적 후견인 노릇을 하던 기간도 끝난 마당에 더 이상 그녀에게 복종을 명령할 수는 없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녀는 모니카가 룰을 싫어하는 그녀의 감정이 거의 증오의 수준에 가깝다는 것을 알면서도 일부러 룰에게 마중을 나가라고 시킨 게 아닐까 싶은 의심마저 들었다.

캐서린은 그가 우람한 근육질의 몸을 굽혀 그녀의 이름표가 달린 슈트케이스를 집어드는 모습을 무의식적으로 바라보다 홍수처럼 밀려드는 생각의 흐름에 가까스로 제동을 걸었다. 룰을 만나게 되면 평상시의 침착한 그녀는 온데간데없이 사라지고, 저도 모르게 머리끝까지 분노가 치솟을 때만 보이는 행동을 하곤 했다. 그녀는 그를 증오했다. 그러나 아무리 증오라는 단어가 머릿속에서 메아리쳐도 그녀의 시선은 그동안 그녀가 기억했던 것과 똑같은 그의 넓은 어깨와 늘씬하고도 힘차게 뻗은 다리 사이에서 떠날 줄을 모르는 것이었다.

그는 슈트케이스를 들고 그녀에게로 오더니 질문이라도 하듯 일자눈썹의 한쪽 끝을 치켜올렸다. 아마도 짐이 여러 개라 화가 난 모양이었다. 그는 퉁명스러운 어조로 입을 열었다.

"그리 오래 머물 생각은 아닌 것 같군."

"네, 별로요."

대답하는 그녀의 목소리에는 아무런 느낌도 담겨 있지 않았다. 그녀는 열일곱 살이 되던 그 해 여름 이후 목장에서 오래 머무른 적이 결코 없었던 것이다.

"이제 집으로 돌아와 눌러 살 때가 되지 않았나?"

그가 따지듯이 물었다.

"굳이 그럴 필요는 없잖아요."

그녀도 퉁명스럽게 쏘아붙였다.

룰은 일순 눈을 빛내더니 아무 말 없이 몸을 돌려 사람들 사이를 헤치고 걸어가 버렸다. 캐서린 역시 아무 말 없이 그의 뒤를 따랐다. 룰과는 정상적인 대화가 불가능하다고 느낄 때도 있었지만, 사실은 말이 필요치 않은 관계라고 느낄 때가 더 많았던 것이다. 그녀는 그를 이해하지는 못했지만 그에 대해 많이 알고 있었다. 그의 굳센 자존심이며, 평소에는 잘 드러나지 않지만 무섭도록 강하고 저주하고 싶을 정도로 냉혹한 성격까지 너무나도 잘 알고 있었다. 그리고 그런 그의 영향 아래 성장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였다.
--- 1장중에서
사실 목장에 머무르기로 한 결정이 잘못된 것이라면 결국 그녀의 미래를 희생시키는 셈이 되고 말리라는 사실을 잘 알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런 결정을 내리게 된 건 오늘 사고로 룰 역시 다른 사람들처럼 약한 존재라는 사실을 깨달았기 때문이었다. 룰 역시 얼마든지 사고로 목숨을 잃을 수도 있는 존재라는 사실을 확실히 깨달았던 것이다.

만약 오늘 사고로 그가 죽기라도 했다면 그녀는 평생 후회하며 살아갔을 것이다. 문득 오늘 새벽 그가 프로포즈를 했었다는 사실이 떠올랐다. 구체적으로 무슨 계획을 세우기엔 여전히 혼란스러운 상태였지만, 한 가지 확실한 건 더 이상 도망치는 일은 없을 거라는 사실이었다. 도망치는 것으로는 결코 문제를 해결할 수 없으니까 말이다.
--- p. 218
'더 이상 못 참겠어!'

캐서린은 이를 갈았다. 분노로 잠긴 그녀의 목을 통해 마치 이 세상의 것이 아닌 듯한 거친 쇳소리가 새어나왔다.

'이번엔 아예 끝장을 내고 말겠어!'

'아얏!'

리키는 캐서린이 자신을 침대에서 떼어낸 채 그대로 문으로 끌고 가자 마구 비명을 질렀다.

'얘, 도대체 왜 이러는 거야? 정신 나갔니?'

너무나 화가 난 나머지 캐서린은 더 이상 아무 말도 하지 않고 리키를 복도로 질질 끌어낸 다음 꽝 소리가 나도록 문을 닫아버렸다. 그 바람에 그녀는 제발 돌아오라고 애타게 울부짖는 룰의 목소리도 듣지 못했다. 완전히 이성을 잃은 그녀의 눈앞에 계단 난간이 달콤한 막대 사탕처럼 그녀를 유혹하며 모습을 드러냈다. 다행히도 마지막 순간에 약간 정신이 돌아오는 바람에 그녀는 리키를 계단 아래로 던져 버리고 싶은 충동을 억누를 수 있었다.
--- p.305
그녀는 다시금 심호흡을 하며 마지막 전쟁을 벌이기 전에 마음의 준비를 했다. 룰 잭슨의 독신시대는 이제 얼마남지 않았다. 설사 그가 그녀를 사랑하는게 아니라 해도 아무 상관 없었다. 두 사람의 몫만큼 그녀의 사랑으로 채울 수 있을테니까.이제 다시는 도망치지 않을것이다. 이곳에 정착하기로 결심을 했으니 룰이 목장을 원한다면 그녀도 차지해야 할 것이다. 한 가지만은 확실했다. 다른 여자가 그의 침대로 뛰어드는 꼴만은 절대 참을 수가 없다는 것. 그녀는 가능한 빨리 그와 결혼할 생각이었다. 그리고 지금 즉시 그 문제를 매듭짓기로 작정했다.
--- p.310
그 당시 당신은 너무 어렸어. 내가 원하는 걸 주기에는 너무 어렸지. 그날 강가에서의 일은 절대 의도한 게 아니었어. 다만 당신과 계속해서 그런 사랑을 나누고 싶었을 뿐이지. 당신의 눈동자에서 겁에 질린 표정이 사라지고 내가 당신을 원하는 것처럼 당신의 눈 속에도 나에 대한 욕구가 떠오르는 모습을 보고싶었어. 하지만 난 더 이상 시도하지 못했고, 당신은 도망쳐버렸지. 내가 그때 당신을 붙잡지 못한걸 얼마나 후회했는지 알아? 사실 당신이 데이비드 애쉬와 결혼 한 후 한동안 목장에 돌아오지 않았던 건 정말 현명한 처사였어. 캣, 난 그 남자를 갈기갈기 찢어버리고 싶을 정도로 증오했으니까.
--- p. 321
'가지 마. 오, 맙소사! 베이비, 제발, 가지 마. 다 설명해 줄게. 다 설명해 줄테니 제발 또다시 떠나지만 말아줘.'

캐서린은 다리에 힘을 주었지만 더 이상 그의 체중을 견딜 수가 없었다.

'더 이상 지탱할 수가 없어요.'

그녀는 헉헉거리며 간신히 말했다.

'어서 당신을 침대로 데려가야 하는데.'

'아니'

그는 잔뜩 쉰 목소리로 거부했다. 그의 어깨가 들썩거리는 느낌이 전해졌다.

'또다시 당신을 떠나보낼 순 없어. 그런데 도저히 저 지겨운 침대에서 빠져나와 옷을 걸칠 수가 없는 거야. 내가 잡기 전에 당신이 떠나버릴까 봐 너무 두려웠어. 당신을 다시 못 보게 될 것 같아서......'

그는 더듬더듬 중얼거렸다. 그녀는 자신이 떠나기 전에 붙잡으려고 안간힘을 쓰는 그의 모습을 떠올리며 새삼 목이 메었다.
--- p.311-3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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