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혁개방이 낳은 열여덟살 신신인류 미스 웨이, 열 다섯 나이에 ‘사회’로 나오다
“나 싫으면 팁 안 줘도 상관없어요. 난 원래 이랬어요. 80년대 애들은 모두 그래요. 몰라요? 아무도 형제자매가 없잖아요. 난 TV 앞에서 컸어요. 중학교 1년 다니고 때려치우고 바로 사회로 나왔죠. / 열다섯에 이발소 아가씨를 했어요. 남자들을 숱하게 상대했지만 별 일 없었어요. 거기 오는 남자들 여자애 몸 만지잖아요. 근데 정말! 만지는 것도 정도가 있지, 너무 심하잖아요. 징그러워서 때려치우고 디스코텍 댄서를 했죠. (...) 너무 쪼들려서, 열여섯 살 넘어서 동거 시작했죠. 둘이면 방값 덜 드니까. 난 장신저 노랠 좋아해요. 첫날밤을 그 사람 노랠 들으며 끝냈죠. 처음에 그 남자애가 내 방에 눌러 앉더니 안 가요. 마주보고 있으니까 걔가 꼴리나 봐요. 난 “풋!” 하고 웃고 말았죠. 갑자기 엄청 흥분해가지고 옷을 벗더니 확 달려들어요. 내 몸 위에 막 올라타더라고요. 할 수 있나요?
--- 본문중에서
“옛날엔, 밤중에 똥을 훔치는 사람까지 있었지. 그러다가 거민위원회 당직에게 걸리면 감금되고 끌고 온 똥차도 압수당했지. (...) 똥 도둑들 얘기가 나오면, 다들 “수정주의와 투쟁하자”라는 마오주석 말을 인용했지. ‘똥 훔치는 것은 류샤오치처럼 남을 해치고 자기이익만 챙기는 거’라면서 말이야.
<똥오줌 좀 훔치는 거 가지고 사상이 어쩌고 하는 거, 좀 지나치군요.>
모든 게 국가의 재산이잖아? 예전엔 화학비료가 귀해서 농촌에서는 주로 자연비료를 쓰니까 똥은 보물이나 다름없지. 우리는 담당기관이니까, 퍼낸 똥의 양이 많고 질이 좋으면 상부의 지시에 따라 훙광공사에 보내지. 근데 이거 뽀다구 나는 일이었어. 훙광공사와 마오주석은 관계가 깊으니까 농업의 모범이 돼야 할 거 아냐? 농사지은 농작물은 당연히 가장 좋아야 했지. 풍작을 거두지 않으면 안 되는 거야. 매년 서로 격려하면서 ‘비료’도 보냈고, 똥차 앞에도 엄청 큰 붉은 꽃을 걸었지. 다른 기관이나 학교도 비료를 보냈는데, 훙광공사에 보내는 건 아니었어. 그 사람들의 ‘비료’는 도랑의 진흙이나 잡초가 태반이고 질도 한참 떨어져. 하지만 대단한 장관이었지.
--- 본문중에서
뤄웨사 아주머니네는 그야말로 평범한 노동자 가족입니다. 그러나 이 가족의 운명은 대약진운동과 문화대혁명의 물결에 휩쓸립니다. 아주머니의 가족은 둘이 대약진운동의 후유증이 중국을 휩쓸 때 굶어죽고, 문혁 때는 가족들끼리 정치노선이 달라 4개 파로 나눠져 싸웁니다. 남편과 아내가, 그리고 처남이 각각 다른 조직에 들었던 거죠. 모두 모택동 주석에게 충성한다는 뜻은 한가지였습니다만.
“우리 식구는 모두 7명인데 61년도에 둘이 굶어죽었어. 그리고 다섯이 남았는데 문혁 때는 4개 파로 갈렸지. 나는 버스 안내양을 하고 있었는데 대세에 따라 정통 조반파인 ‘청두 노동자 혁명 조반병단’에 가입했어. 남편 류용강은 쓰촨면방직창 식당에서 일했는데 역시 대세를 따라 정통 보황파인 ‘산업군’에 가입했지.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나서 어머니는 별 하는 일이 없어서 자연히 관망파가 됐어. 동생은 노삼계 고등학생이었는데 ‘홍위병청두부대’에 가입했어. 분위기 장난 아니지?
모두가 마오주석을 보위한다는 생각은 마찬가지야. 하지만 서로 가족 중에 누군가 반란을 기도하고 있다고 생각했지. 예를 들어, 남편은 겨우 식당에서 밥이나 짓고 배운 것도 없는 인간이야. 정말 배고픈 게 절박하지 않았으면 나같이 괜찮은 여자가 그런 인간에게 시집갈 리 만무하지. 그 인간도 참 복도 없어. 맨날 지 마누라 눈치만 살피고 살았으니 말이야. 하지만 오랫동안 같이 살다 보니 서로 떼려야 뗄 수 없게 되어버렸지. 하지만 말이지. 문혁이 뭘 못 떼 놓겠어? 우리 남편 그 인간 완전 구닥다리에다 꼴통이야. 자기가 뭘 틀렸는지 알지도 못하고 헤매. 그래서 나하고 동생하고 그 인간을 쫓아내기로 했지. 그랬더니 그 인간 진짜 짐 싸들고 나가 버렸어!”
--- 본문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