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정희는 언제나 자신의 영혼을 있는 그대로 열어 보이고 영혼을 밖으로 다른 사람에게로 향하게 한다. 그녀에게는 자신을 인식하는 것과 자기 아닌 것을 포착하는 것이 하나가 된다. 그녀는 자기로부터 빠져나와서 다른 것/사람과 하나가 되는 순간에만 자기의식을 풍요롭게 체험한다. 그녀는 일체의 도덕적 고정관념을 부정하고 병과 죄를 넘어서 살며 사랑하는 즐거움을 보여 준다. 그녀는 세계가 막 새롭게 시작되고 있다는 것과 순간순간이 모두 유일하다는 것을 분명하게 알고 있다.
말의 힘으로 그녀는 삶을 다시 시작하려고 시도한다. 한 줄에 평생을 탕진했다던 여자가 이제는 시를 버리고 욕망을 버리고 구름과 공허를 택하겠다고 한다. 침묵도 이제는 최고의 가치가 아니다. 그녀는 디오게네스처럼 대낮에 등불을 들고 어떤 사람을 찾아 방황한다. 그녀가 찾는 사람은 바로 자기 자신이다. 찾는 사람이 찾아다니는 사람과 동일하다. 나는 누구인가? 나는 어디에 있는가? 나는 내가 모르는 곳에 있다. 자기에 대하여 정절을 지키려면 방황하지 않을 수 없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김인환(문학평론가,고려대 국문과 교수)
시집 『다산의 처녀』에서 드러나는 것은 창조를 향한 여성의 은밀한 내면이다. 그리움과 막막함과 외로움과 슬픔, 그러한 감정들이 몸 안에 갇혀 있을 때 시인은 고통을 겪지만 그 고통으로 인해 시를 잉태하고 출산을 준비하게 된다. 흥미로운 것은 이런 출산이 처녀에게서 가능하다는 점이다. 숫처녀일수록 훌륭한 시를 잉태하게 되고 빼어난 시를 탄생하게 한다. 그렇다면 시인은 영원히 처녀로 존재해야 하는가? 그렇다. 온 우주 만물은 숫처녀인 창조주가 출산해 놓은 작품이며 그 경이로운 대상들을 사랑과 설렘과 최초의 언어로 노래할 수 있는 것은 바로 처녀들인 것이다. 그리하여 환멸로 가득한 세상에서도 시인이 꿈꾸는 것은 순결한 처녀자리이며 아름다운 다산이다. 그 꿈이 이루어질 때 여시인은 비로소 여신의 자리에 오르는 것이리라. 최승호(시인,숭실대 문창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