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요타는 과거에 일본에서는 40%, 미국에서는 10%의 시장 점유율을 보였지만, 유럽에서는 겨우 4%에 지나지 않았다. 따라서 유럽 공략의 일환으로 도요타로서는 극히 드물게 비츠의 디자인을 유럽에서 채용한 그리스인 디자이너 소드리스 코보스에게 부탁했는데, 그 선택은 적중하여 일본 차로는 두 번째로 ‘올해의 유럽 차’를 수상했다. 이처럼 비츠는 분명히 세계 전략차를 염두에 두고 계획된 프로젝트였으며, 도요타의 가장 취약지였던 유럽에서도 성공을 거둠으로써 앞으로의 상황 전개에도 자신을 갖게 되었다.
조사에 의하면 자동차 구입 동기의 첫째 조건이 디자인이라고 하는데, 그것은 지금까지 일본차가 유럽으로 진출하는 데 가장 큰 걸림돌이었다. 그런데 갑자기 비츠를 디자인한 공로로 주목을 받던 코보스가 세 배의 연봉을 받기로 하고 독일 자동차 업체로 자리를 옮겼다. 이 일로 당황한 도요타는 재빨리 프랑스의 유명한 휴양지 니스에 디자인 개발거점을 두고 있는 디자이너들에게 공적에 따라 차등 지불하는 새로운 보너스 제도를 도입해 인재를 확보하기로 한다. 코보스로 인해 도요타는 일본과 다른 고용제도를 요구하는 유럽의 현실을 새삼스럽게 배울 수 있었다. --- p.178 [도요타의 플랫폼 통합화]
1990년대 후반, 국경을 넘나드는 합병과 자본 참여에 의한 그룹화라는 태풍이 불어닥쳤다. 앞에서도 소개했지만 최대의 계기가 된 것은 말할 것도 없이 벤츠와 크라이슬러 사이에 이루어진 전격적인 합병이었다. 당시 미국 ‘빅3’의 하나인 크라이슬러는 소형차 생산 기술을 향상시키고 미국 시장에서 선두를 차지하기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었다.
이미 대담한 노선 전환으로 격동 속의 중심 인물이 된 다임러 벤츠 회장 슈렘프의 맹렬한 공세에 위기감을 느낀 GMㆍ도요타ㆍ포드ㆍ폴크스바겐ㆍ르노ㆍBMW 등은 즉각 반응을 보였다. 각 회사가 서로 뒤엉켜 자리를 빼앗는 합종연횡이 시작된 것이다.
1997년부터 2000년의 3년 동안 각 기업들은 가장 좋은 상대를 찾아 무리할 정도로 제휴를 하거나 합병 교섭을 진행시켰다. 닛산은 르노의 경영 참여를 받아들여 ‘약자 연합’이라는 문구가 신문에 나기도 했다. 르노와 협상을 맺기 전 닛산은 4조 3천억 엔의 유이자 부채로 인해 은행에서 대출을 거부당하는 등 자금이 제대로 조달되지 않았다. 궁지에 몰린 닛산은 결국 회사의 운명을 맡기는 일대의 자본 제휴를 단행한 것이다. 그런데 그 과정에서 제휴 상대로 가장 유력했던 벤츠나 포드와 사소한 오해로 인해 결국 르노와 협상이 이루어진 내막이 있어 매우 흥미롭다. --- p.187 [세계 자동차 업계의 합종연횡 바람]
모터리제이션이 본격적으로 시작되기도 전에 아시아의 도시 지역에서는 이미 심각한 문제가 일어나고 있다. 교통 체증은 물론이거니와 배기가스나 공장의 매연, 석탄 등으로 인해 선진국보다 훨씬 대기오염이 심각하다. 차가 낡고 배기가스 대책이 시행되지 않기 때문인데, 앞으로 공업화의 진전과 더불어 공해가 점점 심화될 우려가 있다.
에너지 수급 문제도 심각하다. 13억 인구를 가지고 있는 중국은 이미 석유 수입국으로 바뀌고 있다. 더욱이 인구 10억의 인도, 5억의 ASEAN 여러 나라 등 아시아의 인구는 방대하다. 이들 지역에 모터리제이션의 파동이 밀어닥치면 세계의 자동차 보유대수는 일거에 상승하고, 이에 따른 에너지 개발 문제가 대두되어 석유 파동과 가격 폭등이라는 상황을 맞이할 것이다. 그렇게 되면 에너지의 문명사적 전환이 불가피해질 것이 뻔하다. 이제 아시아 각국에서도 저연비 엔진, 배기가스 대책, 대체 연료차의 기술개발 및 보급이 보다 활발하게 진척되지 않으면 안 될 것이다. --- p.230 [아시아 자동차 산업의 미래]
그 동안 자동차 업계를 둘러싼 정세는 크게 달라졌다. 지구 온난화 현상, 대기오염 등으로 자동차 업계는 발등에 불이 떨어졌다. 대기오염의 주요 원인 중 하나가 자동차에서 나오는 배기가스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현실에 대해 자동차 업계가 무언가 조치를 취해야 할 필요가 있었음은 두말할 나위도 없지만, 환경대책이나 자원고갈 대책에 주어진 시간은 너무 부족했다.
지구 온난화 방지 조약회의에서 세계 각국이 합의한 ‘교토 의정서’는 지구 환경에 대해 유효한 대책을 세우는 한도시기를 2012년으로 정하고 있다. 대체 에너지차는 인프라를 포함하여 2010년부터 2015년경에는 반드시 완성시켜야 할 필요가 있다. 세계 자동차 산업의 생존 게임에서 살아남기 위해서라도 배기가스 대폭 감축, 연비 향상, 대체 에너지차 개발 등은 시급한 과제가 되었다. --- p.337 [세계의 자동차 산업, 변해야 산다]
현대 차 관계자는 “1990년대 후반 미국 시장에서 퇴출 1순위로 지목받던 현대 차가 올해 J. D. 파워의 신차 품질평가에서 도요타에 이어 혼다와 함께 2위(회사부문)를 차지한 것은 이러한 품질경영의 결과”라고 말했다. 최근에는 유수한 외국 자동차 업체가 품질경영을 벤치마킹하기 위해 문의해 올 정도이다.
현대 차가 품질과 기술로 이룬 장족의 발전은 긍정적인 평가를 받을 만하다. 그러나 전문가들은 아직 샴페인을 터트릴 때는 아니라고 강조한다. 원천기술, 주요부품, 디자인, 도장 등 전반적인 분야에서 우리나라 자동차 산업의 경쟁력은 여전히 선진국 업체를 따라잡지 못하고 있다. 특히 미래 자동차 시장의 핵심이 될 연료전지, 친환경 분야의 기술 차이는 쉽게 좁혀지지 않고 있다.
기술 경쟁력 확보와 함께 한국 자동차 산업이 풀어야 할 또 하나의 과제는 진정한 세계화의 실현이다. 현대 차의 올해 미국 판매실적이 기아 차와 비교할 때 상대적으로 부진한 것과 관련, 일각에선 지난해 현대 차 미 법인의 미국인 수뇌부가 대거 이탈한 사실에 주목한다. 진정한 의미의 현지화가 아쉬운 대목이다.
그러나 한국 자동차 산업이 세계 4강에 진입하기 위해 극복해야 할 가장 큰 과제는 무엇보다 대립적인 노사관계의 극복이다. 우리 자동차 산업의 고질병으로 지적되는 노사 분규는 생산, 수출, 투자 차질 등을 초래하며, 한국 자동차 산업의 경쟁력을 위협하고 있다. 저임금과 높은 생산성으로 단기간에 성장한 자동차 산업이 90년대 이후 임금 인상을 따라가지 못하는 생산성 둔화로 경쟁력을 상실하고 있는 것이다. --- p.376 [생존의 키워드는 기술ㆍ세계화ㆍ노사관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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