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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필 명상

연필 명상

: 내 마음이 보이는 그림 수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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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상/치유 에세이 top100 8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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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품목정보
발행일 2014년 08월 18일
쪽수, 무게, 크기 192쪽 | 374g | 152*200*14mm
ISBN13 9788994747309
ISBN10 8994747303

책소개 책소개 보이기/감추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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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 날 아침은 화창한 봄날이었다. 저렴한 스케치북과 연필을 나눠주고 바깥으로 나가 워크숍을 진행했다. 나는 참석한 사람들을 잔디밭으로 데리고 가서 이렇게 말했다.
“서로 최소한 2미터 정도 떨어져서 아무 데나 앉으세요. 말은 하지 말고 그냥 앉아서 긴장을 풀어요.
무엇이든 앞에 있는 대상에 눈길을 주세요. 작은 나무일 수도 있고, 관목일 수도 있고, 큰 나무일 수도 있고, 그냥 풀일 수도 있겠죠.
자, 5분 동안 눈을 감으세요.
이제 눈을 뜨고 작은 나무든, 풀잎이든, 민들레든 앞서 본 것에 집중하세요. 마주본다는 느낌이 들 때까지 그 눈을 들여다보세요.
이 세상에 당신과 그 대상만 남았다고 느끼세요. 그 대상이 우주에서 가장 중요하다고 느끼세요. 눈앞에 있는 그것이 생사의 모든 수수께끼를 품었다고 느끼세요.
정말로 그래요!
당신은 더는 바라보는 것이 아니라 보고 있는 겁니다.
이제 초점을 유지한 채로 느슨하게 연필을 쥐세요. 눈이 받아들이는 대로 손이 종이 위에서 따라가게 하세요. 연필심으로 윤곽을, 그 잎의 전체 둘레를, 풀의 잔가지를 쓰다듬는다고 느끼세요.
그저 손이 움직이게 하세요! 어떤 그림이 그려지고 있는지 확인하지 마세요. 그건 전혀 중요치 않아요. 연필이 스케치북 밖으로 나가도 괜찮아요. 다시 시작하면 되니까요. 다만 보는 대상에서 눈길을 돌리지 말고, 연필을 떼지 마세요.
그리고 무엇보다 너무 열심히 그리지 마세요. 그리고 있는 대상을 ‘생각’지 마세요. 그저 눈이 보는 대로 손이 따르게 하세요. 보이는 것을 쓰다듬으세요.”
--- pp. 21-23

나는 그리지 않은 것은 결코 진정으로 보지 못한 것임을 배웠다. 그리기 시작할 때 평범한 대상이 얼마나 특별해지는지 모른다. 나무의 갈라져 나간 가지나 민들레 씨앗 방울의 구조가 순전한 기적임을 깨닫는다.
시인 월트 휘트먼은 “생쥐는 수많은 불신자들을 놀라게 할 만큼의 기적이다”라고 말한다. 나는 만물 중에 평범한 것은 하나도 없다는 사실을 발견한다. 모든 것은 보여지고, 그려질 가치가 있다.
--- p. 38

나는 사색하는 방법으로서의 연필 명상이 과도한 자극을 습관적으로 받아 과부하가 걸린 현대인의 성품에 특히 잘 맞는다고 믿는다. 그것은 내가 우리 사회의 습관적이고, 기계적이고, 지루하며, 탐욕스런 자동성으로부터 나를 구출하는 수련이다. 나는 흔들림 없는 주의력으로 언덕, 새, 사람의 얼굴을 그리며 나아가 나 자신과 대면한다.
선사는 “앉거든 그냥 앉아 있고, 흔들거리지 마라!”고 경고했다. 우리는 바쁘게 움직이는 데 길들여졌다. 하지만 눈의 초점을 얼굴과 꽃에 맞추면 흔들거리지 않고 앉아 있는 것이 아마 더 편안하게 느껴질지 모른다. 그리하면 손은 자연스럽게 눈을 따를 것이다.
7세기 선종의 대사 혜능은 자아와 타자 사이의 진정한 관계, 그리고 그가 말한 ‘삼세불三世佛의 지혜’는 우리 마음에 내재하며, 인간이 지닌 영적 자질의 일부임을 지적했다. 그는 이 지혜를 스스로 깨우치는 사람도 있고 스승이 필요한 사람도 있다고 말했다.
“진리는 가만히 앉아서 하는 명상이 아니라 마음을 통해 이해된다.”
--- pp. 50-52

획일적인 학교 교육과 반복적인 훈련에서 살아남은 모든 이의 역사 속에 내면의 미술가가 깨어 있도록 영향을 준 사람들이 있다. 굳이 애쓰지 않아도 단지 존재만으로도 의욕을 북돋워주는 사람들이 있다. 그들이 바로 진정한 스승이다.
바로 떠오르는 사람은 고향의 옷가게에서 일하던 점원이다. 그는 주말이면 혀를 빼물고 앉아 오래된 성곽을 그렸다. 자신이 아는 한 최대한 자세하게 보이는 모든 돌을 모사했다. 그는 자신의 그림을 쑥스럽게 여겼다. 그래서 그는 항상 이렇게 말했다.
“나는 화가가 아냐. 그저 물건들을 베낄 뿐이지.”
그럼에도 그에게 그림은 단지 취미가 아니라 대단히 중요한 일이었다. 나는 그에게 동류의식이 뒤섞인 호감을 느꼈다. 그는 이해할 수 없는 일에 몰두하는 다른 어른들과 달랐기 때문이다. 나는 그에게 내가 그린 그림들을 보여주었다. 그는 아주 진지하게 살피고는 “멈추지 말고 계속 그려. 넌 화가야”라고 말했다. 내게는 그것으로 충분했다.
머릿속에 떠오르는 또 다른 스승은 그림을 전혀 그리지 않았다. 외려 위압적인 느낌을 주는 변호사로 아버지의 법적 대리인이었다.
어느 날 우리는 예고 없이 그를 방문했다. 하녀가 우리를 딱딱한 분위기의 거실로 안내했을 때 그는 피아노 앞에 앉아 있었다. 그는 소나타에 심취한 나머지 우리가 정중하게 기침 소리를 내고 나서야 우리가 왔음을 알아차렸다. 깊이 감동받은 나는 문득 그에게 호감을 느꼈다. 그는 내게 어른이 되는 일에 대한 희망을 주었다.
나는 왁자지껄한 지역 축제에서도 스승을 보았다. 그는 낡은 상의를 걸치고 서서 대관람차에 탄 연인들, 회전목마를 탄 아이들을 스케치하던 깡마른 화가였다. 나는 그에게 존경심 어린 호감을 느꼈다. 강박적인 흥겨움에 사로잡혀 부산을 떨며 떼 지어 다니는 군중 속에서, 그는 유일하게 제정신을 가진 사람처럼 보였다.
--- pp. 108-1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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