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사말]
황석모 신부(한국순교복자성직수도회 총원장)
“교회는 목숨을 바쳐서까지 자기의 신앙을 증언한 분들의 유품이나 그분들에 관한 기록을 지극한 정성으로 수집하였다. 이것이 ‘순교자들의 행적’이다. 이 행적들은 피로 쓴 진리의 기록들이다.”(가톨릭교회교리서, 2474항)
2014년은 ‘103위 한국순교자’들의 시복시성식이 거행된 지 30주년이 됩니다. 그리고 현재 ‘124위 하느님의 종과 최양업 신부’ 시복식을 준비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교회 안팎의 노력에 발맞추어 순교자의 ‘죽음’만이 아닌, 오로지 순교자의 ‘삶과 신앙’을 조명해 보고자 합니다.
사실 그동안 ‘순교자의 이야기’는 ‘시복시성’과 함께 박해 앞에서 대단히 영웅적이며, 보통의 삶으로는 도저히 따라갈 수 없는 장엄하고 용기 있는 죽음에만 초점이 맞추어지다 보니, ‘순교’를 영성적으로 살려는 결심에 앞서 ‘순교’가 본질적으로 우리가 다다를 수 없는 별개의 모습으로 거리감을 주었습니다.
이에 한국순교복자성직수도회에서는 박해 시기 동안 신앙의 선조들이 순교를 결심하기까지 과연 어떠한 삶을 살았고, 어떠한 신앙생활을 영위해 나갔는지를 집중적으로 규명해 보고자 합니다. 이러한 순교자의 ‘삶과 신앙’을 규명하는 작업을 통해 궁극적으로 ‘순교자의 이야기’가 바로 우리 삶의 이야기가 될 수 있고, 이를 통해 우리 역시 ‘순교 영성’을 친숙하게 받아들이는 데 도움이 되었으면 합니다.
이러한 작업을 위하여 국내 유수의 교회 사학자들에게 ‘순교자의 삶과 신앙’에 관해 연구를 의뢰했고, 마침내 발표하는 장을 마련했습니다. 부디 많은 분이 참석하시어 ‘순교자의 삶과 신앙’을 찾아가려는 작업이 더 많은 사람에게 나누어져서, 이 땅에 ‘순교 영성’ 확립에 기여하려는 저희의 노력이 알찬 결실을 거둘 수 있기를 바랍니다.
[기조강연]
순교자들이 우리 곁으로 걸어 나오게 하자
김진소 신부(전 호남교회사 소장)
새는 울음소리로 자기를 나타낸다. 순교 영성은 순교자 현양을 목적으로 설립한 한국순교복자성직수도회의 혼(魂)이다. 순교 영성을 말하지 않는 한국순교복자성직수도회는 울음소리를 내지 못하는 새와 같다. 근년에 와서 오랜 침묵을 깬 한국순교복자성직수도회는 물 만난 물고기처럼 순교 영성 연구에 활기를 띠고 있다. 2012년에는 동서양의 석학들이 모여 동서양 교회가 체험한 ‘순교’개념을 고찰하는 국제 심포지엄을 열었고, 2013년에는 그 결과물로 순교 개념을 집대성한 기념비적인 책「순교의 신학적 고찰」을 간행했다. 한국천주교회사에 관심을 가진 사람이라면 모두 경하할 일이다.
이제 한국순교복자성직수도회 산하 ‘순교 영성연구소’에서는 한국순교 영성을 정립하기 위한 첫걸음으로 초기교회의 대표적 순교자들의 삶과 신앙을 살피는 학술발표회를 개최하고자 한다. 순교 영성의 정립은 순교자라는 커다란 유산을 물려받은 한국교회에 가장 화급한 일이라 할 수 있다. 그동안 교회 일각에서 ‘순교자들의 삶과 영성’이나 ‘믿음살이’에 대한 연구가 있었다. 필자도 40년 동안 미력하나마 순교자의 ‘믿음살이’를 찾고 알리는 데 힘을 기울여 왔다. 그러나 필자의 경우 조직력이 없어 활동하는 데 지속적이지 못하고 연구 발표가 시복시성이나 성지 개발에 이용되는 목적성을 띤 학술발표였기에 단발성 행사로 끝나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필자는 2013년 9월 15일자 가톨릭신문 특집에서 ‘성지순례 실태’를 밝힌 글을 읽고, 나 역시 오래전부터 가슴앓이를 해온 터라 한국교회의 치부가 만천하에 드러난 것이 부끄러워 손바닥으로라도 하늘을 가리고 싶었다. 이 특집은 성지의 역사와 전통을 바르게 보존하고, 성지를 순교 영성을 체험하는 장(場)으로 지키고자 애쓰는 사제들과 오랫동안 희생적으로 성지순례를 안내한 봉사자들의 한국교회의 실상에 대한 가감(加減) 없는 고백이 실려 있다.
사제를 양성하는 신학교에서도 교회사가 교과과정에 있기는 하지만 깊이 있게 다루어지지 않고 있으며, 역사연구자들의 전유물로 여기는 실정이다. 부실한 교회사 교육을 받은 본당사제에게 순교 영성을 요구하는 것은 억지다. 순교 영성은 어느 곳에도 없다. 한국교회의 대표적 영성이 순교 영성이라는 말은 빈소리일 뿐이며, 성지순례를 성지여행이라는 말로 바꾸어야 할 것 같다.
한국교회는 역사의식은 물론 영혼이 없는 순교자를 보도(寶刀)처럼 휘두르고 있다. 자기 욕심과 자기 성취가 앞선 성지 사목(司牧)은 이제 사업(事業)이 되었다. 하지만 진정한 성지는 교회의 수입원(收入源)이 아니라 기도하는 곳이자 순교 영성을 체험하는 곳이 되어야 한다.
또한 특집 기사에서 성지순례 봉사자는 한국 신자들의 성지순례를 ‘볼 곳’, ‘쉴 곳’, ‘먹을 곳’을 찾아 나서는 것이라고 했다. 이러한 한국 신자들의 성지순례 구미(口味)에 맞추기나 하듯 많은 성지에서는 마치 관광객을 유치하는 수준에서 성지를 개발하고, 큰 건물을 짓는 것으로 능력을 과시하고 있다. 니콜라오 5세 교황(재위 1447-1455)은 신자들의 믿음을 고취시키기 위해 화려한 성당을 짓도록 권장했다.
‘눈에 보이는 위대한 것을 통해 신앙의 약함은 강해진다.’는 것이다. 그러나 그것은 신앙이 경계해야 할 허세이며 헛것이다.
역사의 현장은 왜 중요한가? 언어(言語)와 문자(文字)로 설명하기보다 역사의 현장을 직접 보고 걷는 것보다 더 좋은 신앙체험은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역사와 순교 영성을 모르는, 무지한 성지 책임자가 저지르는 성지 개발은 반달리즘(vandallism: 문화유적의 파괴 행위) 수준이다. 한국교회에서 많은 경우 이미 사목(司牧)이 사업(事業)으로 전락하고 있으니 그럴 만하다. 그렇다고 한탄만 하고 있을 때가 아니다. 순교 영성을 존재 이유로 삼고 있는 한국순교복자성직수도회의 ‘순교 영성연구소’에 힘을 모으는 것도 한 방법이다. 우리에겐 독불장군이 필요한 것이 아니라 협동정신이 중요하며, 뜻을 가진 사람들끼리 마음과 힘을 모아야 한다.
---본문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