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 번째 강의 ● 운동하는 한자 - 세계를 뒤덮는 의미의 숲
중국인은 수십만 개가 넘는 한자어를 만들어 그것으로 의미의 세계를 모두 덮어버리려 합니다. 한자로 뒤덮인 의미의 세계. 그것은 언어라는 지성의 세계에 풀밭도 숲도 남아 있지 않은 것과 같습니다. 삼라만상이 한자의 형상으로 표현되어, 마치 밭을 갈 듯이 ‘의미’가 대지를 갈아엎어버린 것 같습니다. …… 한자는, 대지를 갈아엎어서 대지의 정령을 합리적 사고에 굴복시키는 그런 서구의 방식과는 다르게 ‘의미’의 공간을 펼쳐온 것입니다. …… 한자 문화는 ‘의미’가 이 자리에 없는 공허를 불러내어 그 공허가 관념적인 이데아 속에서 충족되는 세계관을 만들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한자 문화는 이 세계의 ‘의미’를 형태로 붙잡는 것 같은 사상을 만들어냈습니다. …… 형태 그 자체가 ‘의미’이며 이 세계는 그런 형태로 이루어지고 형태가 있는 한 세계의 ‘의미’는 사라지지 않는다는 사고방식이 한자적 사고의 배경에 있는 것입니다. - 28, 32쪽에서
두 번째 강의 ● 만다라Ⅰ - 생명이 살아 숨쉬는 공간
만다라는 불교에만 있는 것은 아닙니다. 많건 적건 인도 종교의 영향을 받은 곳이라면 어떤 종교에서도 만다라 도상을 만들어왔습니다. …… 자이나교는 불교와 거의 같은 시기에 일어난 인도의 종교인데, 아름다운 만다라를 많이 만들었습니다. …… 만다라는 인간의 의식 깊은 곳으로 내려가는 탐사도구입니다. 그리고 그것은 탐사에 도움을 줄 지형에 관련된 정보를 미리 나타냅니다. 그리고 그 산의 정상을 향해 올라가 만다라가 묘사하는 풍경까지 도달하려는 노력은, 개인의 의식이 물질적인 것, 지상 생활의 속박에서 시나브로 벗어나 공기나 인력 작용이 희박한 자유의 영역으로 발을 들이밀 때 비로소 펼쳐지는 그런 풍경을 발견하려는 탐사 외에 다른 어떤 것도 아닙니다. - 45, 46쪽에서
세 번째 강의 ● 용을 무찌르는 성 조지 - 욕망을 살해하는 정신의 기사
(<용을 무찌르는 성 조지>는) 언뜻 보면 성 조지가 대지의 뒷면에 숨어서 인간에게 해악을 끼치는 흉포한 괴물을 물리치는 그림처럼 보일 것입니다. …… 그때의 <용을 무찌르는 성 조지>는 문화와 사회와 권력의 기원을 나타냅니다. 또한 그것은 많건 적건 세계의 모든 신화가 이야기하는 근원적인 ‘의미’이기도 합니다. 최초의 세계에는 카오스가 있었습니다. 그 카오스의 소용돌이 속에는 정체 모를 큰 뱀 같은 괴물이 살고 있었습니다. 그것을 찔러 죽이는 영웅이 나타났을 때, 인간의 문화나 언어나 사회를 만들어내는 의식이 탄생합니다. 신화는 우리에게 그런 말을 하려는 듯합니다. …… 그렇지만 그것은 <용을 무찌르는 성 조지>라는 이콘이 지닌 표면적인 의미에 지나지 않습니다. …… 성 조지는 정신의 기사로서 용을 살해하고 있습니다. 그에게 살해되는 것은 인간의 욕망이며 도취의 감정을 만들어내는 이원론이며, 그 기반을 만들어내는 인간 의식의 구조이며, 그 이원론의 의식을 견고하게 하는 언어의 경직된 구조입니다. - 66, 74쪽에서
네 번째 강의 ● 동물로 변신하는 샤먼 - 무의식에서 끌어낸 태초의 힘
여기서는 아르헨티나의 인디오 샤먼을 그린 그림을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이런 그림을 어떻게 이콘이라 하느냐, 라고 의문을 제기하는 사람도 있겠지요. 인디오 문화에서는 단순히 캔버스의 그림뿐만 아니라 가면이나 신체적 퍼포먼스를 통해서도 이콘을 표현합니다. …… 샤먼은 동물의 모습을 하고 동물처럼 울부짖으며 무의식 아래로 내려가는 여행에 나섭니다. …… 이 여행을 통하여 그는 사람들의 병을 치유하고 농작물을 풍성하게 하는 초자연적인 힘을 얻습니다. …… 동물의 의식 영역으로 하강해가는 것이 한편으로는 전쟁이며, 치유력의 획득이며, 왕의 권력을 가능하게 하는 원천이며, 나아가서는 훗날에 전개될 고등종교의 원천이 되는 것입니다. - 79, 80, 98쪽에서
다섯 번째 강의 ● 천사 - 우주의 비밀을 전하는 메신저
기독교의 천사란, 오랜 세월 인간의 상상력이 다양한 방식으로 파악해온 불가사의한 중간적인 존재를 아주 산뜻하게 세련시킨 존재임을 알 수 있을 것입니다. 요정이라는 존재도 거기에 해당합니다. 수호신도 여기에 가깝고, 다신교에서 신이라고 하는 존재는 거의가 이런 속성을 가집니다. …… 일신교가 생각하는 절대적인 유일자란 이러한 천사가 태어나는 ‘장’ 그 자체입니다. 바꾸어 말해 예전의 신은 모두 천사와 같은 존재였던 것입니다. …… 일신교의 세계에서, 인간과 신 사이에는 믿을 수 없을 만큼 깊은 골이 있습니다. 그 골을 넘어서 신성과 직접 접한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한 일이었습니다. 그때 천사가 나타나 인간과 신성 사이의 골을 메워주었던 것입니다.
- 108, 110쪽에서
왜 지금 시대에 천사론일까요? 그것인 인간이 지금 또 다른 ‘누스(예지, 이성)’를 획득하지 않으면 안 되는 그런 시대에 살고 있기 때문입니다. …… 사랑의 공간이 철저하게 파괴되어버린 듯이 보이는 이 현대 세계에서 흩어진 사랑의 공간의 파편을 끌어모은들 그 그림자의 끄트머리도 잡을 수 없을 것처럼 보입니다. 그런 가운데서, 다시 그것을 불멸의 공간으로 재건할 수 있느냐는 것도, 사실은 천사의 테마가 진지하게 대답을 모색할 문제입니다. 문학과 시적 언어의 위기에 진실로 대답할 수 있는 것 또한 이 천사의 영역에서 들려오는 나팔 소리뿐일 것입니다. - 120쪽에서
여섯 번째 강의 ● 만다라Ⅱ - 주술에서 밀교로
흥미롭게도 당시(일본에 진언밀교가 들어온 시기)의 도시를 살펴보면, 도시의 공간 구성이 만다라와 아주 비슷한 원리에 기초하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그때까지 인간은 대지에 묶여 살아왔습니다. 인간이란 태어난 토지에서 자라, 거기서 죽는 존재였습니다. 그런데 도시의 형성과 동시에 고대의 권력은 대지에 귀속되기를 부정하기 시작했습니다. 권력자들은 사람들을 조(租)?용(庸)?조(調)의 세금을 거두어들이기 위해 만든 호적 속에 배치하고 코드화하려 하였습니다. 이것은 추상적인 공간, 기호공간 속에 인간을 코드화하여 잘 보이게 하려는 시도였습니다. …… 고대권력은 헤이안쿄에서 율령국가의 재건과 완성을 추구하였습니다. 그래서 인간이 사는 도시에도 우주론적인 전체성을 부여하려 하였습니다. 그 우주론적인 전체성, 완결성 속에서 인간이 끌어안고 있는 심령적인 것, 주술로 나아가는 마음의 힘 등을 표현하고 처리하는 정신적 회로로서 만다라가 등장한 것입니다. - 141, 142쪽에서
일곱 번째 강의 ● 아미타불 - 노래로 접속하는 서방정토
일본의 정토교는 산악불교가 끌어안고 있던 일원주의를 향한 직감을 서방정토 쪽으로 확대해 나간 것입니다. 그렇게 하여 만다라는 파괴되어갑니다. 만다라는 공간의 전방위적인 평등을 이야기합니다. 거기에는 우주론적인 전체성이 있습니다. 그런데 그 만다라 전체를 서쪽 방향으로 강하게 끌어당겨서 인간과 그 만다라 사이에 무한의 거리를 둘 때, 우주론적 전체성과 만다라가 보존해온 ‘예지(이성, 지혜)’의 체계는 무너질 것입니다. 그리고 인간 또한 우주 속에서 충실하고 안정된 자리를 잃고, 빈곤한 범부의 위치에 서게 됩니다. 정토에서 너무 멀리 떨어진 공간에서 서글픈 몸을 가지고 물질적 현실 속을 살아가는 범부라는 의식, 그 의식을 멜로디가 포착한다는 것, 거기에는 참으로 깊은 의미가 감추어져 있습니다. - 154, 156쪽에서
여덟 번째 강의 ● 꿈의 시공간 - 무한의 거리에서 ‘지혜’ 찾기
인간은 언제나 새로운 문제를 향하여 열린 존재입니다. 늘 수수께끼를 풀어가는 열쇠 그 자체가 인간이라고도 할 수 있겠지요. 따라서 우리의 삶은 늘 수수께끼와 문제 쪽으로 나아가야 합니다. 그것을 조급하게 닫아버리고 삶을 ‘이해’했다고 자만하면, 그 삶은 정체하고 맙니다. 꿈속으로 들어감으로써 인간의 의식은 확대됩니다. 꿈을 통해 인간은 의식을 수수께끼와 문제로 가득한 운동체로 바꾸어갈 수 있습니다. - 172쪽에서
우리는 오스트레일리아 원주민의 추링가 그림에서 인식을 확대하여 먼 곳의 시선으로 삶의 의미를 파악하는 꿈을 둘러싼 특이한 표현 방식을 찾아볼 수 있습니다. 원주민들은 그것을 소중하게 전해왔습니다. 그림은 아주 단순하지만, 그들은 추링가를 꿈의 시간 속을 살아갈 때 발견한 것이라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의식을 행하거나 사냥을 하거나 축제를 할 때 추링가를 늘 가까이 두었습니다. …… 그들은 늘 추링가를 가지고 다님으로써 자신들이 조상이 살아온 꿈의 시간에 하나로 연결되어 있다는 충만함을 느꼈고, 그것으로 삶의 의미를 확인하려 했습니다. - 173, 174쪽에서
아홉 번째 강의 ● 고행 - 의식의 대륙을 탐험하는 여행
인간의 정신이 얼마나 다양하고 복잡한 지형을 가지고 있으며, 단 한 번도 그 지형에 대한 만족스러운 지도가 그려진 적이 없을 만큼 낯선 풍경으로 가득 차 있는지를 우리는 모르고 있습니다. 아직 인간은 자신의 정신을 완전히 답파하지 못한 것 아닐까요? 더욱이 근대에 이르러 인간의 정신을 둘러싸고 그려진 지도는 한결같이 밋밋하고 단순하여 아무 재미도 없습니다. 우리는 그런 지도만 반복해서 그려왔던 것입니다. 유물론이 그려낸 인간 정신의 지도, 실존주의 지도, 구조주의 지도, 정신분석학이 만들어낸 의식이라는 대륙의 지형도. 이렇게 다양한 탐사방법으로 그린 지도들이 아직 인간의 내적 대륙을 모두 답파하지 못했다는 느낌을 떨쳐버릴 수 없습니다. - 192쪽에서
‘세례 요한’을 그린 그림은 종교적 고행자의 본질을 잘 표현하고 있습니다. …… 사막이나 숲 속에서 살아가는 고행자는 이렇게 하여 거대한 종교가 태어나기 이전의 그 옛날, 통과의례의 여행을 통하여 인간이 실현하려 했던 것을 좀더 깊이 조직적으로 체험하려 합니다. 이 지구상을 헤매는 여행으로 얻을 수 없는 의식의 대륙으로 떠나는 여행. 지리적 이동이 아니라 의식의 대륙과 바다 속을 끝없이 깊게 횡단하여 철두철미하게 이질적이고, 거친 영역으로 뛰어드는 모험 여행을 떠나려 했습니다. …… 우리는 하루하루를 살아가는 과정에서 이 광대한 의식 공간에서 끊임없이 횡단을 거듭하는 역동적이며 문제적인 탄환입니다. 그 생명체가 가진 문제적 본성이 지금 그 모습을 잃어버리려 하고 있습니다. 이런 시대에 삶을 횡단하는 여행의 한 형태로서 고행은 우리에게 또 다른 의미를 던져줄 수 있지 않을까요? - 200, 201쪽에서
열 번째 강의 ● 새로운 이콘 - 세상을 품은 먼 곳의 시선
새로운 ‘언어’의 존재방식을 찾아내어 그 ‘언어’를 살아보는 것. 우리에게 어울리는 소피아(지혜)의 형태를 만들어내는 것. 거울의 경계 면을 새롭게 살아보려는 현대의 지성에게 주어진 테마는 이것밖에 없다는 생각이 듭니다. 정신과 물질을 다른 것으로 생각하거나, 그렇게 나눈 어느 한쪽에 무한을 부여하고 대립을 격하시키거나 지성의 유한함을 도려내어 그 덧없음을 보여주는 것만으로 이제 어찌 해볼 도리가 없습니다. 우리가 살아가는 이 세계의 한 가운데에서 종교라고도 하지 않고 신비라고도 하지 않고, 무한을 불러일으켜 무한이 나타나게 하는 것. 지금 우리에게는 우리 시대에 어울리는 새로운 ‘이콘’이 필요합니다. - 216, 217쪽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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