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 미술사가, 미술평론가. 루브르 박물관 사무총장, 정부 문화성 예술최고책임관을 역임했다. 바르비종 화파를 비롯해 많은 작품을 수집했다. 상시에는 난개발에 반대하는 환경옹호주의자로서 『장 프랑수아 밀레의 삶과 예술』, 『테오도르 루소에 대한 회상』 등 자연과 농촌의 아름다움을 추구한 화가들의 전기를 남겼다. 《국제예술 및 골동 리뷰》를 창간했다. 농촌경제학의 창시자 올리비에 드 세르에 대한 평전은 농학계의 고전이며, 18세기 여성화가 로살바 카리에라의 『일기』를 편역했다
새 화실에서 생활은 어려웠다. 밀레의 생활비는 오지 않았다. 왔다고 해도 불규칙했고 크게 부족했다. 그는 자기 일로 먹고 살 궁리를 해야 했다. 밀레는 이렇게 말했다. “어떻게 하나? 낫질하거나 퇴비를 말리는 사람을 그린다면, 그 동작이야 멋있겠지만.” “그러면 팔리지는 않겠지”라고 마롤은 답했다. “요정이나 숲 속의 생활을 그린다면?” “그래 팔리겠지, 그런데 누가 파리에서 목신을 알겠어?” “그러게 말야, 어떡하지?” “사람들은 부셰, 바토, 장식 삽화, 나체를 좋아해. 졸작이지만.” 밀레는 결국 생계의 절박함을 따르기로 했다. 그는 생활비로 가족을 괴롭히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최후의 노력을 해보려고 했다. 어린 아기 셋을 달래는 우울한 인물상을 그린 소품을 들고 화상을 찾아다녔지만 몇 푼 받지 못했다. 그는 마롤에게 “네가 맞았어, 주제 좀 알려다오. 그려보게”라며 서러워했다. ---p.88
밭일을 하는 곳에서, 그것이 무엇이든 몇 번이든, 그런 농사짓기 어려운 고장에서도 땅을 파고 괭이질을 하는 사람들이 있어. 가끔 허리를 펴면서 손등으로 이마에 흐르는 땀을 닦고 이런 말을 하지. “이마에 땀을 흘려야 빵을 먹으리라.” 이것이 즐겁고 재미있는 일일까? 그렇게 믿으라는 사람들도 있지만, 이런 농사에서 참다운 인간성, 위대한 시가 보이네. 이쯤 하겠네. 자네 피곤할 테니까. 용서하게. 나는 혼자야. 이런 내 기분을 누구한테 떠들겠나. 생각하지 않는 것이 나을 테지, 다시 이런 말은 않겠네. 아, 생각난 김에 말인데, 장관의 인장이 찍힌 편지 좀 보내주게. 붉은 밀랍으로 봉한 편지 말야. 멋지게 장식된. 우체부가 모자를 벗어 들고 얼마나 정중하게 이런 편지를 내게 전할지 생각해보게나. 이런 일이 드물지만 ‘장관님 서신입니다!’라면서. 멋지게 신뢰받는 방법이지. ---p.149
「만종」은 밀레가 가장 좋아하는 작품이다. 그는 이 그림에서 어린 시절의 느낌을 되살리곤 했다. 그는 미신일지 모르지만 힘들게 고생하면서도 희망을 버리지 않고 일하는 종교적 인간을 그려보곤 했다. 하루해가 저물어갈 때, 한 쌍의 농부가 삼종기도의 종소리를 듣는다. 그들은 밭에서 일어나 가만히 선 채로 고개를 숙이고 눈을 밑으로 내리깔고서 전통적인 기도를 올린다. ‘성모님 안녕하십니까’라고. 땅에 붙어사는 진짜 농사꾼은 뻣뻣하고 성긴 짧은 머리에 침묵을 지킨다. 허리 숙인 여자도 완전히 자신에게 몰입하고 있다. 그 풍경 속으로 지는 햇빛이 가득 퍼진다. 땅과 하늘을 자줏빛으로 물들이며 하루를 마감한다. 색조의 조화는 절정에 이르렀다. 밀레는 자기 팔레트의 모든 색조를 여기에 쏟아 부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