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혜잔의 향낭

혜잔의 향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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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품목정보
발행일 2004년 12월 27일
쪽수, 무게, 크기 520쪽 | 663g | 크기확인중
ISBN13 9788978911986
ISBN10 8978911986

책소개 책소개 보이기/감추기

책 속으로 책속으로 보이기/감추기

[좋아하는 것은?]
[개. 그냥 보고만 있어도 기분이 좋아지죠.]
거만한 얼굴로 웃으며 잡지 너머에서 그가 그렇게 대답했다.
‘개라…….’
혜잔은 잡지를 방 한쪽으로 던져 놓고 침대 위에 드러누웠다.
‘젠장, 개는 좋겠군.’
CD 플레이어에서는 그가 부르는 노래가 흘러나오고 있었다.
‘젠장, 젠장! 내 나이가 몇인데 이런 짝사랑이냐?’
혜잔이 고개를 돌려보니 방문에 붙은 그가 웃고 있었다. 실물도 아닌 그냥 사진일 뿐인데도 바라보고 있자니 가슴이 설렜다.
‘당신 그거 알아? 웃을 때 한쪽 입꼬리가 살짝 치켜올라가는 거, 마치 무언가를 비웃는 것처럼. 그리고 또 알아? 그런 당신을 내가 되게 많이 좋아한다는 거. 그런데 더 웃기는 건……, 난 개가 싫어. 하찮은 개 따위에 질투가 날 정도라고. 당신 때문에.’
혜잔은 구질구질하게 비가 내리는 창 밖으로 손을 내밀었다. 빌어먹게도 계속 내리고 있었다. 비는 원풀이라도 하는지 밤을 새운 것도 모자라 하루 종일 내렸다.
비 냄새는 개 냄새와도 비슷했다. 코끝을 찡그리고 습한 공기를 들이마시면 축축한 놈의 털 냄새가 맡아졌다. 어릴 때 겁 없이 개를 예뻐하다가 혼이 난 적이 있는 터라 그녀는 개를 끔찍하게도 싫어했다. 아직도 개한테 물린 자국이 선명하게 종아리에 남아 있었다.
‘환상통하고 비슷하다고 해야 하나?’
아무튼 가끔 악몽 속에서 개한테 물리면 꼭 그 자리가 아팠다. 그런 사람이 개 냄새라고 해서 좋을 리가 없었다.
‘아, 개만도 못한 신세라니…….’
혜잔은 한숨을 내쉬었다. 그녀는 책상 아래 널브러진 잡지를 노려보다가 결국은 다시 주워 들고 말았다.
[그냥 힘들 때 보고만 있어도 기분이 좋아지는 건 갭니다. 어떤 종이든지.]
‘취재기자 나탈리 모로. 이 여자 정말 기분 좋았겠군. 눈이 얼마나 즐거웠을까?’
혜잔은 입맛을 다시며 매끄러운 종이 한 장을 넘겼다.
[그렇다면 모든 팬들이 개보다 한 걸음 뒤라는 얘깁니까?]
기자의 질문에 검은머리에 은회색 눈을 한 사내는 차갑게 웃으며 덧붙였다. 자신이 미쳐 가는 게 분명했다. 종이 안에 든 남자가 웃는 걸 느낀다는 것이. 한 컷 정지된 사진일 뿐인데 말이다. 쯧, 혜잔은 혀를 찼다.
[그런 비교는 삼가 주셨으면 좋겠는데.]
혜잔은 그런 남자를 사랑했다. 이미 팬이 스타를 사랑하는 것을 넘어서.
‘그저 한번이라도 좋다. 옆에서 바라보고 만져 볼 수만 있다면……. 아서라. 아직도 꿈을 꾸다니. 마음만은 젊어서 좋다, 홍혜잔.’
풀썩, 잡지는 다시 한 번 방구석으로 날아갔다.
“언니, 밥 먹어!”
문이 벌컥 열렸다. 은잔이 고개를 빠끔히 내밀고 있었다. 밥이라는 소릴 하는 거 보니 아버지가 돌아오신 게 분명했다.
“대장님 오셨어?”
소리치는 것과 동시에 혜잔은 오뚝이처럼 발딱 일어나 앉았다.
--- 본문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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