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군 위문의 여자 정신대란 「종군위안부」를 의미한다. (중략) 징용대는 곧바로 100명 이상의 부락민들이 모여있는 앞뒷길을 차단하였다. 무리 중에는 어부와 같은 반라의 건장한 남자들이 20~30명 있어서 일본인을 두려워하는 모습도 없이, 징용대를 향하여 이를 드러내며 소리를 질렀다. (중략) 병대가 총검을 향하여도 부락민의 외침은 줄어들지 않았다. 다니 중사는 병대에 전진을 명령하였다. 병대의 뒤에서 대원들이 “아이고!”라며 우는 8명의 처녀들을 데리고 전진하였다. (중략) 도로의 트럭 가까이에 이르자 처녀들은 높은 비명을 지르며 반항하였다. 처녀들은 체격이 좋았다. 햇볕에 그을린 얼굴을 찡그리고 흰 이를 보이면서 거친 숨을 내쉬며 대원들과 승강이를 하였다. 대원이 당황하여 뒤에서 밀어 넘어뜨리자 처녀가 풀밭에 쓰러졌다. 흰 저고리가 벌어지고 옷자락이 올라갔다. 처녀는 속옷을 보이며 발버둥쳐서 대원은 애를 먹었다. 병사들이 웃으며 재미있어하며 구경하였다. 대원이 처녀들을 붙잡아 손을 비틀며 트럭에 싣자 징용대는 바로 출발하였다. 해안도로를 50~60㎞ 동진하자 다니 중사가 트럭을 바위산 그늘 숲 속으로 끌고 가서 말하였다. “위안부의 징용 경비는 병사들이 담당합니다. 여기서 30분 정도 휴식을 취하며 놀리겠습니다.” 다니 중사의 휴식 명령은 병사들을 즐겁게 했다. 병사들은 일제히 처녀들을 태운 트럭 속으로 들어갔다. 처녀들의 비명이 울리고 대원들은 웃었다. 이 처녀들은 징용되자마자 바로 병사들의 위안부가 되어버렸다.(요시다기 요하루, 『나의 전쟁 범죄―조선인 강제 연행』)
과거로 돌아가 보면, 원폭피해자중 태내피폭으로 어려서부터 병고에 신음해 왔던 19세의 한 젊은 여성이 자살한 사실이 『요미우리신문讀賣新聞』(1965년 1월 19일)에 「모태 내에서 입은 원폭 증상의 무게를 견디지 못하고 젊은 여성 자살, 고통스러웠던 19년을 살아온 끝에」라는 제목으로 보도되었으며, 그 후에도 같은 피폭자의 자살 보도가 해마다 계속되고 있다. 「나가사키에서 원폭증 환자 자살」(『요미우리』 65년 3월 30일), 「피폭 노인이 음독자살」(『아사히』 70년 7월 29일 석간), 「피폭 노인 또 자살」(『아사히』 70년 7월 30일), 「원폭증인 여성 자살, 악몽의 나날 25년, 너무 지쳐서」(『요미우리』 70년 8월 4일 석간), 「그날의 상처 남아 피폭 여성 자살, 움직일 기력도 없어」(『아사히』 74년 8월 7일), 「원폭병 노인 여성 자살」(『요미우리』 74년 12월 14일), 「피폭 주부가 분신자살」(『아사히』 78년 9월 9일 석간), 「피폭주부, 얼굴 켈로이드 병고로 자살」(『요미우리』 79년 5월 14일), 「안식은 죽음뿐인가, 투병에 냉정한 관청, 치료 요청 방치되어 원폭어린이 35년 후 자살」(『아사히』 80년 7월 29일), 「어느 어머니의 자살, 얼굴에 상처 심각해」(『마이니치』 81년 7월 29일), 이처럼 내가 알고 있는 것만으로도, 원폭 때문에 고통 받다가 끝내 스스로 목숨을 끊은 사람들이 많다.
다카바시 근처 공동변소 안에는 배가 터진 채로 남자아기를 안고 있는 여자의 시체가 있었다. 그 여인은 조금 그을렸고, 질식사했다. 아기는 거의 상처가 없었으며, 평안한 얼굴이었다(『아사히』, 70년 8월 6일 「동경피폭기 불바다 속」 小坂部正已 수기). 요리를 하고자 하여도 손이 많이 가는 음식은 만들 수 없고, 언제나 간단한 요리이지만 (중략) 식후의 정리가 또한 큰일입니다. 밥그릇, 찻잔, 주걱 등은 한 손으로는 깨끗이 씻기가 참으로 어렵습니다. 냄비는 솔로 비비면 뱅글뱅글 돌아가서 마음대로 씻기지 않아 대충 씻고 맙니다. 그리하여 주전자, 냄비 등은 때가 누적되어 검게 변색됩니다. 음식을 만들자니 남편에게 미안하여 그냥 버리고, 새로 사게 됩니다. 최근에는 돈도 없고 해서, 더러워지면 1개월에 한 번 식기 대청소를 합니다. 물론 싱크대에서는 씻을 수 없으므로 뒤뜰의 빨래터로 가 걸터앉아서 발로 냄비를 붙잡고, 한 손으로 북북 세제를 사용하여 광을 냅니다. 그 모습은 남편에게도 아이들에게도 보이고 싶지 않습니다. 몹시도 고통스러운 작업입니다. (중략) 더 큰 고통이 있습니다. 최근에는 몸을 너무 혹사한 탓인지 오른쪽 팔꿈치. 어깻죽지, 팔 등이 아픕니다. 허리도 아프고 뜨끔거리기도 합니다. 37세... 아직 아플 나이는 아니지만, 육체적으로 무리한 탓입니다. 전쟁만 없었더라면... 전쟁이 몹시도 증오스럽습니다.(아카사카 노리코, 『전쟁의 증언자로, 민간인 전쟁 상해자의 30년』)
---본문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