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2학기 내내 학교에서 나는 말도 안 듣고 수업 시간에 말썽만 부리고 여교사에게 차마 못할 짓을 하는 소위 구제불능의 한 학생과 힘겨운 씨름을 했다. 『작문』은 성적이 좋은 학생이든 그렇지 못한 학생이든 즐겁게 따라올 수 있는 과목이려니 생각했는데 이런 아이들은 내 맘대로 잘 움직여주질 않았다. 내가 자꾸 잘못을 지적하니까 급기야 “선생님은 왜 나만 갖고 그래요? 에잇 XX, 나 수업 안 해!” 이러고 내 앞에서 널브러졌다. 이 일로 나는 큰 충격을 받았고, 나와 내 수업 방식에 대해 회의가 들었다. 나에게 무슨 문제가 있는 건가, 나는 왜 공부 못하는 아이들과는 교감이 잘 안될까가 심각한 고민이 됐다. 그러다 내가 하는 수업이 착실하고 우수한 학생들에게 초점이 맞춰져있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힘을 추구하는 우리 사회가 약자들에 대해 배려가 없는 것에 대해 핏대 세워 비판하던 내가, 정작 학교라는 내가 몸담고 있는 작은 사회에서는 효용성을 근거로 열등한 학생들에게 차별의 몸짓, 눈빛을 보내고 있었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심히 부끄러웠다.
‘어떻게 해야 학교에서 성적으로 소외된 아이들을 이해할 수 있을까? 어떻게 하면 그들과 인간적인 관계를 맺고 서로 교감할 수 있을까’를 고민하던 중에 이 만화책, 『도토리의 집』을 만났다. 이 책이 나에게 준 교훈과 감동은 몇 마디 글로 온전히 전할 수가 없을 것 같다. 이 책은 인간 세계의 영원한 약자 장애아들과 그들의 부모, 교사의 이야기이다. 혹시 한 번이라도 장애인들을 우리 사회가 떠안아야 하는 짐이라고 생각한 적이 없었는가? 아니면 그들의 존재 가치를 내가 가진 최악의 불행을 위로받을 수 있고, 그들에 비해 상대적으로 가진 것이 많아서 내 삶에 감사할 수 있게 해 주는 것에 두는 천박한 생각에 머무르고 있지는 않았는지…….
이 책을 통해 장애인들이 왜 우리 사회의 ‘생명의 빛’인지, 그들이 왜 이 비정한 사회에 우리에게 꼭 필요한 인간적인 덕목들을 구현해 낼 수 있는 존재들인지, 신께서 세상에서 멸시받는 자들을 택하셔서 우리에게 전달하려는 메시지가 무엇인지 발견하게 되기를 바란다. 나는 “약자를 배제해야만 성립하는 교육이라면 그것은 참 교육이 아닙니다.” 는 노나카 선생님의 말씀을 이 겨울에 몇 번이고 곱씹어 보려고 한다. 우리 사회 구성원 모두가 꼭 읽어야 할 책이다. 강추 또 강추한다.
이소연(서울 서울고 국어교사)
‘따뜻한 영혼으로 길러주는 좋은 책’
- <책으로 따뜻한 세상 만드는 교사들 모임> 선정
이번 2004년 겨울 목록은 10회째 발표하는 책/따/세 방학 추천도서목록입니다. 이 목록 역시 저희 ‘책/따/세(책으로 따뜻한 세상 만드는 교사들 모임)’의 평소 철학을 담아서 만들었습니다. 무엇보다도, 소수의 특출난 아이들에게 읽혀 본 책들이 아니라 우리가 늘 만나는 우리 제자들과 함께 책을 읽고 골라보았습니다. 교사가 직접 읽고 학생에게 권해 반응이 좋은 책들만 골라 본 것입니다. 또한 학부모들도 비록 소수지만 적극 참여하여 함께 논의에 논의를 거듭한 결과입니다.
모처럼 긴 시간을 독서에 할애할 수 있는 겨울임을 감안하여 『한국생활사박물관』 시리즈와 『서유기』 등을 함께 추천하였습니다. 긴 호흡으로 우리 문화와 동양의 상상력을 만끽하는 기회가 되었으면 합니다. 여기에 시집을 넣어 부모와 자녀가 함께 시를 읽는 풍경 또한 기대해 봅니다. 몇 권의 시집이 더 있으나 전국의 청소년들에게 보편적으로 권하기에는 다소 어렵거나 특별나다고 보아 마지막에 아깝게 놓았습니다.
특히 『도토리의 집』이란 장애아와 그들의 가족, 선생님의 이야기를 담은 만화를 넣었습니다. 읽다가 자기도 모르게 울었다는 운영진 선생님들까지 있을 정도라서 아직 완간되지 않았지만 넣었습니다. 3권까지 반응만으로도 의미 있고 앞으로 완간을 재촉해야 할 훌륭한 만화였기에 ‘따뜻한 영혼으로 길러주는 좋은 책’으로 덧붙였습니다.
끝으로, 저희 목록이 전국 각지의 모든 청소년에게 맞는 훌륭한 목록이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일종의 참고 자료이자 정보로서, 또한 바람직한 책 고르기의 도화선으로 잘 쓰였으면 좋겠습니다. 나아가 청소년 여러분이 책을 즐겨 읽으며 삶을 아름답게 변화시켜 스스로 좋은 책 목록을 만드는 데 작은 디딤돌이 되기를 바랍니다.
책으로 따뜻한 세상 만드는 교사들 모임 운영(대표 허병두 숭문고 교사)
장애아를 둔 부모들에게 용기와 희망을 주는 책
책을 읽으며, 나는 그동안 나도 모르게 ‘우리 아이가 무가치한 존재는 아닐까’, ‘우리 아이같은 장애아동을 위해 무언가 한다는 것이 헛된 노력은 아닐까’ 하는 생각과 싸워왔다는 것을 깨달을 수 있었다.
얼마 전 일본에 가서 부모들이 만든 장애인 작업장을 볼 기회가 있었다. 그 기간 내내 ‘도토리의 집’을 만든 사람들을 생각했다.
많은 부모들이 이 책을 읽었으면 좋겠다. 그래서 ‘아이보다 하루만 더 살고 싶다’가 아니라, ‘아이를 놓고도 편안히 눈을 감을 수 있는 길을 찾아야겠다’고 생각하게 되기를 바란다. 이 책에는 그런 부모들의 용기와 희망이 담겨져 있기 때문이다. 이 책이 예쁜 옷을 입고 다시 세상에 나올 수 있게 되어 정말 기쁘다.
홍진숙(장애아동 부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