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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카페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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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품목정보
발행일 2014년 09월 26일
쪽수, 무게, 크기 583쪽 | 709g | 153*224*27mm
ISBN13 9788925551364
ISBN10 8925551365

책소개 책소개 보이기/감추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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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리노는 열두어 걸음이면 더 이상 발걸음을 옮길 데가 없는 아파트 안을 왔다 갔다 했다.
“검사만 마치면 서둘러 매사추세츠로 돌아갈 테니 걱정할 것 없어요.” 모랄레스가 말했다. “그것 말고도 걱정할 게 태산일 텐데 그나마 다행이지 않습니까?”
“알면서 왜 말하는 거야?”
“이 사건이 민감한 사항임을 상기시켜 드리려고요. 지난달 오스카 베인이 속마음을 털어놨을 때, 당신은 잘 대처하지 못했어요.”
“난 정석대로 했어.”
“생각해 보면 우스워요. 문제가 있는데, 아무도 신경 쓰지 않았어요. 당신의 예전 상관인 케이를 피하라고 충고하고 싶군요. 예를 들어, 당신이 그녀의 사무실에 가거나 예상치 못하게 벨뷰 병원에 나타날 이유가 없단 뜻입니다.”
모랄레스가 스카페타를 케이라고 부르는 걸 듣자, 마리노는 속이 부글부글 끓어올랐다. 마리노는 그녀를 케이라고 부른 적이 한 번도 없었다. 항상 곁에서 함께 일했고 시체안치소, 사무실, 자동차, 범죄 현장, 그녀의 집에서 함께 보낸 시간이 1만 시간은 될 것이었다. 명절에 그녀의 집에서 시간을 보내기도 했고, 출장을 가서는 그녀의 호텔 방에서 술을 한두 잔 마시기도 했다. 그러면서도 그녀를 단 한 번도 케이라 부르지 않았는데, 모랄레스는 도대체 어떻게 함부로 그녀의 이름을 부르는 것인가? ---pp.52~53

오스카는 몸집이 몹시 왜소한 난쟁이였다. 팔다리와 손가락은 비율이 맞지 않을 정도로 짧은 반면, 가운이 감추지 못한 다른 신체 부위는 괜찮았다. 스카페타는 뼈의 형성에 있어 주로 팔다리의 뼈를 자라게 하는 책임 유전자의 자연 돌연변이로 인한 연골무형성증을 의심했는데, 어떤 사람은 그를 만들던 신이 과잉 보상을 했다고 말할지도 몰랐다. 팔다리에 비해 상체와 두상이 지나치게 컸고, 중지와 약지만 두드러지게 튀어나온 짤막한 손가락들은 삼지창 같았다. 그것 말고는 해부학적으로 정상적으로 보였는데, 끔찍한 고통과 상당한 비용을 치른 것 같았다.
놀라울 정도로 흰 치아는 인공치아를 접착했거나 표백했을 텐데, 치관을 씌웠을 수도 있었다. 짧은 머리칼은 밝은 노란색이 도는 금발로 염색했고, 손톱은 네모반듯한 사각형을 이루도록 부드럽게 손질되어 있었으며, 차분해 보이는 얼굴은 확실하지는 않지만 보톡스를 맞은 것 같았다. 가장 눈에 띄는 건 몸통이었는데, 마치 푸르스름한 광맥이 비치는 베이지색 카라라---pp.carrara) 대리석으로 조각한 것 같았다. 근육의 비율이 완벽해 보였고, 피부에는 솜털 한 올도 남아 있지 않았다. 색깔이 각각 다른 두 눈동자에서 뿜어져 나오는 강렬한 눈빛과 함께 전반적인 느낌이 다소 비현실적이었고 기이했다. 스카페타는 오스카가 여러 가지 공포증을 느끼는 게 다소 이상하다고 했던 벤턴의 말을 이해할 수 있었다. 그간 고통을 참아 가며 의사들을 신처럼 여기지 않았더라면 이런 모습일 수 없었다.
벤턴이 자신을 위해 사무실에 비치해 둔 현장용 키트를 열던 스카페타는 자신을 자세히 살피는 그의 파란색과 초록색의 눈빛을 느꼈다. ---pp.55~56

그녀가 알기로는, 자신이 〈고담 갓차〉를 위해 일한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은 전화로 자신을 고용했던 이태리어 억양의 에이전트뿐이었는데, 그를 만난 적도 없었고 그의 이름도 몰랐다. 보스가 칼럼을 써서 그녀에게 이메일을 보내면 그녀는 형식에 맞춰 원고를 정리했다. 그런 다음 칼럼을 웹사이트에 올리면 프로그램이 알아서 나머지 일을 했고, 0시 1분에 칼럼이 공개되었다. 테러리스트가 개입되어 있다면 스카페타 박사가 표적일 수 있었다. 그녀를 사회적으로 그리고 인간적으로 망가뜨릴 것이었고, 그녀의 목숨은 위험에 처할 게 빤했다.
잔소리쟁이는 스카페타 박사에게 이 사실을 알리고 싶었다.
하지만 잔소리쟁이는 다시 고민에 빠졌다. 자신이 그 익명 웹사이트의 익명 관리자임을 밝히지 않고 어떻게 알릴 수 있단 말인가?
그럴 수 없을 것 같았다.
잔소리쟁이는 컴퓨터 앞에 앉아 창문 너머 경찰차를 멍하니 바라보며 곰곰이 생각에 잠겼다. 그리고 스카페타 박사에게 익명으로 메시지를 보낼 방법에 대해 생각해 보았다.
그 순간, 누군가가 갑자기 문을 두드리는 소리에 그녀는 화들짝 놀랐다. 복도 맞은편 아파트에 사는 그 이상한 청년일지도 몰랐다. 사랑하는 가족이 있는 대부분의 사람들처럼 그는 가족과 휴가를 보내려고 고향으로 떠났다. 가던 길을 되돌아와 뭔가를 빌리거나 물어볼 게 있는지도 몰랐다.
현관문에 난 작은 구멍을 통해 문밖을 내다본 그녀는 겁에 질렸다.
커다랗고 울퉁불퉁한 얼굴에 머리가 벗겨지기 시작했고, 유행이 지난 철테 안경을 쓴 사람이었다.
‘오, 하느님.’
그녀는 수화기를 얼른 집어 들고 911을 눌렀다. ---pp.81~82

“난 테리 곁을 떠나고 싶지 않았어요. 그들에게는 내가 살인범인양 테리 곁에서 떼어 놓고 형사 차에 억지로 앉힐 권리가 없었어요. 폭력배처럼 옷을 입고 머리를 땋은 그 작자는 나보다 더 살인범처럼 보였어요. 난 진술을 거부했어요.”
“방금 집 안에서 얘기했다고 말했잖아요.”
“그놈들은 이미 마음속으로 결정을 내렸더군요. 난 경찰이 싫어요. 예전부터 그랬어요. 경찰차를 타고 가면서 웃고, 떠들고, 지나가는 사람을 빤히 쳐다보죠. 열여섯 살 때 누군가가 열쇠로 내 차를 열고 유리창을 박살냈어요. 그러자 경찰이 말하더군요. ‘문제가 좀 생긴 건가?’라고요. 그 경찰이 내 차에 타더니, 장애인용으로 높게 만든 페달에 발을 올리고 운전대 양쪽에 무릎을 올렸고, 다른 경찰은 껄껄대며 웃더군요. 빌어먹을 놈들!” ---pp.190~191

“난 당신을 사건에 개입시킬 뜻이 없었고, 내가 선택할 수 있는 사안이 아니었어.”
벤턴은 자기는 그녀를 선택하지 않았다고 말하기 시작했지만, 그 말 역시 거짓말일 것이었다. 스카페타는 책상 너머로 티슈 서너 장을 건네주었다.
“싫어.” 벤턴이 말을 이었다. “당신이 당신 분야가 아닌 내 분야로 올 때면 항상 싫다고. 시신은 당신에게 집착하지도 않고, 당신에게 감정을 가지지도 않지. 죽은 사람과는 관계를 가질 수 없으니까. 우린 로봇이 아니야. 난 누군가를 고문해 죽인 자와 테이블을 마주하고 앉아야 해. 그 사람도 인간이야. 그리고 내가 상대해야 하는 환자이기도 하지. 내가 법정에서 옳고 그름의 차이를 알게 하는 증언을 할 때까지 그들은 나를 최고의 친구로 여겨. 그리고 그들은 법원 판결에 따라 종신형을 언도받거나 사형에 처해지지. 내가 어떻게 생각하든 어떻게 믿든 그건 중요하지 않아. 난 내 일을 하고 있을 뿐이야. 난 법의 관점에서 옳은 일을 해 왔어. 그렇다고 해서 정신적으로 덜 시달리는 건 아니지만.”
“우린 정신적으로 시달리지 않는 느낌이 어떤 건지도 몰라요.”
벤턴이 손가락을 꽉 누르자, 선홍색 피가 티슈에 스며들었다. ---p.229

마리노는 사다리가 건물에서 떨어져 자신을 땅으로 곤두박질치게 할 것만 같았다. 심장이 쿵쾅거렸고, 할리 가죽 재킷 안으로 땀이 줄줄 흘러내렸다. 40구경짜리 글록을 손에 쥔 채로 사다리를 한 번에 한 칸씩 오르는데 무릎이 부들부들 떨렸다.
찰스턴을 떠난 후로 예전에 없었던 고소공포증이 생겼다. 벤턴은 우울증과 그와 동반하는 불안 때문이라고 말한 다음, 신경과학 연구 프로젝트에서 쥐를 대상으로 하여 효과가 있는 것으로 나타난 새로운 치료법을 추천했다. 마리노의 치료사였던 낸시는 그의 문제가 ‘무의식적인 갈등’이라고 말했고, 술을 끊지 않으면 그 갈등의 정확한 본질을 절대 파악할 수 없을 거라고 했다.
마리노는 자신의 갈등의 원인이 무엇인지에 대해서는 아무런 관심이 없었다. 지금 이 순간 그의 갈등의 대상은 적갈색 사암 건물에 부착되어 있는 이 빌어먹을 좁은 사다리였다. 마침내 사다리를 타고 건물 지붕에 올라섰을 때, 마리노는 깜짝 놀라 심장이 멎을 뻔했다. 저격수처럼 배를 깔고 누워 있는 검은 형체가 겨눈 총구와 그의 눈이 마주쳤다. 순간, 두 사람 모두 꼼짝하지 않았다. ---pp.261

뒷문을 마저 열자 지하로 내려가는 나무 계단이 보였고, 개 한 마리가 짖기 시작하자 다른 몇 마리도 따라 짖기 시작했다. 잔소리쟁이는 한 번에 한 계단씩 조심스럽게 내려갔다. 조명도 어두운 데다 버번위스키를 많이 마셨기에 조심해야 했다. 가게까지 걸어 와서 좀 나아졌지만 그렇다고 술이 완전히 깬 건 아니었다. 정신이 아직 몽롱했고, 술에 취했을 때 늘 그랬듯 코가 마비된 느낌이었다.
계단을 내려가 보니, 배설물의 냄새가 역겹게 진동하는 어두컴컴한 창고 같은 곳이었다. 애완동물 용품과 사료 봉투가 쌓여 있는 한가운데에 더러운 신문 조각들로 가득 찬 케이지들이 있었고, 나무 테이블 위에는 유리병과 주사기 그리고 빨간색 봉투 등이 놓여 있었다. 봉투에는 ‘생물학적 전염성 위험물 쓰레기’라고 적힌 검은색 직인이 찍혀 있었고, 옆에 두꺼운 검은색 고무장갑이 놓여 있었다.
나무 테이블 바로 뒤편에 걸어 들어갈 수 있는 대형 냉동고가 있었다.
냉동고 철제문이 활짝 열려 있어서 안이 들여다보였다. 짙은 색 양복에 카우보이모자를 쓴 남자와 긴 회색 프록코트 차림의 여자가 그녀를 등진 채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는데, 목소리는 바람 소리 때문에 잘 들리지 않았다. 그들의 행동을 본 잔소리쟁이는 가능한 한 빨리 거기에서 나오고 싶었지만, 발이 콘크리트 바닥에 붙어 버린 것만 같았다. 겁에 질린 채 쳐다보던 잔소리쟁이는 여자와 눈이 마주치자마자 몸을 돌려 달리기 시작했다. ---p.339

마리노는 그날 밤 찰스턴에 있던 스카페타의 집에서처럼 속이 매스꺼워졌다. 심장은 마치 스스로를 해치려는 듯 심하게 쿵쾅거렸다.
마리노는 그녀를 갈망했지만 그는 지금 녹 냄새가 나는 더러운 그림자 속에 몸을 숨기고 있었고, 자신이 예전처럼 그녀를 사랑하지 않음을 깨달았다. 감정이 자기 파멸로 치닫자 항상 희망을 버리지 않았던 마음속에 숨어 있었던 것들이 생명을 다한 듯 사그라졌다. 그는 이제 더 이상 언젠가 그녀가 자신을 사랑하게 될지도 모른다는 희망을 품지 않았다. 그녀는 이미 결혼했고, 희망은 죽었다. 벤턴이 사라진다 해도 희망은 없었다. 마리노는 희망을 살해했다. 아주 잔혹하게. 그리고 그는 평생 단 한 번도 하지 않았던 짓을 그녀에게 저질렀었다. ---pp.365

마리노는 손잡이를 돌리고 발끝으로 슬쩍 문을 연 다음, 총을 겨누고 침실을 둘러보았다. 방 안에는 아무도 없었고, 킹사이즈 침대는 가지런히 정돈되어 있었다. 침대에는 강아지 모양을 수놓은 격자무늬 퀼트가 덮여 있었다. 침대 옆 테이블에는 빈 유리잔이 놓여 있었고, 구석에는 자그마한 애완동물용 캐리어가 있었지만 강아지나 고양이는 보이지 않았다.
침실용 스탠드에서 떼어 낸 전구 두 개가 욕실로 들어가는 문의 양 옆 바닥에 놓인 채, 문 안으로 들여다보이는 흰색과 검은색의 욕실 타일 바닥 모서리를 환하게 비추고 있었다. 마리노가 조용히 다가가 총을 겨누자 약간의 움직임이 느껴졌는데, 그게 무엇인지 곧바로 알아차리지는 못했다.
에바 피블즈 부인의 벌거벗은 몸이 허공에 매달려 있었다. 광택이 나는 금색 끈은 그녀의 목을 한 번 감은 다음, 천장에 달린 강철 고리에 묶여 있었다. 손목과 발목은 반투명의 플라스틱 끈으로 단단히 묶여 있었고, 발은 욕실 바닥에 닿을락 말락 했다. 열어 둔 창문으로 차가운 바람이 들어와서 시신이 기이하게 흔들렸는데, 시신이 한쪽 방향으로 천천히 돌다가 다시 다른 방향으로 돌자 금색 끈이 꼬였다 풀리기를 반복했다.
---pp.466~46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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