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이켜보니 김매듯이 살아왔다. 때로는 호미자루 내던지고 싶을 때도 있었지만 후비적후비적 김매기를 멈추지 않았다. 그 결과 거둔 게 아무리 보잘것없다고 해도 늘 내 안팎에는 김맬 터전이 있어왔다는 걸 큰 복으로 알고 있다. 내 나이에 ‘6’ 자가 들어 있을 때까지만 해도 촌철살인(寸鐵殺人)의 언어를 꿈꿨지만 요즈음 들어 나도 모르게 어질고 따뜻하고 위안이 되는 글을 소망하게 되었다. - ‘작가의 말’ 중에서
자연의 질서를 긍정하고, 거기 순응하는 행복감에는 그런 불안감이 없다. 아무리 4월에 눈보라가 쳐도 봄이 안 올 거라고 불안해할 필요는 없다. 변덕도 자연 질서의 일부일 뿐 원칙을 깨는 법은 없다. 우리가 죽는 날까지 배우는 마음을 놓지 말아야 할 것은, 사물과 인간의 일을 자연 질서대로 지킬 수 있는 방법에 대해서가 아닐까. 익은 과일이 떨어지듯이 혹은 누군가가 거두듯이 그렇게 자연스럽게 죽고 싶다. 26p
이렇듯 남들이 말하는 나의 전원생활은 조금도 평화롭지 않다. 내가 여기 정착하려 한 것은 자연 친화적인 삶을 꿈꿨기 때문도 도처에 도사린 불안을 몰라서도 아니었다. 그냥 아파트가 너무 편해서, 온종일 몸 놀릴 일이 너무 없는 게 사육당하는 것처럼 답답해서 나에게 맞는 불편을 선택하고자 했을 뿐이다. 내가 거둬야 할 마당이 나에게 노동하는 불편을 제공해준다. 33p
손가락에 물집이 잡히는 것도 모르고 오래도록 잔디에 가위질을 하는 것은 풀 냄새 때문만은 아니다. 유년의 뜰을 떠난 후 도시에서 보낸, 유년기의 열 곱은 되는 몇십 년 동안에 맛본 인생의 단맛과 쓴맛, 내 몸을 스쳐간 일이라고는 믿어지지 않게 격렬했던 애증과 애환, 허방과 나락, 행운과 기적, 이런 내 인생의 명장면(?)에 반복해서 몰입하다 보면 그렇게 시간이 가버린다. 70년은 끔찍하게 긴 세월이다. 그러나 건져 올릴 수 있는 장면이 고작 반나절 동안에 대여섯 번도 더 연속상연하고도 시간이 남아도는 분량밖에 안 되다니. 눈물이 날 것 같은 허망감을 시냇물 소리가 다독거려준다. 그 물소리는 마치 다 지나간다, 모든 건 다 지나가게 돼 있다, 라고 속삭이는 것처럼 들린다. 그 무심한 듯 명랑한 속삭임은 어떤 종교의 경전이나 성직자의 설교보다도 더 깊은 위안과 평화를 준다. 34-35p
칠십 고개를 넘고 나서는 오늘 밤 잠들었다가 내일 아침 깨어나지 않아도 여한이 없도록 그저 오늘 하루를 미련 없이 살자고 다짐해왔는데 그게 아닌가. 내년 봄의 기쁨을 꿈꾸다니……. 가슴이 울렁거릴 수 있는 기능이 남아 있는 한 그래도 인생은 살 만한 것이로구나. 39p
내가 출석을 부르지 않아도 그것들은 올 것이다. 그래도 나는 그것들이 올해도 하나도 결석하지 않고 전원출석하기를 바라기 때문에 그것들이 뿌리로, 씨로 잠든 땅을 함부로 밟지 못한다. 그것들이 왕성하게 자랄 여름에는 그것들이 목마를까 봐 마음 놓고 어디 여행도 못할 것이다. 그것들은 출석할 때마다 내 가슴을 기쁨으로 뛰놀게 했다. 1백 식구는 대식구다. [...] 그것들은 내가 기다리지 않아도 올 것이다. 그래도 나는 기다린다. 기다리는 기쁨 때문에 기다린다. 43p
고개를 살짝 비튼 것 같은 유려한 선과, 팔과 손아귀의 힘을 낭비 없이 날 끝으로 모으는 기능의 완벽한 조화는 단순 소박하면서도 여성적이고 미적이다. 호미질을 할 때마다 어떻게 이렇게 잘 만들었을까 새롭게 감탄하곤 한다. 호미질은 김을 맬 때 기능적일 뿐 아니라 손으로 만지는 것처럼 흙을 느끼게 해준다. 53p
이 작은 마당이 한겨울 빼고는 매일매일 나에게 일을 시킨다. 주로 나는 땅 위를 엎드려 기어다니면서 일을 한다. [...] 땅은 내가 심거나 씨 뿌리는 것한테만 생명력을 주는 게 아니다. 바람에 날아온 온갖 잡풀의 씨앗, 제가 품고 있던 미세한 실뿌리까지도 살려내려 든다. [...] 내가 땅 위를 기면서 하는 노동은 제가 잉태한 것은 어떡하든지 생산하고자 하는 땅의 욕망과 내가 원하는 것만 키우고 즐기고 싶어하는 나의 욕망과의 투쟁이다. 이상한 일이다. 내가 땅 위에 직립했을 때 가장 땅과 친하고 땅을 기어다닐 때 가장 땅과 적대적이라는 건 얼마나 이상한 일인가. 58-59p
단돈 1천 원도 벌어본 일이 없는 청소년도 몇천만 원씩 카드빚을 질 수 있는 세상에 그까짓 몇백만 원 때문에……. 우리 70대들은 그렇게 변변치 못하고 소심하다. 그래도 도덕성 하나는 역대 정권보다 좀 나을 줄 알았던 참여정부의 여전한 몇백 몇천억 대의 하늘 무서운 부정한 돈 냄새, 그 얼굴이 그 얼굴인 권력 주변의 부끄러움을 모르는 뻔뻔한 얼굴들을 볼 때마다 이러고도 이 나라가 안 망하는 게 이상할 지경이었다. 그의 아름다운 편지를 읽으면서 이러고도 안 망하는 까닭이 우리 70대들 덕이 아닐까 하는 좀 엉뚱한 생각이 들었다. [...] 간 큰 이들이 아무리 말아먹어도 이 나라가 아주 망하지 않을 것 하나만은 확실한 것은 바로 간 작은 이들이 초석이 되어 떠받치고 있기 때문이라고 좀 으스대면 안 될까. 66-67p
첫애가 이 세상에서 첫 번째 시험을 보는 날 아침에 그애의 밥그릇 뚜껑이 깨지다니 이게 무슨 불길한 징조란 말인가. 손끝이 떨리면서 뚜껑 깨지는 소리보다 더 큰 소리로 가슴이 내려앉았다. 그 자리엔 시어머님도 계셨다. 그분은 옛날 어른답게 미신적으로 꺼리고 피하는 게 많았다. 사위스럽다고 야단치실 게 뻔했다. 그러나 그분은 잠깐 굳었던 표정을 환하게 풀고는 큰 소리가 났으니 합격은 떼논 당상이라고 말씀하시는 것이었다. 나도 그 말씀의 뜻을 곧 알아듣고 수험생에게 네가 합격해서 친척과 이웃들에게 그 소문이 쫙 퍼질 좋은 징조라고 뚜껑 깨지는 소리를 해몽했다. 71-72p
그렇게 사랑하고 사랑받은 종로서적을 언제부터인지 책을 사기 위해서가 아니라 만남의 장소로서만 이용하게 되었다. 근처에 대형서점이 많이 생기고 매장에 들어가기도 책을 고르기도 그쪽이 더 편하게 돼 있는 것 때문에 나도 모르게 그렇게 되고 말았다. 그러나 나는 여전히 종로서적을 사랑한다고 생각했고 그 사랑의 표시처럼 그 앞에서 누구를 만나거나 기다리는 것을 좋아했다. […] 나 아니라도 누가 하겠지 하는 마음이 사랑하는 것을 잃게 만들었다. 관심 소홀로 잃어버린 게 어찌 책방뿐일까. 추억어린 장소나 건물, 심지어는 사랑하는 사람까지도 늘 거기 있겠거니 믿은 무관심 때문에 놓치게 되는 게 아닐까. 78-79p
들판의 모든 것들, 시방 죽어 있지만 곧 살아날 것들, 아직 살아 있지만 곧 죽을 것들, 사소한 것들 속에 깃든 계절의 엄혹한 순환, 그런 것들이 하나하나 나에게 말을 거는 것 같았다. 침묵으로 말씀하시는 분이야말로 신이 아닐까. 그런 생각이 전율처럼 나를 흔들었다. 98p
먹는 거라면 절대로 버려서는 안 된다는 신념을 가진 이 늙은이를 자식들이나 손자들이 창피스러워한 나머지 죽는 날이나 기다리게 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남은 음식은 지딱지딱 버리고 새로 사 먹는 게 젊은 사람 마음에 드는 일도 되고 농사짓는 사람을 이롭게 하는 일도 된다는 걸 이제야 알았으니 내 자본주의 공부는 끝도 없어라. 110p
나는 엄마들이 아들에게 거는 기대는 한 집안의 이익과 노후대책을 바라는 지극히 이기적인 것인 데 비해 딸에게는 이 세상을 바꾸기를 바라는 더 원대한 꿈을 건다고 믿고 있다. 내 어머니가 척박한 환경에서도 딸에게 최고의 교육을 시키면서 귀 따갑게 하신 말씀이 ‘너는 나 같은 세상 살지 마라’였기 때문이다. 그게 바로 세상을 바꾸라는 비원이 아니고 무엇이랴. 113-114p
그 연세에 어떻게 진지를 손수 해 잡숫느냐고 상대방의 동정심은 수그러질 줄 모른다. 그럼 나는 조금 화가 나서 아니 내가 글도 쓰는데 그까짓 밥을 왜 못 해먹느냐고 짜증을 내고 만다. 밥 하고 반찬 하는 건 손에 익으면 쉬워지지만 글 쓰는 일은 생전 해도 숙련이 안 되기 때문이다. 내 입엔 내 손맛이 가장 잘 맞는다. [...] 젊었을 적의 내 몸은 나하고 가장 친하고 만만한 벗이더니 나이 들면서 차차 내 몸은 나에게 삐치기 시작했고, 늘그막의 내 몸은 내가 한평생 모시고 길들여온, 나의 가장 무서운 상전이 되었다. 199-200p
엄마는 말년에 우리 집에 와서 지내신 적이 많았는데 엄마가 오실 때마다 나는 내 책을 엄마의 손이 못 닿도록 서가 맨 위 칸에 꽂고도 안심이 안 돼 책 제목이 안 보이게 뒤집어 꽂아놓곤 했다. 엄마가 읽을까 봐 겁이 났다. [...] 따님 소설을 읽은 소감을 묻는 기자의 질문에 엄마는 싸늘하게 원 그것도 소설이라고 썼는지, 라고 대답하셨다. 그 매몰찬 혹평은 나에게 오래도록 상처가 되었다. 나는 아마 생전 엄마를 극복할 수 없을지도 모른다. 236p
근심이 생겨 너한테 털어놓을 말을 머릿속으로 굴리기만 해도 근심의 반은 사라지고, 미운 사람 욕을 너한테 하고 나면 미움은 거의 사라지고 만다. 도저히 인력으로는 해결 안 되는 어려움이 생겼을 때는 너한테 기도 좀 해달라는 부탁까지 하니 나는 얼마나 한심하고 뻔뻔스러운 엄마냐. 그러나 이해해다오. 내 기도발보다는 네 기도발을 더 믿는 것은 모성애보다 더 깊은, 네 진국스러운 인간성에 대한 신뢰감이라는 것을. 늘 뭔가를 시키고 부탁만 해서 미안하지만 한 가지만 더 하겠다. 만약 엄마가 더 늙어 살짝 노망이 든 후에도 알량한 명예욕을 버리지 못하고 괴발개발 되지 않은 글을 쓰고 싶어한다면 그건 사회적인 노망이 될 테니 그 지경까지 가지 않도록 미리 네가 모질게 제재해주기를 바란다. 엄마가 말년을 깔끔하게 정리할 수 있도록 도와다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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