갈증이 어떤 건지 다들 잘 알고 있을 겁니다. 연구에 따르면 신체의 80퍼센트가 수분이랍니다. 덩치가 나만 한 사람이라면, 무려 73킬로그램이나 되는 물을 몸에 싣고 다니는 격이지요. 뇌와 뼈, 몇 가지 장기(臟器)를 빼고 나면 그야말로 ‘걸어 다니는 물통’인 셈입니다.
그게 정상입니다. 물을 마시지 않으면 생각에 조리가 없어집니다. 피부가 끈적끈적해지고 창자가 뒤틀립니다. 몸에 수분이 모자라면 울 수도 없습니다. 입에서 음식을 씹어 삼키는 데도 수분이 필요합니다. 땀샘에서 땀을 내보내지 않으면 몸은 열에 들떠 괴로울 것입니다. 세포가 성장하자면 수분이 가득한 혈액이 있어야 합니다. 수분이 없으면 관절을 부드럽게 움직일 수 없습니다. 타이어에 공기가 필요하듯, 몸에는 수분이 필요합니다.
인간을 지으시면서 하나님은 ‘갈증’이라는 경보장치를 달아 두셨습니다. 한동안 물을 마시지 않으면서 몸에 어떤 반응이 일어나는지 살펴보십시오. 입술이 마르고, 혓바닥이 깔깔해지면서 두통이 생기겠지요. 심하면 관절이 뻑뻑해질 수도 있습니다. 수분 양이 기준치 아래로 떨어지면 몸은 이렇게 다양한 신호를 보냅니다.
영혼도 마찬가지입니다. 신령한 수분이 공급되지 않으면 말라비틀어진 마음으로부터 다급한 메시지들이 날아듭니다. 툭하면 화를 냅니다. 근심 걱정에 편할 날이 없습니다. 죄와 두려움이 야수처럼 울부짖습니다. 하나님은 그런 삶을 원하지 않으십니다. 사소한 일에도 한바탕 분을 내곤 하나요? 경고 메시지가 도착한 겁니다. 영혼 깊숙한 곳이 메말라 가고 있다는 신호 말입니다. 운전을 하다 보면 어쩔 수 없이 과속방지턱을 지나쳐야 하듯, 세상을 사노라면 이런 경우를 만나게 됩니다.
누구에게나 기분 처지는 날이 있게 마련입니다. 휴일 아침, 모두들 즐거워하는데 혼자서만 괜스레 우울해했던 경험이 있을 겁니다. 인간이라면 누구나 겪게 되는 느낌입니다. 하지만 정말 통제가 불가능한 감정일까요? 저절로 가라앉을 때까지 속수무책으로 기다려야 하는 걸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마음의 고통을 이를 악물고 참아야 할 ‘갈등’이 아니라, 채워 주어야 할 ‘갈증’으로 생각하세요. 내면에서 무언가가 고갈되기 시작한 증거로 보라는 뜻입니다.
목이 마르면 어떻게 하시나요? 꿀꺽꿀꺽 물을 들이킵니다. 영혼의 갈증도 그렇게 해결하십시오. 잔뜩 들이켜서 마음에 흘러넘치게 하세요. --- <목마른 자여! 하나님의 생수를 마셔라> 중에서
생수를 마시지 않으시겠어요? 두려움과 근심, 죄책감을 씻어 내야 하지 않겠습니까? 어려운 일이 아닙니다. 예수님이 누굴 초청하고 있는지 자세히 보십시오(요 7:37). “누구든지 목마르거든 내게로 와서 마시라.” 이제 마음 놓고 물가로 가십시오. 여러분은 주님의 생수를 마실 자격이 있습니다.
나이가 많든 적든 상관없습니다. 남성도 좋고 여성도 좋습니다. 하물며 피부색이 무슨 문제겠습니까? 불량배도, 망나니도, 철부지도 모두 괜찮습니다. 부자가 되어야 하는 것도 아니고, 신앙이 깊어야 하는 것도 아니고, 출세를 해야 하는 것도 아닙니다. 그저 무얼(‘누구를’이 더 정확한 표현이겠습니다만) 마시는지 제대로 알고 있기만 하면 됩니다.
예수님의 영이 강물처럼 흐르게 하고 싶습니까? 그럼 주님이 물처럼 어느 곳에든 스며들 수 있도록 마음을 열어 놓으십시오. 깊고, 깊고, 깊은 마음속에 이르도록….
예수님을 받아들여 하나가 되십시오. 그분을 기꺼이 맞아들여서 우리 삶에 역사하게 해 드리십시오. 그리스도를 영혼의 생수로 삼아 마음껏 들이키십시오.
어떻게 해야 하는지 난감하십니까? 갈증이 있는지 잘 살펴보는 데서부터 시작하십시오. 외로움을 무시하거나 분노를 부정하지 마십시오. 안식 없는 영혼, 늘 부글거리는 욕망, 겨드랑이까지 늪에 빠진 듯한 공포감…. 이런 것들이야말로 목마른 심령이 쏘아 올린 신호탄입니다. “여기다가 물 좀 떨어뜨려 줘!” 수분이 다 빠져나가서 건포도처럼 쪼글쪼글 말라붙지 않도록 마음을 지키십시오. 필요한 이들에게 사랑을 나눠 줄 수 있도록 영혼을 촉촉하게 유지하십시오. 갈증이 생기고 사라지는 걸 주의 깊게 관찰하세요.
좋은 물을 마셔야 합니다. 갈증을 느낄 때 무얼 마셔야 하는지는 삼척동자도 다 알 겁니다. 영혼이 목마를 때도 마찬가지입니다. 무엇이든 입에 넣기만 하면 갈증이 해소되는 건 아닙니다. 아무리 많은 사람에게 마음을 준다 한들 일시적인 만족을 얻을 뿐입니다. 잠시 뒤에는 다시 목마릅니다. 일주일 내내 일에 몰두하면 무언가를 이루어 낸 듯한 생각이 들겠지만, 영혼의 갈증까지 없애 주지는 못합니다.
‘종교’라는 딱지가 붙은 물병에 특별히 신경을 쓰십시오. 예수님도 그렇게 하셨습니다. 주님이 외치셨던 말씀을 잘 생각해 보십시오. 매춘부나 폭력배, 감옥의 죄수나 소년원에 수감된 아이들에게 하는 이야기가 아니었습니다. 방방곡곡에서 예루살렘으로 모여든, 이른바 신앙깨나 있다는 군중을 향해 하시는 말씀이었습니다. 부활주일 아침 바티칸 광장의 모습과 당시 상황이 비슷하다고 생각하면 쉽게 상상이 갈 겁니다. 성전, 제단, 나팔, 예복 등 온갖 신앙적인 상징물들이 빠짐없이 동원된 행사였습니다. 주님은 그 가운데 아무거나 하나를 지적해서 생수의 근원으로 삼으실 수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그렇게 하지 않으셨습니다.
그리스도는 자신을 생수의 근원으로 지목하셨습니다. ‘종교’는 마음을 진정시키지만, 만족을 주지는 못합니다. 교회활동을 열심히 하면서 갈증을 감출 수는 있겠지만, 갈급함을 완전히 잠재우자면 그리스도만이 유일한 해결책입니다.
자주 생수를 마셔 주십시오. 예수님이 사용하신 ‘마시라’라는 동사에는 되풀이해서 들이킨다는 속뜻이 있습니다. 그러므로 본문을 직역하면 “누구든지 목마르거든 내게 와서 마시고 계속 마시라”는 명령이 됩니다. 한 병 들이키는 것으로는 갈증을 달래지 못합니다. 정기적으로 생수를 마셔 주어야 갈증을 해소할 수 있습니다. 지속적으로 주님과 동행할 때만 목마른 영혼을 만족시킬 수 있습니다. --- <주님, 목이 마릅니다> 중에서
도움이 될 만한 도구를 하나 마련해 두었습니다. ‘목마른 영혼을 위한 기도’입니다. 사이클 선수가 자전거에 항상 물통을 달고 다니듯, 늘 이 기도 글을 가지고 다니십시오. 예수님의 보혈(Work), 성령님의 능력(Energy), 하나님의 주인되심(Lordship), 하나님의 사랑(Love) 등 심령의 갈증을 풀어 주는 네 가지 생수가 여기에 담겨 있습니다. 기억하기 쉬울 겁니다. 영어 단어 앞머리만 모으면 ‘WELL’, 즉 우물이 되거든요.
“주님, 목이 마릅니다. 생수를 받아 마시려고 예수님께 나옵니다. 십자가에 못 박히시고 무덤에서 부활하신 주님의 역사를 인정합니다. 죄를 사해 주시고 죽음에서 벗어나게 해 주셨음을 믿습니다. 하나님의 능력을 힘입게 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성령의 권능을 받았으므로 능력 주시는 그리스도 안에서 모든 일을 감당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주인 되심을 인정합니다. 나는 주님의 소유입니다. 내가 가진 모든 소유는 한결같이 주님이 주신 것입니다. 나를 사랑하신 하나님, 아무것도 나를 주님의 사랑에서 갈라놓을 수 없음을 고백합니다.”
기회가 있을 때마다 나는 이 기도를 드립니다. 회의 때문에 스트레스를 잔뜩 받았을 때, 단조롭고 지루한 일상이 되풀이될 때, 먼 곳까지 운전해 가야 할 때, 내키지 않는 여행을 떠날 때, 인내력의 한계를 시험하는 갖가지 사건들에 부닥칠 때도 똑같은 기도를 드립니다. 하루에도 여러 차례, 하나님의 우물로 가서 죄로 죽을 수밖에 없었던 내게 베풀어 주신 주님의 역사와 성령의 능력, 하나님의 주권과 사랑을 되새깁니다. 시시때때로 하나님의 우물에서 생수를 길어 올리십시오. 영원히 마르지 않는 우물에서 생수를 떠 마시지 않으시겠습니까? 말라비틀어진 심령을 더 이상 방치하지 마십시오.
십자가 사건을 통해 이루신 하나님의 역사를, 성령님의 능력을, 주님이 삶의 주인 되심을, 그분의 무조건적이고 무한한 사랑을 받아들이십시오. 깊이 자주 들이마셔 주십시오. 생수의 강이 흘러넘칠 것입니다. --- <목마른 영혼을 위한 기도>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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