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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천히, 함께하는 마지막

천천히, 함께하는 마지막

이현택 | 책밭 | 2014년 10월 10일   저자/출판사 더보기/감추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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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품목정보
발행일 2014년 10월 10일
쪽수, 무게, 크기 262쪽 | 411g | 153*224*15mm
ISBN13 9791185720036
ISBN10 11857200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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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소개 (1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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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프기 전 일할 때만큼이나 치열한 투병 생활. 암 환자 아버지는 왜 건강관리를 할까. 정답이라고 말한 적은 없지만, 아버지와의 대화를 종합해 본 결과 “애들 만나려고”였다. 애들의 범주에는 나(자녀)도 있고, 아버지가 지도했던 학생들 또는 나의 친구들도 있다. 아버지의 지인 또는 학창시절 친구들을 ‘애들’의 범주로 묶으시기도 한다.---p.103

특히나 2012년 3월 첫 방사선 치료 때에는 병원비가 나의 목을 조여 오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고시원 작은 침대에 육중한 몸을 뉘고 있는데, 아침에 잠을 깨우는 문자메시지 소리가 들려 휴대전화를 들여다보았다. OOO병원 8만 원. 당시 월26만 원짜리 고시원에 살고 있었던 내게 그 메시지보다 무서웠던 것은 없었다. 33회의 방사선 치료에 약 300만 원이 들었다. 당시 나의 빚은 거의 2억에 육박해 있었다.---p.121

반쯤 먹었을까. 아버지가 본론을 꺼냈다.
“나, 치료법이 더는 없나봐.”
울컥했다. 울지 않으려고 했다. 5분 정도 별말 없이 ‘하하하’ 같은 헛웃음 소리만 내면서 밥을 먹었다. 침묵을 깬 건 아버지였다.
“문어 머리가 익었구나. 정력에 좋다니 네가 먹거라.”
“두 마리니깐 하나씩 드시죠.”
낄낄대면서 하나씩 먹었다. 고소한 맛이 좋다.---p.135

솔직한 이야기로, 내게는 부모님의 전화가 그리 반갑지만은 않다. 이건 웬 불효자 인증 같은 소리인가 할지도 모르겠다. 그 이유는 가끔은 두렵기 때문이다. 나는 부모님과의 전화에서 가슴이 덜컹 내려앉은 적이 수십 차례였다. 아버지가 암에 걸렸다는 전화, 아버지도 아프고 경기가 좋지 않아 사업을 접어야겠다는 전화 등 다양했다. 오히려 사업이 어려우니 돈을 좀 해드리라는 전화는 양반이었다. 지금도 나는 전화가 울리면 1초 만에 받는 편이다. 어떤 사람들은 내게 전화를 왜 그렇게 빨리 받느냐고 묻는다. 두려움을 떨치기 위해서다. 빨리 어떤 일인지 알고 싶은 습관이 생겼다.---pp.145-146

암 환자의 취향은 병세에 따라서 변한다. 내 경험상으로는, 대개 3개월 단위로 취향이 달라지는 경향을 보인다. 먹고 싶은 것은 2~3일에 한 번씩 생각이 난다. 마치 입덧을 천천히 하는 느낌이라고 할까. 하지만 먹고 싶은 것에 대한 욕구는 입덧에 비해 훨씬 길고 꾸준하다. 어느 순간에 잠깐 먹고 싶은 것이 생각났다가 애써 구해주면 정작 몇 입 먹고는 맛이 없다는 둥 변덕이 심한게 입덧이라면, 암 환자의 입맛은 길고도 꾸준하다. 대구탕이 먹고 싶으면 그것을 먹을 때까지 이틀, 사흘, 길게는 일주일까지 생각이 나는 것이 암 환자의 입맛이다.
---p.2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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