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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의 아이들은 모두 춤춘다

신의 아이들은 모두 춤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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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fter the Quake
[직수입양서] After the Quake
Haruki Murakami Vintage Books
18% 16,300
After the Quake

품목정보

품목정보
발행일 2000년 08월 01일
쪽수, 무게, 크기 255쪽 | 452g | 크기확인중
ISBN13 9788970123592
ISBN10 8970123598

책소개 책소개 보이기/감추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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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소개 (1명)

저자 소개 관련자료 보이기/감추기

역자 : 김유곤
고려대학교 영문학과와 충남대학교 대학원을 졸업하고, 동양전문대학 교수, 우석출판사 편집 주간, 문학사상사 편집 고문을 역임했다. 현재 번역문학가로 활동 중이다. 역서로는 『생명의 샘터』, 『샘터로 초대합니다』, 『보랏빛 사연들』, 『빛과 사랑을 찾아서』, 『행복의 비결』, 『사랑과 성의 고민』, 『사랑의 정원 1,2』, 『자유의 땅은 어디냐』, 『밤에 피는 꽃』, 『사진으로 보는 하루키 문학 세계』 등 다수가 있다.

YES24 리뷰 YES24 리뷰 보이기/감추기

--- 이상구 flypaper@yes24.com
영화에 있어서 대사는 가능한 절제되는 편이 영상의 적극적인 이해에 도움이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했던 적이 있다. 이른바 스토리텔링, 즉 이야기를 이끌어 가는 방식이 대사에 안배되기보다는 영상의 교차편집에 의해 머리 속에 각인되는 편이 좀 더 영화적이지 않을까, 하는 느낌이었다. 그런 이유로 영화란 가능한 3인칭 시점으로 이끌어 가야지 나레이션이 깊숙이 개입되는 시도는 관객을 수동적인 대상으로 이끈다는 생각이 든다.

하지만 이런 관점을 확실하게 뒤바꾼 스타일이 홍콩 영화의 몽롱하면서도 다소 두서 없어 보이는 나레이션의 총공세이다. 자다 깬 젊은이들의 주변치기 대화처럼 뜬금없이 진행되다가도 결코 유치해 보이지 않는 사념의 아포리즘에 맞장구를 치며 좋아했던 기억. 1인칭 시점 나레이션의 나열이 이렇게도 관객과의 직접적인 커뮤니케이션을 이끌 수 있구나, 하며 감탄했던 기억이 있다.

무라카미 하루키의 신작 소설집인 『신의 아이들은 모두 춤춘다』는 「지진의 뒤에」라는 타이틀로 일본 『신쵸』지에 연재된 작품들을 중심으로 엮은 단편 소설집이다. '1995년 2월에 도대체 무슨 일이 일어났는가?'라는 일관된 테마로, 각각의 단편을 유기적으로 엮어 연출한 이른바 '컨셉트 앨범'인 셈이다.

그 '컨셉트'의 핵을 이루는 것은 1995년 1월의 '고베 대지진'과 그 두 달 후인 3월에 일어난 '옴진리교 사린 사건'이다. 후자인 옴진리교 사린 사건이 하루키의 전작 『언더 그라운드』에서 여과 없이 다뤄진 경험이 있다면, 전자인 '고베 대지진' 역시 이미 작품집 『렉싱턴의 유령』과 『하루키의 여행법』에 그 모습을 드러낸 바 있다.

『렉싱턴의 유령』에 수록된 「장님 버드나무와 잠자는 여자」는 고베(작가의 고향이기도 하다)에서 행해진 작가 낭독회에 쓰인 작품을 수정해 수록한 위령곡인 셈이고, 『하루키의 여행법』 에서는 좀 더 적극적인 방식 즉, 고베를 단독으로 도보 여행 하면서 느낀 지진의 상념을 기록한 글 「고베까지 걷다」를 수록하고 있다.

그렇다면 이런 추측이 가능하다. 『언더그라운드』에서 '옴진리교 사린 사건'의 희생자를 인터뷰 해 그 생생한 리얼리티를 전달했던 작가가 『하루키의 여행법』을 거쳐 신작 『신의 아이들은 모두 춤춘다』에서 본격적으로 '고베 대지진'을 다루기로 하지 않았나, 하는 추측 말이다. 하지만 추측은 추측일 뿐, 한 인간에게 자연과 인간이 안겨준 거대한 피해는 단순히 물리적인 기간과 성정으로 이해되지 않는다. 작가는 두 사건이 결코 별개의 것으로 위치할 수는 없다고 단언한다. 그것은 물리적인 동시에 심적인 것이라고 말하면서, 두 사건 사이를 잇는 통로를 마련하기 위해서 이 소설을 썼음을 시사한다.

그러한 작업을 수행하기 위해 하루키가 시도한 방식이 그의 전작에서는 일례를 찾아보기 힘든 3인칭 시점으로의 전환이다. 홍콩 영화의 나레이션처럼 1인칭 화자로서 자신이 직접 개입하는 방식에 익숙해 있던 독자들에게는 다소 낯선 장면이 펼쳐질지도 모른다. 작가가 이렇게 자신과 화자와의 거리감을 부러 설정한 이유는 무엇일까? 하루키가 1997년 5월에 니시미야에서 고베까지 혼자서 걸었던 기행 에세이 「고베까지 걷다」에서 미뤄 짐작할 수 있다.

"9월 XX일. 내 출판 기념회 때문에 오랜만에 고향인 가야와 고베에 다녀왔다. 지진의 재앙을 입은 이래 처음으로 방문했다. 8개월이 지났는데도 여전히 사방에 남아 있는 자연의 깊은 상흔을 보고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막으려 해도 막을 길이 없는 천재지변이라고는 해도, 그런 광경을 직접 목격하니, '왜 하필이면 이런 일이 여기서 또 일어나야만 했을까' 하고 깊이 생각하게 된다."

옴진리교 사린 사건과 같은 인재야 비참한 재앙을 극복할 수 있는 내면적 반성과 사유를 제공할 꺼리가 있다 치더라도, 지진이라는 천재지변처럼 전혀 인간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어느 날 한순간에 불현듯 찾아와 모든 것을 파괴해 버리고 마는 재앙의 참담함이 가져다 주는 또 다른 무력감은 어쩔 것인가. 인재와는 다른 허탈함 그 자체인 것이다. 아픔에 1인칭으로 개입하기보다는 관찰자의 시점에서 조심스럽게 접근하는 것이 3인칭 시점으로의 전환을 꾀한 이유인 듯 하다.

돌연한 재앙, 예기치 못한 불행을 겪게 된 사람들의 충격과 아픔, 그로 인한 일종의 결락감을 경험한 사람들을 앞세워, 지진과 같은 천재지변이 불러온 고통이 각각의 내면 인자에게 어떻게 상처입고, 극복되어지는지, 나아가 인간이 또 다른 인간을 위해 가져다 줄 수 있는 희망의 모습을 찾는다. 또한 1인칭 시점의 친숙함을 버린 대신 3인칭 내러티브의 효과적인 활용을 통해 인간의 삶과 죽음, 사랑 그리고 섹스에 관한 경이로우면서도 엄숙한 삽화를 구사하며, 매우 뜻깊은 주제를 무겁지만 자유로운 코드로 풀어놓는다.

너무도 애달프고 벅찬 슬픔을 담고 있는 책. 유년시절의 즐거웠던 기억들이 산산이 흩뿌려진 채, 소리도 없이 사려져 버리는 듯한 허한 슬픔을 형상화시킨 작품. 지진이라는 모티프가 직접적으로 주제로서 자리하지는 않았지만, 간접적인 주제, 3인칭 시점으로의 전환만큼이나 지진 그 자체의 참혹한 파괴상을 효과적으로 에둘러 기술한 놀라운 심리 묘사의 집결판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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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그 이야기 속에서 무엇보다도 중요했던 것은, '기본적으로는' 그 사나이가 죽음을 간절히 원하고 있다는 사실이었다. 그녀로서는 그 의미를 알 수 있었다. 다만 제대로 설명할 수 없는 어려움이 따랐다. 그녀가 이해할 수 있었던 건 이 여행자는 사실 죽음을 구하고 있다는 사실이었다. 스스로 죽음을 선택하는 것이 자신에게 어울리는 결말이라는 것을 '알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전력을 다해서 싸우지 않으면 안 된다. 살아 남기 위해 자신을 억누르는 것을 상대로 싸우지 않으면 안 되는 것이다. 쥰코의 마음 깊은 곳을 뒤흔들어 놓은 것은 이야기의 중심에 있는, 그러한 근원적이라고도 할 수 있는 모순성이었다.
--- p.58
지금은 우선 여기에 머물러 있으면서 두 여자를 지키지 않으면 안 된다. 상대가 누구든, 정체 모를 상자속에 처넣어지게 해선 안 된다. 설사 하늘이 무너져 내린다고 해도, 대지가 소리를 내며 갈라진다고 해도.
--- p.212
잠에서 깨어났을 때, 가타키리는 침대에 누워 있었다. 그는 우선 한 쫏 눈을 떠서 살며시 주위를 바라본 다음 ,다른 쪽 눈을 떴다.처음 시야에 들어온 건 머리맡에 놓여 있는 스틸 스탠드와,거기서 그의 몸을 향해 뻗어있는 링거 주사건이었다.
--- p.158
'이봐, 쥰페이' 하고 귀가길에 다카쓰키가 말했다. 1월의 밤이라 뿜어 내는 입김이 하얗게 서렸다.

'너 혹시 결혼할 마음 있니?'

'현재는 없는데' 하고 쥰페이는 대답했다.

'정해 놓은 연인은?'

'없는 것 같은데.'

'그럼 어때, 사요코와 함께 살고 싶지 않아?'

쥰페이는 마치 눈부신 무언가를 보는 듯한 눈으로 다카쓰키의 표정을 살폈다. '왜?'

'왜라고?' 오히려 그가 더 놀란 듯한 눈치였다. '왜라니, 그런 건 이미 정해져 있는 거나 마찬가지잖아. 무엇보다도 먼저 난 너 이외의 누구도 사라의 새 아빠가 되는 걸 원치 않기 때문이야.'

'단지 그 이유 때문에 나와 사요코가 결혼해야 한다는 거야?'

다카쓰키는 한숨을 쉰 후 쥰페이의 어깨를 굵은 팔로 감았다. '사요코와 결혼하는 게 싫어? 나 다음으로 그녀의 남편이 되는 게 싫어?'

'그런 게 아냐. 내게 걸리는 대목은, 그런 식으로 마치 물건을 사고파는 것처럼 거래해도 괜찮을까 하는 거지. 그건 서로의 체면 문제야.'

'이건 거래 같은 게 아냐' 하고 다카쓰키는 말했다.'체면과는 상관없어. 넌 사요코를 좋아하고 있어. 그리고 사라도 널 좋아하고 있잖아. 내 말 틀렸니? 중요한 건 그거지. 아마도 네겐 너 나름대로의 까다로운 살아가는 방법이 있을 거야. 그건 나도 알아. 그렇지만 내가 보기엔 바지를 입은 채 팬티를 벗으려 하는 것으로밖엔 보이지 않지만 말야. 팬티를 벗어야 하는데 바지라는 체면만 생각하면 되겠어?'
--- pp.196-197
'우린 처음부터 이랬어야 했는데.' 침실로 옮긴 후 그녀는 나지막한 목소리로 말했다. '하지만 당신 혼자만 모르고 있었어. 아무것도 모르고 있었지. 연어가 개천에서 자취를 감추어 버릴 때까지.'
--- p.208
우리의 마음은 돌이 아닙니다. 돌은 언젠가 무너져 내릴지도 모릅니다. 모습과 형태를 잃어버릴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마음은 무너지지 않습니다. 우리들은 그 형태가 없는 마음을 좋은 것이든 나쁜 것이든 어디까지나 서로 전할 수 있습니다. 신의 아이들은 모두 춤을 춥니다.
--- p.108
요시야의 어머니는 마흔셋이었지만, 30대 중반으로밖에는 보이지 않았다. 얼굴 생김새가 단정하여 자못 청초한 느낌을 주었다. 밥을 조금 먹고 아침 저녁으로 강도 높은 체조를 하여 아름다운 몸매를 유지하고 있었으며, 피부에는 윤기가 돌았다. 더군다나 요시야하고는 열여덟 살밖에 차이가 나지 않아, 사람들은 항상 어머니를 누나로 착각하곤 했다.

게다가 그녀에게는 한 아들의 어머니라는 자각이 거의 없는 상태였다. 어쩌면 그냥 단순히 괴상한 인간이었을지도 모른다. 요시야가 중학교에 들어가 성적(性的)인 호기심에 눈을 뜬 후에도 태연하게 속옷 바람으로, 때로는 알몸으로 집 안을 돌아다녔다. 그래도 침실은 따로 쓰고 있었는데, 밤중에 외로워지면 거의 아무것도 걸치지 않은 채로 아들 방으로 들어와서 이불 속으로 기어 들어오곤 했다. 그리고 강아지나 고양이를 안는 것처럼 요시야의 몸을 부등켜안고 잤다. 어머니에게 불순한 생각이 없다는 건 잘 알고 있었다. 하지만 그럴 때 요시야의 마음은 결코 편치 않았다. 발기해 있는 성기를 어머니에게 들키지 않기 위해 그는 굉장히 부자연스러운 자세를 취할 수 밖에 없었다.

어머니와의 치명적인 관계에 빠지는 게 두려웠기 때문에, 요시야는 쉽게 섹스를 할 수 있는 여자친구를 필사적으로 찾아다니며 거리를 해맸다. 그런 상대가 없을 때에는 일부러 정기적으로 마스터베이션을 했다. 고등학생 때부터 아르바이트한 돈으로 창녀들까지 찾아다녔다. 그런 행위는 남아도는 성욕을 해소하기 위해서라기보다는 오히려 두려움 때문에 생겨난 것이었다.

요시야는 적당한 식에 집을 나와 혼자 독립된 생활을 시작해야 했을 것이다. 요시야도 그 문제로 고민도 많이 했다. 대학에 입학했을 때도, 취직을 했을 때도, 늘 그 문제로 고민할 때가 많았다. 그러나 스물다섯이 된 현재에 이르기까지 그는 결국 집을 나올 수 없었다. 어머니를 홀로 내버려두면 무슨 일을 저지를지 모른다는 것도 그 이유 중 하나였다. 요시야는 지금까지, 어머니가 돌발적이고 종종 파멸적인(그리고 그런 일은 좋은 뜻에서 나온 것이긴 하지만) 발상을 실행에 옮기려 하는 것을, 전력을 기울여 막아 왔던 것이다.

그리고 만일 지금 여기서 요시야가 느닷없이 집을 나가겠다는 말을 꺼내면, 틀림없이 한바탕 큰 소동이 벌어질 거라는 걸 요시야는 잘 알고 있었다. 어머니는 언젠가는 아들과 따로 떨어져서 살아가야 할 날이 올 거라고는 단 한 번도 생각해 본 적이 없을 것이다. 요시야가 열세 살 때 신앙을 버리겠다고 선언하자, 어머니가 얼마나 깊은 실망과 비탄에 빠져 망연자실했었는지, 그는 지금도 잘 기억하고 있다. 보름 동안 어머닌느 거의 아무것도 먹지 않고, 말도 하지 않고, 목욕도 하지 않고, 머리도 감지 않고, 속옷도 갈아입지 않았다. 생리 뒤처리조차 제대로 하지 않았다. 그처럼 더럽고 냄새 나는 어머니를 본 것은 그때가 처음이었다. 그 소동이 다시 벌어질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니 상상만 해도 요시야의 마음은 아파왔다.
--- pp.84-85
선생님 몸속엔 돌이 들어있답니다. 희고 딱딱한 돌이래요. 크기는 어린애 주먹만 하대요. 그게 어디서 생겼는지 자긴 알 수 없대요. 돌이요? 하고 사쓰키는 반문했다. 돌에 글자가 새겨져있는데 일본어라서 읽을 수가 없대요. 검은 먹으로 뭔가 작은 글자기 쓰여있대요. 그건 오래된 것이어서, 분명 선생님은 오랜 세월동안 그 걸 몸안에 두고 살아왔을거랍니다. 그리고 당신은 그 돌을 어딘가에 버리지 않으면 안된답니다. 그러지 않으면 죽어서 화장을 한 뒤에도 그 돌만 남는답니다.
--- p.130
사라는 틀림없이 그 새로운 결말을 기뻐할 것이다. 아마도 사요코 역시 이제까지와는 다른 소설을 쓰자고 쥰페이는 생각한다. 날이 새어 주위가 밝아지고, 그 빛 가운데서 사랑하는 사람들을 꼬옥 껴안고, 누군가가 꿈꾸며 애타게 기다리고 있는 것 같은 그런 소설을. 하지만 지금은 우선 여기에 머물러 있으면서 두 여자를 지키지 않으면 안 된다. 상대가 누구든, 정체 모를 상자 속에 쳐넣어지게 해선 안 된다. 설사 하늘이 무너져 내린다고 해도, 대지가 소리를 내며 갈라진다고 해도.
--- p.212
동키치는 마사키치가 모아 온 벌꿀로 벌꿀파이를 구워야겠다는 생각이 떠올랐다. 조금씩 연습을 하다 보니 자신에게 바삭바삭한 맛있는 벌꿀 파이를 굽는 재능이 있다는 것을 알았다. 마사키치는 그 벌꿀 파이를 시장에 갖고 가서 사람들에게 팔았다. 그 벌꿀 파이는 사람들의 인기를 끌어 날개 돋친 듯 팔렸다. 그리고 동키치와 마사키치는 서로 헤어지는 일 없이 산 속에서 행복하게 친구로서 살아갈 수가 있었다.
--- p.212
니밋은 양손을 내밀어 손을 저으며 강하게 고개를 가로저었다. '선생님, 부탁입니다. 더 이상 제게 아무 말도 하지 마십시오. 그 노파가 말했던 것처럼 꿈을 기다리세요. 선생님 기분은 알 수 있지만 일단 말을 해버리면 그건 거짓말이 되니까요.' 사쓰키는 그 말을 이해하고, 잠자코 눈을 감았다. 크게 숨을 들이마셨다 내쉬었다.

'꿈을 기다리는 겁니다, 선생님'하고 니밋은 타이르듯이 다정하게 말했다. '지금은 참고 견디세요. 말을 하지 마세요. 말은 돌이 될 수 있습니다.'
--- p.134
나는 이제까지 이처럼 구체적으로 상세한 원칙을 정해 놓고 일련의 단편소설을 쓴 적은 없었다. 그런 점에서 '결과적으로' 자기 신에 대한 비교적 도전적인 시도였다고 할 만하다. 하지만 실제로 써나갈 때는 특별히 도전적이라는 기분은 들지 않았다. 그보다는 자기가 하나의 테두리(범위)를 정해 가지고, 그속에서 여러가지 소재나 수법을 동원해 본다고 하는, 말하자면 게임을 하는 것과 같은 호기심 쪽이 오히려 강했던 것 같다고 생각된다. 이제까지 사용한 적이 없는 근육을 꽤 많이 사용했다는 육체적은 반응은 있다. 그리고 그 반응은 아마도 다음 장편소설을 쓰는 데로 옮겨 갈 것이라는 예감이 든다.
--- p.215
'나는 아주 평범한 인간이에요. 아니, 그 이하입니다. 머리도 대머리가 돼 가고 있고 배도 나오고, 지난 달에 마흔 살이 되었어요. 마당발이고, 건강 진단을 받아 보니 당뇨병 증세도 있다고 하더군요. 여자하고 잔 지도 석달이나 됩니다. 그것도 직업 여성을 상대로 말예요. 빚을 징수하는 일에 관해서는 부서 내에서 조금 인정받고 있지만, 그렇다고 해서 누구에게도 존경받지는 않습니다.

직장이나 사생활에서도 나를 좋아해 주는 인간은 하나도 없어요. 말주변이 없고 낯을 가려서 친구를 만들 수도 없어요. 운동신경은 둔하고 음치인 데다 키도 작고 근시입니다. 난시도 조금 있죠. 참혹한 인생입니다. 단지 잠자고 일어나 먹고 똥사는 재주밖에 없는 변변치 못한 인간입니다. 무엇 때문에 살아가고 있는지 그 이유도 잘 모르겠어요. 그런 인간이 어떻게 도쿄를 구하는 그런 큰 일을 할 수 있겠어요?' '카타키리 씨' 고 개구리 군은 온화한 목소리로 말했다. '당신 같은 사람만이 도쿄를 구할 수 있어요. 그리고 당신 같은 사람을 위해서 나는 도쿄를 구하려는 겁니다.'
---p.155
나는 도대체 '이 일에서' 무얼 구하려고 했던 걸까? 걸음을 옮기면서 요시야는 스스로에게 질문을 던졌다. 나는 지금 내 자신이 '여기에' 있는 것의 어떤 연결고리 같은 걸 확인하려 했던 것일까? 자신이 어떤 새로운 사실의 줄거리 속에 짜넣어져서 보다 잘 다듬어진 새로운 역할을 부여받길 바라고 있었던 걸까? 아니다, 하고 요시야는 생각했다. 그런 건 아니었다. 내가 뒤쫓고 있었던 건, 아마도 나 자신이 안고 있는 마음속 암흑의 꼬리 같은 것이었다. 나는 우연히 그걸 보게 되었고, 뒤쫓아가며 매달리려 하고, 결국에는 종전보다 깊은 암흑 속에 내던져 버리고 만 것이다. 이제 내가 그것을 보게 되는 일은 두 번 다시 없을 것이다.
--- p.102
'그래, 그래. 맞는 말이야.동키치도 사라와 똑같은 생각을 했단다. 그래서 둘은 연어와 벌꿀을 서로 맞바꾸었고, 그때부터 서로는 상대방의 사정을 더 잘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단다. 서로 만나면서 사귀고 보니 마사키치는 결코 엉큼하거나 아니꼬운 녀석이 아니었고, 동키치 또한 그냥 난폭하기만 한 놈이 아니었어. 이렇게 해서 둘은 친구가 되었지....'
--- p.203
'그는 제게 언젠가 한 번 북극곰 이야기를 해주었어요. 북극곰이 얼마나 고독한 동물인가 하는 이야기예요. 그들은 1년에 한 번만 교미를 합니다. 1년에 딱 한 번만이요. 부부와 같은 관계는 그들 세계에는 존재하지 않습니다. 얼어붙은 대지 위에서 수컷 북극곰 한 마리와 암컷 북극곰 한 마리가 우연히 만나게 되고, 거기서 교미가 이루어져요. 그다지 긴 교미는 아닙니다. 행위가 끝나면, 수컷은 무언가를 보고 무서워하는 것처럼 암컷의 몸에서 물러선 다음 교미를 한 현장에서 도망칩니다. 글자 그대로 쏜살 같이 뒤도 돌아보지 않고 달아나는 거죠. 그리고 다음 1년 동안 깊은 고독 속에서 살아가는 거예요. 상호간의 의사소통이라는 건 전혀 존재하지 않습니다. 마음과 마음이 서로 통하는 일도 없어요. 그것이 북극곰 이야기예요. 아무튼 그게 제 주인이 제게 이야기 해 준 겁니다.ㅣ'

'어쩐지 이상한 이야기로 들리는 군요.' 하고 사쓰키는 말했다. '확실히 이상한 이갸깁니다.' 하고 니밋은 고지식한 얼굴로 말했다. '그때 나는 주인에게 물어 보았어요. 그렇다면 도대체 북극곰은 무엇 때문에 살아가고 있는 겁니까..라고요. 그랬더니 주인은 회심의 미소를 지으며 제게 되묻더군요. '니밋, 그럼 우리 인간은 대체 무엇 때문에 살아가고 있나?' 하고요.
--- pp. 135-136
그녀는 한 남자를 30년에 걸쳐 증오해 왔다. 남자가 몹시 괴로워하면서 죽기를 원했다. 그래서 마음속으로는 늘 지진이 일어나기를 간절히 원하기까지 했다. 어떤 의미에서는 내가 그 지진을 불러일으켰던 것이다. 그리고 그 남자가 나의 마음을 돌로 변화시켰던 것이다. 먼 산에서는 회색 원숭이들이 아무 말 없이 그녀를 바라보고 있었다. '살아가는 것과 죽는 것은 어떤 의미에선 똑같거든요, 선생님' -133-

날이 새어 주위가 밝아지고, 그 빛 가운데서 사랑하는 사람들을 꼬옥 껴안고, 누군가가 꿈꾸며 애타게 기다리고 있는 것 같은 그런 소설을. 하지만 지금은 우선 여기에 머물러 있으면서 두 여자를 지키지 않으면 안된다. 상대가 누구든. 정체 모를 상자속에 처넣어지게 해선 안된다. 설사 하늘이 무너져 내린다고 해도, 대지가 소리를 내며 갈라진다고 해도. -212-
--- p.133
'그게 좋아요, 가타키리 씨. 아무것도 기억하고 있지 않은 편이 좋아요. 아무튼 모든 격렬한 싸움은 상상력 속에서 이루어졌습니다. 그것이야말로 우리의 싸움터죠. 우리는 거기서 이기고, 거기서 패배합니다. 물론 우린 누구나 유한한 존재고, 결국은 패배하죠. 하지만 어니스트 훼밍웨이가 간파한 것처럼, 우리의 인생은 어떻게 이기느냐, 하는 이기는 방식보다, 어떻게 지느냐 하는 패배하는 방식에 따라 최종적인 가치가 정해집니다.

그러니까 어떻게 사느냐, 하는 것 못지않게 어떻게 죽느냐에 따라 인생의 가치가 결정될 수 있다는 거죠. 나와 가타키리 씨는 어떻게든 됴쿄의 괴멸을 저지할 수 있었습니다. 15만 명의 사람들이 죽음의 검은 손으로부터 피할 수 있었어요. 누구도 알지 못하지만, 우린 그걸 달성한 겁니다.'
--- p.162
그 여자는 마을의 맨 가장자리에 있는 작은 집에 살고 있었다. 가난한 마을이었고, 가난한 집이었다. 경사면에 서로 포개지듯이 이어지는 비좁은 논, 여위고 더러운 가축, 도로는 웅덩이투성이였고, 쇠똥 냄새가 사방에 풍기고 있었다. 성기를 드러낸 수캐가 근처를 어슬렁거리고 있었고, 50cc짜리 오토바이가 요란한 소리를 내며 진흙을 양옆으로 튀기면서 지나갔다.

벌거숭이에 가까운 아이들이 길가에 늘어서서 니밋과 그녀가 지나가는 걸 가만히 바라보고 있었다. 이런 초라한 마을이 그 고급 리조트 호텔 바로 옆에 있었구나 하고 사쓰키는 새삼스레 놀랐다. 나이가 많은 여자였다. 여든 살 가까이 되지 않았나 싶었다. 피부는 거친 가죽처럼 거무스름하고, 온몸에 골짜기처럼 깊은 주름이 잡혀져 있었다.
--- p.129
가타키리는 두꺼운 옷에 싸여 있는 듯이 잠들어 있는 개구리군의 모습을 오랫동안 바라보고 있었다. 그러면서 병원에서 퇴원하면 <안나 키레리나> 와 <백야> 를 사서 읽어 봐야겠다고 가타키리는 생각했다. 그리고 그 소설에 대해서 개구리 군과 함께 실컷 얘기하는 것이다.

이윽고 개구리군이 몸을 움직이기 시작했다. 처음엔 개구리군이 잠결에 몸을 흔들고 있는 거라고 기타키리는 생각했다. 하지만 그렇지 않았다. 개구리 군은 뒤에서 누군가가 흔들고 있는 커다란 인형처럼 어딘지 부자연스런 움직임을 보이고 있었다. 기타키리는 놀라서 숨을 죽이며 그 상태를 엿보고 있었다. 그는 일어서서 개구리 군 곁에 가 보려 했다. 그러나 온몸이 마비되어 말을 듣지 않았다.
--- p.16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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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연작소설에서는 종전의 작품과는 판이한 경험을 엿볼 수 있고, 매우 재미있으면서도 문학성이 풍부한 여섯 편의 단편이 담겨 있다. 그 단편들은 『상실의 시대』가 단편 '반딧불이'를 장편화한 것처럼. 조만간 새로운 명작 장편소서로 거듭날 것이라고 기대되고 있다.

장석주(시인.문학평론가)
이 연작소설은 하루키가 1인칭의 시야를 넘어서, 현실에 대한 커다란 연대감과 신뢰감을 축으로, 창작의 방향을 고쳐잡겠다는 결의의 표명이며, '벌꿀 파이'의 끝맺는 말처럼 "누군가 꿈꾸며 애타게 기다리고 있는 것 같은 그런 소설"을 쓰겠다는 선언이 담겨 있다.

호리에 도시유키(일본 불문학자)
이 연작 소설집은 하루키가 2000년대의 출발점을 긋는 매우 획기적인 책인 동시에, 20세기 말의 최후를 장식하는 기념비적 작품이다.
스즈무라 가즈나리(일본 불문학자. 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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