헛되고 헛되며 헛되니 모든 것이 헛되도다. 사람이 해 아래서 수고하는 모든 수고가 무엇이 유익한고. 한 세대는 가고 한 세대는 오되 땅은 영원히 있도다. 만물의 피곤함을 사람이 말로 다 할 수 없으니 눈은 보아도 족함이 없고 귀는 들어도 차지 아니한다. 아미 있던 것이 후에 다시 있겠고 이미 한 일을 후에 다시 할지라. 다 헛되어 바람을 잡으려는 것이로다. 지혜가 많으면 번뇌도 많으니 지식을 더하는 자는 근심을 더하느니라...
역사상 가장 현명한 자인 솔로몬은 시종일관 '이 세상에 대한 경멸contemptu mundi'을 피력한다. 바니타스는 17세기의 모든 정물화를 포괄하는 개념으로 전도서이 말처럼 지상의 모든 것에 대한 덧없음과 헛됨을 나타낸다. 모든 정물화의 공통된 메시지라고 할 수 있는 바니타스는 특별히 기독교의 교훈적인 성격과 관계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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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제를 주제로 하고 있는 또 다른 정물화 「노틸러스 컵이 있는 정물화」을 보자. 판 베이에른의 동시대인이었던 로테르담 출신의 빌럼 카프는 1650년 이후 상류사회의 문화를 반영하는 정물화를 그리기 시작하였다. 카프는 초기 시절(1640~46)을 파리에서 보냈으며 네덜란드이 여러 도시에서 작업했고 많은 문하생을 배출하였다. 카프의 작품이 지니는 고전적인 단순함은 그를 다른 화가들과 구별되게 만드는 특징이다. 때로 그는 작품의 표면을 고광택제로 마감하여 깊고 그윽한 느낌을 주었는데, 작품의 때를 벗겨내는 복원과정에서 몇몇 그림은 심각하게 손상되기도 했다. 비럼 파크의 오브제들 중에는 한두 가지(레몬이나 노틸러스 조개 등)를 제외하면 자연적인 요소들은 거의 없다. 그는 언제나 인간이 만든 것들 중에서 최고이 것만을 골라서 그렸다. 최고의 명품이라 해도 모두 깨지기 쉽고 덧없을 뿐이다. 한편 레몬즙은 포도주의 단맛을 억제하고 풍미를 내는데, 레몬즙을 포도주에 더할 때는 비율에 주의해야 한다. 따라서 껍질이 벗겨진 포도주에 더할 때는 비율에 주의해야 한다. 따라서 껍질이 벗겨진 레몬은 절제의 상징이다.
카프는 바니타스의 상투어구인 고급스런 물건들을 차용하고 있지만 바니타스의 메시지를 강하게 의도하고 있는 것은 아닌 듯 하다. 그의 정물은 단순히 관습적 도상을 차용하고 있을 뿐이라는 견해조차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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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회화는 자연의 거울 - '황금시대'와 미술계의 상황>
네덜란드의 17세기는 종교적으로나 정치적ㆍ경제적으로 대립관계에 있던 스페인과의 독립전쟁의 결실과 대외무역의 성과로 경제가 급속도로 발전하였던, 이른바 '황금시대' 였다. 황금시대는 대략 1700~80년 사이의 기간을 말하는데, 이 시기에 새로이 출현한 정물화는 경제가 급성장하고 부가 쌓이는 시기의 물질에 대한 태도를 보여준다. 우리는 수십 종류의 설탕과 집 한 채 값과 맞먹는 꽃 항 송이를 사서 꽃꽂이를 하는 그 막대한 '부'(富)를 상상하기가 힘들다. 당시 네덜란드에서는 적어도 일자리가 없어서 굶는 사람은 없었다고 한다. 어떤 네덜란드 상인들은 일국의 왕보다도 부유해서 전쟁자금을 다른 나라 귀족들에게 꾸어주기도 했으며, 아내들이 입고 있는 검은색의 엄격한 옷 속에는 은장신구가 걸려 있었다고 한다.
종교적으로는 독립 이후 칼뱅파가 지배층으로 확고해진 반면, 지배층과 다르게 일반인들은 여전히 어느 정도 가톨릭적인 태도를 지니고 있었다. 네덜란드 사회는 국제화된 사회답게 종교문제에 대해 일면 관용적인 태도를 보였다고 한다. 이러한 견해는 일반적으로 받아들여지고 있지만, 그와 반대되는 입장이 담겨 있는 사료들을 참고하면, 종교적 색채가 있는 문제에 대해서는 시의회가 칼뱅주의적 엄격성에 입각하여 경직된 판단을 내리는 경우도 이따금씩 있었다고 한다.
혼란스러우면서도 역동적이었던 17세기는 로마시대와 비교되었으며, 그리하여 로마시대 저작들이 번역ㆍ출판되기도 하였다. 격동기의 고대가 새롭게 인식되어 어려운 시대를 헤쳐나갈 수 있는 실제적인 지침을 제공한다고 여겨진 것이다. 격언과 속담에 함축되어 나타나는 고대적 지혜를 존중하는 사고방식과 실생활의 지침을 구하는 경향은 북구 르네상스의 결실들, 특히 16세기 에라스무스의 저작들에서 정점을 이룬다고 할 수 있다. 이런 추세는 17세기에도 지속되어, 마치 오늘날의 서점에서처럼 생활을 올바로 이끄는 방법에 대한 책들과 극히 실제적인 충고를 주는 지침서들이 유행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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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회화는 자연의 거울 - '황금시대'와 미술계의 상황>
네덜란드의 17세기는 종교적으로나 정치적ㆍ경제적으로 대립관계에 있던 스페인과의 독립전쟁의 결실과 대외무역의 성과로 경제가 급속도로 발전하였던, 이른바 '황금시대' 였다. 황금시대는 대략 1700~80년 사이의 기간을 말하는데, 이 시기에 새로이 출현한 정물화는 경제가 급성장하고 부가 쌓이는 시기의 물질에 대한 태도를 보여준다. 우리는 수십 종류의 설탕과 집 한 채 값과 맞먹는 꽃 항 송이를 사서 꽃꽂이를 하는 그 막대한 '부'(富)를 상상하기가 힘들다. 당시 네덜란드에서는 적어도 일자리가 없어서 굶는 사람은 없었다고 한다. 어떤 네덜란드 상인들은 일국의 왕보다도 부유해서 전쟁자금을 다른 나라 귀족들에게 꾸어주기도 했으며, 아내들이 입고 있는 검은색의 엄격한 옷 속에는 은장신구가 걸려 있었다고 한다.
종교적으로는 독립 이후 칼뱅파가 지배층으로 확고해진 반면, 지배층과 다르게 일반인들은 여전히 어느 정도 가톨릭적인 태도를 지니고 있었다. 네덜란드 사회는 국제화된 사회답게 종교문제에 대해 일면 관용적인 태도를 보였다고 한다. 이러한 견해는 일반적으로 받아들여지고 있지만, 그와 반대되는 입장이 담겨 있는 사료들을 참고하면, 종교적 색채가 있는 문제에 대해서는 시의회가 칼뱅주의적 엄격성에 입각하여 경직된 판단을 내리는 경우도 이따금씩 있었다고 한다.
혼란스러우면서도 역동적이었던 17세기는 로마시대와 비교되었으며, 그리하여 로마시대 저작들이 번역ㆍ출판되기도 하였다. 격동기의 고대가 새롭게 인식되어 어려운 시대를 헤쳐나갈 수 있는 실제적인 지침을 제공한다고 여겨진 것이다. 격언과 속담에 함축되어 나타나는 고대적 지혜를 존중하는 사고방식과 실생활의 지침을 구하는 경향은 북구 르네상스의 결실들, 특히 16세기 에라스무스의 저작들에서 정점을 이룬다고 할 수 있다. 이런 추세는 17세기에도 지속되어, 마치 오늘날의 서점에서처럼 생활을 올바로 이끄는 방법에 대한 책들과 극히 실제적인 충고를 주는 지침서들이 유행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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