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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사박
좌백 | 시공사 | 2005년 05월 13일   저자/출판사 더보기/감추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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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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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행일 2005년 05월 13일
쪽수, 무게, 크기 815쪽 | 687g | 크기확인중
ISBN13 9788952743145
ISBN10 89527431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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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소개 (1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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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직한 저음, 그러나 주위에 우렁우렁 울리는 굵은 음성이었다.
“용서하라, 강탈도 살생도 원하는 바가 아니나 난 네 청마수(靑魔手)가 필요하다!”
낡아 헤진 검은색 가사(袈裟)를 걸쳤다. 고슴도치 가시처럼 솟구친 짧은 머리카락, 그다지 넓지 않은 이마를 넓은 천으로 질끈 동여매어 중 같기도 하고 그냥 속인 같기도 한 묘한 행색의 거지. 오 척이 겨우 넘을 듯해 보이는 단신이었다. 보통 체격이라면 왜소해 보였을 것인데 덩치 큰 당당한 종 같은 느낌이었다. 굵은 눈썹, 이지러진 귀, 꽉 다문 입에 누구에게 맞았는지 콧대마저 주저앉아 삐뚤어져 있었다. 특이한 것은 손이었다. 덩치에 어울리지 않게 조막만 한 손이 양 팔목에 맥없이 매달려 흔들거리고 있었던 것이다.
그런 그가 청면수라의 가슴 앞에 바짝 붙어 있었다. 딴에는 눈싸움이라도 하자고 붙은 것 같은데 애석하게도 청면수라는 보기 드문 장신, 보이는 것은 밋밋한 가슴 아랫부분뿐이었다.
드물게도 청면수라의 표정에 변화가 왔다. 푸르뎅뎅한 얼굴 아랫부분에 한 줄의 빨간 금이 가며 한끝이 올라갔다. 아마도 웃는 것일 텐데.
“크크크큭.”
잔뜩 비틀린 바위 덩어리가 웃는다면 이런 소리가 날 것이다.
청면수라가 한 손을 치켜들었다. 긴 소맷자락이 흘러내리고 드러난 손에 푸르스름한 광채가 번뜩였다. 청마수였다. 무림 십대흉기(十大凶器)의 하나. 강철로 만든 장갑에 비수처럼 날카로운 손톱이 공포스럽다. 거기 걸리면 갈가리 찢긴 시신이 되어 혼백조차 제대로 남기지 못하며, 악독하게도 절독(絶毒)까지 발라 운 좋게 찢기지 않는다 해도 썩어 들어가는 육신을 부둥켜안고 살아야 했다. 청면수라를 악명 높은 중원사흉(中原四凶)의 하나로 올려놓은 물건, 청마수가 화상의 머리통 바로 위에 떠 있었다. 슬쩍 내려치기만 하면 하얀 뇌수를 볼 수 있을 것이었다.
“그래, 거지새끼야! 이게 필요하다고? 어디 가져가 보려무나! 오랜만에 날 웃게 했으니 엎드려 빌고 물러갔다면 살려줄 수도 있었을 것을…… 이젠 늦었다!”
거지가 고개를 들어 청면수라의 눈을 빤히 보았다. 청면수라는 덜컥 이게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놀랍도록 고요하고 진지한 눈빛! 이런 눈빛을 지닌 사람이라면 농담 같은 것은 하지 않는다. 허풍은 더더욱 아니리라. 이 거지새끼는 진심으로 자신을 죽이려 하고 있었다.
거지의 입이 무겁게 열리고, 예의 우렁우렁한 음성이 흘러나왔다.
“용서하라!”
화상의 맨발이 무겁게 땅을 찼다.
--- 본문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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