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안평대군은 프로이트 못지않은 심리학자였고, 김춘수와 유치환은 ‘도덕경 비밀클럽’의 멤버였다?!
<꽃>의 시인 김춘수와 <바위>의 유치환, <토지>의 박경리, 그리고 유하의 공통점은? 다름 아닌 ‘도덕경 비밀클럽’에서 함께 공부한 클래스메이트라는 사실. 도덕경 비밀클럽이라고? 문학계에 그런 거대한 비밀 조직이 존재한다니?
한 줄의 표현 속에 무수한 뜻을 품고 있는 노자의 《도덕경》은 불꽃 튀는 해석 논쟁을 불러오기도 하지만 세상을 다른 방식으로 바라보고 문제를 읽어내는 이 땅의 시인들에게는 더없는 보물창고의 역할을 한다.
도덕경 첫머리의 無名天地之始(무명천지지시) 有名萬物之母(유명만물지모)라는 구절을 이경숙은 ‘이름이 없다면 천지는 언제나 처음 시작된 때와 마찬가지겠지만 이름을 가지면서부터 만물은 계통을 갖게 되느니라.’라고 해석한다. 김춘수는 이 구절을 그의 대표작 <꽃>에서 다음과 같이 깔끔하게 담아냈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주기 전에는 無名
그는 다만/하나의 몸짓에 지나지 않았다 天地之始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주었을 때 有名
그는 나에게로 와서/꽃이 되었다 萬物之母
(216쪽, <도덕경 비밀클럽>)
소치 허유와 추사 김정희, 그리고 헌종의 아름다운 삼각관계를 아시는지? 조선 후기의 화가 소치 허유는 스물여덟에 무작정 공재 윤두서의 집을 찾아가 그의 화첩을 보며 그림을 공부했다. 그 후 초의선사를 만났고, 초의선사는 허유를 당대 최고의 지식인이라 할 수 있는 추사 김정희에게 소개한다.
뼈대도 뭣도 없는 허유에게 직접 ‘소치’라는 호까지 지어주며 피어나는 예술혼의 진지한 성취를 축원한 김정희, 그리고 탁월한 예술적 안목을 지닌 헌종. 이 두 사람과의 만남은 허유를 권력의 중심에 서게 할 수도 있었지만, 허유는 이처럼 화려한 인연으로 가득 찬 자신의 삶을 ‘꿈’이라 칭하며 《몽연록》을 쓴다. 세속적 욕망에서 한 걸음 떨어져 나와 고고한 예술의 세계를 고집한 그의 자취가 새삼스럽게 눈길을 끄는 대목이다. (18쪽, <덧없고 달콤한 인연>)
■ 열광과 집착을 경계하며, 즐거움을 알려주지 않아도 스스로 즐거운 옛공부
-우리 시대 최고의 작가 이윤기의 마음을 사로잡은 블로거 ‘빈섬’의 색다른 고전 읽기
‘고전’이라는 말 자체가 주는 딱딱함을 이겨내기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누구나 고전의 중요성과 필요성을 강조하지만 원문과 해석만 줄기차게 나열되어 있는 고전을 읽고 싶어하는 사람은 많지 않다. 그 속에 묻혀 있는 수많은 보석 같은 문장들은 그 딱딱함의 장벽을 넘은 사람에게만 주어지는 ‘특별 보너스’이다.
이 책 《옛공부의 즐거움》은 어렵고 딱딱하게만 느껴지는 우리 옛글과 옛그림을 쉽고 편안하게 읽고 감상할 수 있도록 도와준다. 고전을 ‘옛날’이라는 시대 속에 가두어놓는 것이 아니라 저자 개인의 체험과 사회적 현상에 적절하게 결합시켜, 고전이 지나간 시대의 글이 아닌 현재에도 생생하게 살아 있는 이야기임을 강조한다.
옛글의 메시지, 옛사람의 삶은 고리타분하고 보수적이어서 오늘날과는 맞지 않을 것이라 생각하기 쉽다. 하지만 그 속에는 유행가 못지않은 발랄함과 애잔함이 동시에 담겨 있고, 시대를 초월한 삶의 지혜가 한껏 묻어난다. 이것이 고전의 매력이고 ‘온고지신(溫故知新)’의 핵심이다.
이 책은 우리들이 미처 깨닫지 못한 고전의 매력을 찾게 해주는 나침반 같은 책이다. 옛글과 옛그림과 옛사람에게서 발견한 즐거움, 그리고 우리 시대 최고의 작가 이윤기를 감탄시킨 빼어난 문장들이 어울려 책읽기를 한층 즐겁게 해준다.
열광하고 집착하는 데에는 나름의 이유가 있겠지만, 그로 인해 깨달음의 경지에 이른 사람들의 이야기는 어쩐지 범접할 수 없는 산꼭대기 같다. 하지만 즐기는 데에는 특별한 이유를 찾지 않아도 되고, 산 정상이든 중턱이든 자신이 원하는 곳에서 즐기고 노니는 것으로 그만이다. 앎의 깊이에 상관없이 있는 그 자리 그 상태에서 아는 만큼 최대한 즐기자는 것, 그것이 이 책의 가장 큰 장점이다.
■ 보석처럼 빛나는 고전의 매력, 그 속에서 발견한 옛글, 옛그림, 옛사람과의 유쾌한 조우!
채근담의 竹影掃階塵不動(죽영소계진부동) 月輪穿沼水無痕(월륜천소수무흔)이라는 구절은 황지우의 시에서 되살아나 집착하지 않는 무심의 경계를 그립게 하고(208쪽, <마음을 사로잡은 한 구절>), 부모가 반대하는 사람과 결혼을 하고도 오히려 효도했다 주장하는 순 임금의 에피소드는 드라마에서 끊임없이 되풀이되는 ‘애효 딜레마’의 시초가 아닐까 의심하게 만든다(259쪽, <애효 딜레마와 맹자의 카운슬링>). 옛글이 주는 묵직함과 모호한 느낌을 취향에 맞게 다듬어 즐기면서 놀아보자는 것이 이 책의 의도이다.
낡은 듯 정취 있는 옛그림을 보는 재미도 빼놓을 수 없다. 안평대군의 꿈과 천재 화가 안견의 붓놀림이 탄생시킨 명작 <몽유도원도>에 숨어 있는 안평대군과 박팽년, 최항, 신숙주의 엇갈린 운명은 한 편의 스릴러 영화를 보는 듯 아슬아슬하고, 신잠의 <탐매도>와 김홍도의 <주상관매도>에서는 점점이 박힌 매화의 모습을 더듬는 여유로움을 찾을 수 있다. 김정희의 <부이작란>, 조희룡의 <사군자> 등 익숙한 그림과 함께 중국 청나라 시대의 화가 팔대산인, 정섭 등 국내에서 보기 어려웠던 동양화를 만날 수 있다.
그밖에도 최치원의 시 <강남녀(江南女)>를 중국 강남이 아닌 우리의 강남 압구정동에 맞추어 해석한 것이나, ‘피타고라스의 정리’를 홀로 깨친 저자의 경험을 빌려 화담 서경덕의 자학(自學)을 평하는 등 역사 속 인물들의 삶과 작품을 새로운 관점에서 접근하며 그야말로 ‘즐기는 고전’이 되도록 하였다. 낯설기만 하던 옛글과 옛그림, 옛사람의 이야기가 때로는 매섭게, 때로는 따뜻하게 다가온다. 인물의 위대함과 학문적 깊이를 탐색하는 데 매몰되지 않고 그들의 삶과 생각, 행동을 체험하는 저자만의 ‘옛공부’를 함께 느낄 수 있다.
옛글과 옛사람을 통해 자신의 참모습을 찾고 삶의 지혜를 얻고 싶어하는 사람이라면, 하지만 그 방법을 찾지 못해 괴로워하는 사람이라면 이 책을 통해 그 해답을 찾을 수 있을 것이다. 남이 가르쳐주는 고전이 아닌 내가 체험하고 내가 즐기는 고전의 참맛이 느껴지는 책이다.
추천의 말-이윤기(소설가, 번역가)
2004년 8월, 한 신문기자로부터 제보를 받았다. 나를 ‘까는’ 글이 인터넷에 올라와 있다는 것. 도대체 누구야? <옛날다방>이라는 블로그를 운영하는 ‘빈섬’이라는 자라고 했다. 찾아 들어가 읽어 보았다. 기자의 오독(誤讀)이었다. 그것은 나를 깐 글이 아니었다. 한 일간지에다 쓴 나의 글과 어느 교수의 글을 비교하면서 두 사람의 과거를 하나의 사회 현상으로 짚어낸 탁월한 글이었다. 그로부터 며칠 동안 나는 일손을 놓고 빈섬의 글만 읽었다. 청탁 받고 쓴 글들이 아니었다. 직업적으로 글을 쓴다는 것이 많이 부끄러웠다.
누구인지 궁금했다. 당시만 해도 블로그에는 그의 정체를 추정해낼 단서가 없었다. 경주 출신, 중앙일보 직원. 검은 지프를 타고 다닌다는 것 정도가 내가 가진 정보의 전부였다. 중앙일보 기자들에게 물어보았지만 아는 이가 없었다. 글을 더 읽어 보았더니 ‘빈섬이 사진기자 권혁재와 친하다’는 새로운 정보가 붙잡혔다. 권혁재 기자에게 이메일을 띄웠다. 다음날 답장이 왔다. 경제 섹션을 편집하는 62년생 이상국이라고 했다. 한번 만나자! 이메일 주소를 알아내어 편지를 띄웠다. 수신을 확인하면 늘 ‘읽지 않음’이었으니 답장이 있었을 리 없다. 나는 일면식도 없는 사이버 친구 빈섬에게 늘 ‘하게’체로 말을 건다.
내 컴퓨터 <즐겨찾기>에는 9개의 블로그 혹은 싸이월드가 떠 있다. 빈섬 블로그도 그 중의 하나다. 나는 일을 시작하기 전에 거의 반드시 빈섬의 글을 읽는다. 때로는 매섭고 때로는 따뜻하고 때로는 쓸쓸한 그의 글을 읽는다. <조영남을 좋아하시는가>라는 글은 출력해서 가수 조영남에게 배달한 적도 있다. 어느 날, 내 책을 많이 내는 출판사 편집자에게 빈섬 글의 출판을 검토하라고 명령하듯이 말했다. 책이 나오면 빈섬과 함께 술 한 잔 하고 싶다. 하지만 그는 술을 즐기지 않는 것 같다. 술 즐기면서도 이렇게 맑은 글을 줄줄이 써낼 수는 없을 터이니.
빈섬, 새 책 낸 것을 축하하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