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신, 개소문, 계백, 흑치상지…… 그리고 이름 없이 스러져간 사람, 사람들
10개의 단편으로 모아진 이 소설집은 각각 역사적 사건을 배경으로 한다. 시간적 순서대로 연결되어있는 각 단편들의 역사적 배경과 고증에 쓰인 문헌, 연표 등은 권말에 자세히 수록해 놓았다.
「축생」,「격검」
이 두 작품은 나제연합이 깨어진 뒤인 554년에 일어난 백제 신라간의 관산성(管山城) 전투를 다루고 있다.「축생」은 백제쪽의 입장을,「격검」은 신라쪽의 입장을 반영하고 있다.「축생」은 『일본서기(日本書紀)』에서 많은 부분을 참고했다. 구라지라는 이름도 그 책에서 가져온 것이다. 이 전투에서 백제 성왕이 측근 50명을 데리고 은밀히 이동했으리라는 추측을 바탕으로 이 소설이 쓰여졌다. 백제측 수장인 태자 창(昌)의 측근 구라지와 신라측 수장 무력(武力)의 부장인 문노(文弩)가 중심 인물이다.
「다정」
신라 이사부(異斯夫)의 대가야(大加耶) 반란 진압에 참전한 사다함(斯多含)의 이야기이다. 사다함과 문노의 사제의 정, 미실(美室)과의 연정, 그의 어머니와의 애정 등이 중심 축이다. 이 작품에 등장하는 시는 모두『화랑세기』에서 인용한 것이다. 기존 학자들의 번역에 약간의 의역을 가했다. 미실(美室)과 세종(世宗)에 대한 이야기도『화랑세기』에서 뼈대를 가져 왔다. 물론 사다함이나 무관(武官)의 죽음에 대한 이야기는 모두 작가가 지어낸 것이다.
「함락」
백제 의자왕(義慈王)이 즉위하면서 일어난 대야성(大耶城) 함락(642년) 사건을 배경으로 한다. 당시 대야성에는 신라 최고 실력자인 김춘추(金春秋)의 사위가 성주로 있었다. 백제군은 성왕(聖王)의 복수 차원에서 성주 부부의 목을 감옥 아래에 묻어 둔다. 유골은 뒷날 김유신(金庾信)이 백제 장군들을 잡아서 교환해 찾아오게 된다(648년). 대야성 함락에 대한 원한으로 김춘추는 백제 멸망을 꿈꾸게 되고 고구려로 동맹을 맺기 위해 떠난다. 대야성 함락 당시에는 멍청한 지휘관 김품석(金品釋), 충의를 지킨 죽죽(竹竹) 등 흥미로운 인물들이 등장한다. 그 중에서 신라를 배반한 검일(黔日)과 모척(毛尺)을 중심 축으로 이야기가 전개된다.
「복수」
연개소문(淵蓋蘇文)의 쿠데타(642년) 직후 일어난 김춘추의 고구려 방문을 배경으로 한다. 연개소문은 김춘추를 만나 동맹의 대가로 죽령 이북의 땅을 요구해서 그를 곤란에 빠지게 하는데, 사실은 출병을 할 여유가 없었던 것으로 보인다.『삼국사기』에는 김춘추를 죽여야 한다고 간언한 사람의 이름이 없다. 소설에서는 그 역할을 선도해(先道解)가 한 것으로 하고 있지만, 이는 물론 소설 상의 허구다. 이 소설은 당 태종이 고구려 침입에 앞서 "개소문은 임금과 대신들을 죽이고도 만족하고 있으며, 고구려인들은 목을 길게 빼고 구원해 주기만을 기다리고 있소"라고 말한 대목에서 착안된 것이다. 연개소문에 의해 처형당한 귀족 출신 일가족에 대한 복수를 꿈꾸는 주인공인 무덕(武德)! 그의 이야기는 여기서 완결되지 않았다. 그의 복수는 앞으로 처절하게 그려질 예정이다.
「천망」
계백(階伯) 장군의 부장으로 활약했던 사충(史忠)이 백제의 수도가 함락될 무렵, 나라를 팔아먹은 임자(壬子) 등을 처형하는 이야기이다. 김유신은 백제 멸망에 앞서 백제의 고관을 포섭한다. 그런데『삼국사기』에는 백제 멸망 후 논공행상에서 임자의 이름이 보이지 않는다.「천망」은 이 점에서 착안한 작품이다.
「애인」
「애인」은「천망」과 같은 시기(660년)의 평민 대장장이의 이야기이다. 이 때 나오는 보검은「보검」편과도 연결이 된다. 이 두 이야기는 모두『삼국사기』 「백제본기(百濟本紀)」에 나오는 풍(豊)의 망명 기사와 관련이 있다. 부여풍이 고구려로 망명한 뒤 보검 한 자루만 남았다고『삼국사기』는 전한다.『삼국유사』는 이른바 낙화암 전설과 관련하여 백제왕이 후궁들과 함께 떨어져 죽었다는 일설도 전하고 있다. 물론 의자왕은 낙화암에서 죽지 않았다. 의자왕이 항복하여 추태를 남기지 않고 깨끗하게 죽기를 바래서 만들어진 전설이었을까?『삼국유사』의 기록에서 상상의 나래를 펴 본 작품이「애인」이다.
「보검」
복신(福信), 도침(道琛), 부여풍 등이 주도한 백제의 부흥 운동을 배경으로 한다. 그 전개 과정을 지켜보는 소설 속 주인공은 전편에 나왔던 사충이다. 실패한 부흥 운동이 늘 그렇듯이 백제의 경우도 지도층의 내분이 결정적인 요인으로 작용한다. 복신, 도침, 부여풍의 내분은 결국 흑치상지(黑齒常之)와 같은 명장이 당에 망명하는데 결정적인 요인으로 작용했을 것이다. 흑치상지의 망명이 정확하게 언제 이뤄졌는지는 알려져있지 않지만, 역시 복신의 주살(663년) 이후로 보는것이 타당할 것이다. 부여풍이 배로 고구려로 망명한 사실은『일본기』에 나온다.
「재회」
당에 망명한 흑치상지는 백제 부흥군의 마지막 요새인 임존성(任存城)을 공격하는 임무를 받는다. 임존성의 지수신(遲受信)은 성이 함락되면서 고구려로 망명한다. 이 소설은 임존성을 공격하는 흑치상지와 사충이 다시 만나는 얘기를 중심 축으로 하고 있다. 작가는 사충이 신라인이 된 백제인으로 살아가는 이야기를 언젠가 다시 선보일 예정이다. 서로 다른 길을 걷는 흑치상지와 사충의 모습에서 우리 역사에 대한 희망을 느끼게하고 싶었다는게 작가의 의도다.
「조강」
「조강」은『삼국사기』「강수(强首)」 열전에서 착상한 소설이다. 강수는「답설인귀서」와 같은 명문을 비롯해 신라의 외교 문서 작성을 총괄한 신라의 최고 외교 브레인이었다. 당(唐)을 삼국간의 전쟁에 끌어들이는데 최고 공로자의 하나라고 할 수 있다. 또한 신분을 중시하는 세상에서 신분에 얽매이지 않는 사고 방식을 가진 혁신적인 인물이었다. 강수의 처는 사서에 이름이 전하지는 않는다. 그녀는 강수 사후에 나라의 도움을 버리고 노구를 이끌고 고향으로 돌아갔다. 그녀가 들려주는 이야기가 이 작품의 중심 축이다. 신라가 삼국을 아우른 이후 다른 나라의 백성들은 신라인들과 어떻게 살았을까라는 의문이 이 소설을 쓰게 된 이유 중의 하나라고 작가는 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