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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에게는 55cm 사랑이 있다

나에게는 55cm 사랑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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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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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행일 2005년 07월 15일
쪽수, 무게, 크기 239쪽 | 385g | 148*210*20mm
ISBN13 9788986429916
ISBN10 8986429918

책소개 책소개 보이기/감추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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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소개 관련자료 보이기/감추기

저자 : 윤선아
1979년 생. 2000년부터 인터넷 음악방송 DJ를 했다. 2004년 ‘KBS 장애인 방송인 선발대회’에서 대상을 수상한 이후, KBS 3라디오에서 ‘윤선아의 노래선물’을 진행하고 있다. 얼마 전 장애인과 비장애인이 함께 히말라야 정복에 나섰던 희망원정대에 참가해 산상 결혼식을 올렸으며, 이를 지켜본 많은 사람들에게 큰 화제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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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달 동안 꼼짝없는 침대 신세가 되었다. 번데기에서 나와 나비가 되는 누에고치도 나보다는 낫지 않을까……. 적어도 누에고치는 단단한 번데기에서 화려한 나비가 되기 위해 실을 뽑아 몸을 감싸는 움직임이라도 할 수 있으니 말이다. 나는 작은 움직임도 불가능하고, 일어난다 해도 화려한 나비는커녕 여전히 못생기고 작은 번데기다. 혼자 힘으로 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혼자 일어나지 못하고, 화장실에 갈 수도 없다. 대소변도 누워서 봐야하니, 세수를 한다거나 머리를 감는다는 것은 상상할 수도 없는 일이다.
엄마는 항상 나의 손발이 되어주신다. 밥을 챙겨다 주시고 대소변을 받아주시고 얼굴도 물수건으로 닦아주신다. 그럴 때면 난 늘 어린 아기가 되어버린다. 마음도 몸을 따라 아기가 된 것처럼 엄마에게 어리광을 부려댄다. 엄마는 단 한번도 귀찮다는 내색 없이, 나를 세 살 박이 아기 대하듯 보듬어주신다.
--- p.
햇빛 짱짱한 날씨를 바랬지만 하늘은 시커먼 먹구름을 잔뜩 안고 있었다. 또 비가 오려나내심 걱정이 되었지만 날씨 따위는 아무래도 좋았다. 그를 만날 수 있다는 그 한 가지 이유로 온 세상을 다 얻을 것처럼 기쁜 날이었다.
저 멀리서 그가 나를 보더니, 황급히 달려온다.
“괜찮아?”
걱정이 가득 담긴 얼굴로 그가 던진 첫마디.
“그럼~”
내가 씩씩하게 대답하며 웃자 비로소 그는 환하게 웃는다. 그의 웃는 얼굴을 볼 수 있어 행복했다. 우리는 시내를 걷고 공원을 산책하고 맛있는 밥을 먹었다. 그와 함께 걷는 공원은 너무 예뻤고, 그와 함께 먹는 밥은 한 달 동안은 절대 맛보지 못했던 황홀한 맛이었다. 그와 함께 보는 풀 하나, 꽃 한 송이, 나무 한 그루 모두 소중하고 아름다웠다. 감사한 마음으로 두 눈에 꼭 꼭 담아두었다.
처음 만났을 때처럼 얼굴만 봐도 가슴 설레고 손끝만 스쳐도 짜릿했다. 우리는 그렇게 하루해가 저무는지도 모른 채 돌아다녔다. 다리는 아팠지만 몸은 전혀 피곤하지 않았다.
우리는 작은 나무 벤치에 앉아 저무는 해를 바라보며 비로소 숨을 돌렸다. 그와 나는 정말 숨 가쁜 데이트였다며 깔깔거리며 웃어댔다. 하늘이 우리의 웃음소리를 질투했는지 그 순간 우르르 쾅쾅 천둥이 쳤다. 뚝, 뚝, 빗방울이 떨어지기 시작했다.
그는 얼른 달려가 기다란 우산 하나를 사왔다. 얼마나 순식간에 다녀왔는지 내 몸이 별로 젖지도 않았다. 사실 빗방울은 우산을 쓰는 사람이 없을 정도로 약하게 뿌리고 있었다. 그는 그래도 비 맞으면 안 된다며 우산을 폈다. 우리는 우산을 쓰고 나란히 걸었다. 그는 자꾸만 앞을 보지 않고 나를 힐끔거렸다. 그는 우산을 낮춰보기도 하고 비스듬하게 기울여보기도 했다. 그러더니 갑자기 무릎을 확 구부려 엉거주춤 자세로 걸어가는 것이 아닌가!
“왜 그래?”
놀란 내가 물었다.
“내 키가 너무 커서 선아가 비 다 맞잖아.”
그가 웃으며 말했다.
“뭐야 됐어! 비도 별로 안 오는데 그냥 가. 힘들잖아!”
내가 걸음을 멈추고 화를 내듯 말했다.
“뭐가 힘드냐! 내가 얼마나 튼튼한데 넌 나를 어떻게 보고!!”
그가 당당하게 말했다. 나는 또 그의 당당한 말에 기가 죽어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그는 자신의 키가 너무 크다는 둥, 밥을 너무 많이 먹고 자랐다는 둥, 이상한 말들을 구시렁 대며 걸어갔다. 엉거주춤한 자세로 오리처럼 뒤뚱뒤뚱 거리며…….
그의 키는 175센티미터, 나의 키는 겨우 120센티미터. 우리는 무려 55센티미터나 차이 난다. 남들이 보면 거인과 난장이라고 할 만큼 큰 차이다. 하지만 이제 그와 나는 같은 키다. 55센티미터 차이는 더 이상 없다.
나에게는 그가 준 55센티미터 길이의 사랑이 있기 때문이다.
--- 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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