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프로디테는 어느 날 아들 에로스와 놀다가 에로스가 가지고 있던 화살에 가슴을 찔리고 말았다. 아프로디테는 황급히 아들을 밀쳐냈지만 상처는 생각보다 깊었다. 그런데 그 상처가 다 낫기 전에 아프로디테는 아도니스라는 청년을 보고는 그만 그에게 반하고 말았다. 그 때까지 그렇게 즐겨 다니던 곳도 흥미가 없어져 잘 가지 않았다. 파포스, 크니도스 섬에도 잘 가지 않았고, 광물의 주산지인 아마토스에도 가지 않았다. 뿐만 아니라 하늘로도 올라가려 하지 않았으니, 아도니스가 아프로디테에게는 하늘보다 더 소중한 존재가 되어 버렸기 때문이다.
이로부터 아프로디테는 늘 아도니스 뒤만 따라 다녔다. 그 전까지는 그저 나무 그늘에 누워 자신의 아름다움을 가꾸는 것만 좋아하던 아프로디테가 아도니스 때문에 사냥의 여신 아르테미스 같은 차림을 하고는 숲을 헤매고 산을 넘으며 세월을 보내게 된 것이다. 아프로디테는 사냥개들을 불러, 산토끼나 사슴 같이 큰 힘을 들이지 않아도 잡을 수 있는 짐승을 쫓아다녔다. 물론 위험한 도울, 이를테면 이리나 곰 같은 사냥감 주위에는 얼씬도 하지 않았다. 아프로디테는 아도니스에게 늘 이같이 위험한 동물을 조심하라는 말도 잊지 않았다. 아프로디테는 입버릇처럼 아도니스에게 일렀다.
"겁이 많은 동물에게는 용감하여라. 그러나 용감한 동물 앞에서는 용기가 안전을 보장해 주지 못해. 그대 몸이라고 위험 앞에서도 온전한 것은 아니야. 그러니까 아끼지 않으면 못써. 위험을 무릅씀으로써 내 행복을 위태롭게 하면 못써. 자연이 무기를 베푼 짐승을 가볍게 여기면 안 돼. 나는 그대에게 이 같은 은혜를 내리고 있는 만큼 그대가 이런 위험에 몸을 던져서까지 명예를 구하는 일에는 동의할 수가 없어. 그대의 젊음이, 나 아프로디테를 매혹시킨 그대의 아름다움이, 사자나 털을 세운 멧돼지에게 도무지 무슨 의미가 있으랴. 저 무서운 발톰과 엄청난 힘을 항상 유념해라. 나는 이러한 동물을 미워하되, 이 미움은 그 씨족에까지 미친다. 왜 그토록 미워하는지 알겠는가?"
아프로디테는 아도니스에게 이 이야기를 끝에 아탈란테와 히포마네스 이야기를 들려 주었다. 아프로디테는 은혜를 저버린 죄값으로 이 둘을 사자로 변신하게 한 적이 있다. 아프로디테는 아도니스에게 이렇게 당부하고는 백조가 끄는 이륜차를 타고 천상으로 올라갔다.
--- pp.89-94
바이런은 [해롤드 경의 순례]에서 아테나의 탄생을 다음과 같이 노래하고 있다.
폭군은, 폭군만이 깨뜨릴 수 있는 것인가?
콜롬비아가
저 완전무장한, 순결한 아테나를 낳을 때 보았던
저 용사나 아이가 탄생하던 광경을
<자유>는 볼 수가 없는 것일까?
그러한 인물은 거친 들판이나,
도끼는 들어가지 않을 숲속이나
쏟아지는 폭포 아래가 아니면 자랄 수 없는 것일까?
어머니인 자연이 어린 워싱턴에게 미소지은 대지는 이런 종자를 가슴에 안을 수 없는 것일까?
유럽에는 그런 대지가 없는 것일까?
--- p.41
그리스 인들의 상상력은 땅이나 바다 곳곳에다 신들을 살게 하고 모든 현상을 이러한 신들의 조화로 보았다. 말하자면 오늘날의 철학이 밝힌, 자연 법칙에 의한 작용인 모든 현상을 그런 눈으로 보았던 것이다. 우리는 시적인 기분에 사로잡혀 있을 때 이러한 우리의 관념의 진화를 애석하게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철학 덕분에 머리가 얻은 것만큼 가슴은 잃어버리지 않았나 하는 느낌에 사로잡히곤 하는 것이다.
--- p.171~172
그러나 아도니스는 그런 말을 들었다고 몸을 사리기에는 지나치게 주견이 뚜렷한 사람이었다. 사냥개들이, 멧돼지를 잠자고 있던 굴에서 깨워 내자 이 젊은이는 손에 들고 있던 창을 힘껏 던져 멧돼지의 옆구리를 꿰뚫어 놓았다. 그러나 멧돼지는 제 입으로 그 창을 물어 뽑아내고는아도니스를 겨냥하고 저돌해 왔다. 아도니스는 있는 힘을 다해 도망쳤다. 그러나 멧돼지는 기어이 아도니스를 따라잡고는 그의 옆구리에다 엄니를 꽂았다. 아도니스는 치명적인 상처를 입고 들판에 쓰러졌다.
아프로디테는 백조가 끄는 이륜차를 타고 하늘을 날아 퀴프로스 섬으로 가던 도중, 대기가 전해주는 애인의 신음 소리를 들었다. 아프로디테는 백조를 지상으로 향하게 했다. 이윽고 사고 현장에 다가간 여신은 하늘에서, 피투성이가 되어 있는 아도니스의 사체를 보고는 황급히 지상으로 내려와 사체를 부등켜안고 가슴을 치며 제 머리카락을 쥐어뜯었다. 아프로디테는 운명의 여신을 비난하면서 푸념을 늘어놓았다.
"그래, 운명의 여신들이 승리했다. 그러나 나는 그들에게 완전한 승리는 안겨 주지 않으리라. 내가 이렇게 슬퍼한 표적은 영원히 지워지지 않을 것이다. 나의 아도니스여, 그대의 죽음과 내 탄식을 해마다 새로워지게 하리라. 그대가 흘린 피를 꽃으로 피어나게 하리라. 이로써 내가 위안을 얻는대서, 누가 나를 시기할 수 있을 것이가!"
이렇게 말하면서 아프로디테는 아도니스의 피 위에 신주를 뿌렸다. 이윽고 피와 신주가 뒤섞이자, 연못에 빗방울이 떨어졌을 때처럼 거품이 일기 시작했다. 그리고 한 시간에 해당하는 시간이 흐르자 거기에서 석류꽃 같은 핏빛 꽃이 피어났다. 그러나 이 꽃의 수명은 짧았다. 바람이 불어 꽃을 열어 주는 순간, 다시 바람이 불어 그 꽃잎을 흩날려 버렸기 때문이다. 그래서 사람들은 이 꽃을 아네모네 곧 <바람꽃>이라고 부른다. 바람으로 인하여 피고, 바람으로 인하여 지기 때문이다. 밀턴은 『코무스』에서 아프로디테와 아도니스의 일을 이렇게 노래하고 있다.
휘아킨토스와 장미가 피는 뜰.
젋은 아도니스가 이따금씩 와서 쉬며 그 깊은 상처를 치료하던 곳,
그 땅 위에 아씨리아 여왕이
슬픈 얼굴을 하고 앉아 있다.
--- pp.95-96
고대 그리스와 로마 종교는,지금은 소멸된지 오래다. 올륌포스 신들이라고 불리던 그 신들이 신자로 거느리는, 살아있는 사람은 이제 하나도 없다. 이 신들은 이제 신학 분야에 속하는 것이 아니라 문학이나 취미 분야에 속하기 때문이다. 이 분야에서는 지금도 신들은 옛 지위를 고스란히 지키고 있으며앞으로도 이 지위를 잃을 것 같지 않다. 그 까닭은 이 신들이 옛날과 오늘을 통틀어 시와 회화 가운데서 잊을래야 잊을 수 없는 자리를 차지하기 때문이다.
--- p.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