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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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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행일 2000년 09월 30일
쪽수, 무게, 크기 919쪽 | 크기확인중
ISBN13 9788970132181
ISBN10 897013218X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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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은 모로 부인 소유가 된 이 아파트에, 1950년대 초반에는 수수께끼 같은 한 미국 여자가 살았는데, 미모와 금발 머리, 신비스러운 분위기 덕분에 그녀는 '로렐라이'라는 별명을 갖고 있었다. 그녀는 이름을 조이 슬로번이라고 밝혔고, 운전사 겸 경호원인 한 남자의 조용한 보호 아래 커다란 아파트에 혼자 살았다. 그 경호원은 카를로스라고 불리는 필리핀 사람이었고, 작고 단단한 체구에 항상 나무랄데 없이 완벽한 하얀 정장을 입고 있었다. 사람들은 종종 고급 상점에서 과일 잼과 초콜릿 혹은 사탕을 사는 그를 볼 수 있었다. 그러나 그녀는 길에서 전혀 볼 수 없었다. 그녀의 집 덧창은 항상 닫혀 있었다. 그녀는 우편물도 받지 않았고, 그녀의 아파트 문은 조리된 식사를 배달하는 음식점 주인이나 매일 아침 백합, 아룸, 월하향 몇 송이를 가져오는 꽃가게 주인에게만 열렸다.

조이 슬로번은 밤이 되어서야 카를로스가 운전하는 길고 검은 폰티악을 타고 외출했다. 이 건물에 사는 사람들은 골이 있는 실크 드레스를 입은 눈부시게 아름다운 그녀가 지나가는 것을 쳐다보곤 했는데, 그 드레스는 등이 거의 다 드러나 보이고 옷자락이 땅에 길게 끌리는 스타일이었다. 또 그녀는 어깨에 밍크 모피를 걸치고, 검은 깃털로 된 큰 부채를 들고, 솜씨 있게 땋은 비할 데 없이 아름다운 금발 머리에 다이아몬드가 박힌 왕관형 머리장식을 쓰고 있었다. 그리고 가늘고 거의 차가운 눈과 창백한 입술(당시에는 입술을 아주 붉게 칠하는 것이 유행이었지만)을 가진 완벽한 타원형의 얼굴 앞에서, 이웃 남자들은 감미로운 것인지 소름끼치는 것인지 모를 모종의 강한 매혹을 느꼈다.

그녀에 관해서는 최고로 환상적인 이야기들만 들려왔다. 사람들은 그녀가 며칠 밤 계속해 화려한 침묵의 리셉션을 열었다는 둥, 남자들이 자정 바로 전에 부피가 큰 배낭을 서투르게 메고 남몰래 그녀를 보러 온다는 둥 말들을 했다. 또 모습을 드러내지 않은 제3의 남자를 운운하며, 그 역시 그 아파트에 살고 있지만 밖에 나올 수도 자신을 드러낼 수도 없는 처지라고도 했다. 그리고 이따금 아이들로 하여금 공포에 사로잡혀 침대에서 벌떡 일어나게 만드는 소리들이 벽난로통을 타고 올라온다고 말하기도 했다.
---pp.507~508
사물에 대한 이러한 세심한 묘사는 페렉이 말하는 '일상의 사회학'의 근간이 되기도 한다. 그는 자신의 일상의 사회학을 가리켜 '분석이 아닌 하나의 묘사의 시도'일 뿐이라고 말하고 있다. 좀더 자세히 말한다면, 그의 일상적 사물에 대한 묘사는 '우리가 살면서 너무 익숙해서 보지 못하는 것, 바로 곁에 있기 때문에 보지 못하는 것에 대한 진술'이다. 즉 일상 속에서 일상에 의해 눈멀어가는 우리의 맹목성을 고발하는 것이다.
--- p.844-845
대단한 부자이면서 동시에 그 부가 일반적으로 가져다 주기 마련인 것들에 대해 무관심한 남자, 그리고 세상 전부를 포착하고 묘사하고 철저히 규명하는것-발설하는 것만으로도 무너지기 쉬운 계획-이 아니라 세상을 이루는 한 조각을 포착하고 묘사하고 철저히 규명하려는 대단히 오만한 욕망을 품고 있는 한 남자를 상상해보자. 도저히 해결할 수 없는 세상의 모순에 맞설 때는, 아마도 제한적이겠지만 동시에 그만큼 전체적이고 온전하고 환원될 수도 없는 어떤 계획을 끝까지 완수하는 것이 관건이 될 것이다. 다시 말해 어느 날 바틀부스는, 그의 삶 전체를 오직 자의적인 필연성 그 자체만을 목적으로 하는 어떤 독특한 계획에 따라 구성해 나가기로 결심했다.
--- p.2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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