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험관들은 이 독특하고도 괴상한 후보자에게 최우수를 줄 것인가, 우수 2등급을 줄 것인가, 아니면 실패나 마찬가지인 그저 합격을 줄 것인가를 결정해야 했다. 게다가 논문에서는 이미 번득이는 명석함을 드러낸 바가 있는 학생이다. 그는 당황한 시험관들에게 태연하게 말했다. 만약 그들이 그에게 최우수 등급을 주면 그는 케임브리지로 가서 박사학위 연구를 할 것인데, 이는 라이벌 대학에 트로이의 목마를 심는 기회가 될 것이다. 반면 만약 그들이 우수 2등급을 준다면(물론 이 등급을 받아도 연구는 할 수 있겠지만), 그는 옥스퍼드에 남을 것이다. 시험관들은 이 골칫덩어리를 케임브리지로 내쫓아 버리려고 그에게 최우수를 주었다.
(19~20쪽)
2월의 어느 토요일 아침, 나는 세인트토마스 병원의 간호 실습생으로 일하고 있던 다이애나와, 초등학교 교사가 되려고 실습 중인 또 다른 동창 엘리자베스 챈트를 만났다. 세인트올번스의 유일한 백화점인 그린스에 있는 커피숍이 우리의 아지트였다. 우리는 수업시간에 필기한 것도 비교해보고 친구와 지인들에 대해서도 수다를 떨었다. 갑자기 다이애나가 물었다. “너희들 스티븐 소식 들었니?” 엘리자베스가 대답했다. “응, 들었어. 정말 안됐지 뭐야?” 나는 그들이 스티븐 호킹 이야기를 하고 있다는 걸 깨달았다. “무슨 소리야? 난 아무 소식도 못 들었는데?” 내가 물었다. “2주 동안이나 병원에 입원해 있었대. 아마 바츠 병원일 거야. 그 애 아버지도 거기서 수련의를 했고 메리도 그 병원 실습생이니까 말야.” 다이애나가 설명해줬다. “계속해서 넘어지고 구두끈도 맬 수가 없었대.” 그녀는 잠시 말을 멈추었다. “끔찍한 검사를 엄청나게 많이 했는데, 온몸이 마비가 되는 무시무시한 불치병에 걸렸다는 거야. 일종의 다발성 경화증 같은 건데, 그렇다고 다발성 경화증도 아닌가 봐. 그리고 몇 년밖에 살지 못할 거라고 그랬대.”
(28~29쪽)
케임브리지로 가는 드라이브는 끔찍했다. 알고 보니 스티븐의 운전 방식은 제 아버지를 빼닮았다. 그의 아버지는 오르막이나 코너에서도 추월을 하는 빠르고 난폭한 운전자였다. 심지어 중앙분리대가 있는 고속도로에서 차를 돌리기도 한다는 것이었다. 대화를 나눠보려는 모든 시도는 소음에 묻히고 말았다. 미친 속도로 하트퍼드셔의 들판과 숲을 지나 허허벌판의 케임브리지셔로 접어드는 동안 열린 창문으로 바람이 세차게 들이쳤다. 나는 차마 눈앞의 도로를 눈뜨고 쳐다볼 수가 없었지만, 스티븐은 도로를 제외한 모든 것들을 다 쳐다보고 있는 것 같았다. 운명이 이미 그에게 잔인한 일격을 가한 이상, 그는 어쩌면 자신은 위험하게 살아도 된다고 느끼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그렇지만 나는 불안하기 짝이 없었고, 집으로 돌아올 때는 반드시 기차를 타야겠다고 속으로 다짐을 했다. 동화 속 이야기 같아야 할 오월의 무도회에 대해서도 의구심이 피어나기 시작했다.
(36쪽)
장미 향기와 분수의 물줄기에 도취되어 꿈을 꾸듯 마음이 편안해진 나는 헤네랄리페 정원의 수로에 세워진 아치 밑에서 몇 시간이고 혼자 앉아 있었다. 거기서 길 건너편의 금단의 벽을 응시하곤 했다. 아이보리색 레이스를 떠놓은 듯 정교한 장식들이 늘어진 알함브라의 정원이 그 너머에 있었다. 햇빛으로 눈부시게 빛나는 도시가 발아래에 펼쳐졌다. 정원의 빛이 방해를 받는 때는 오로지 키 큰 암녹색 사이프러스 나무들과 부겐빌레아의 강렬한 보라색과 분홍색 꽃잎들이 아우성치며 하얀 벽에 그림자를 남길 때뿐이었다. 이곳은 아름다운 도시이지만 동시에 잔인한 도시이기도 하다. 이곳 말고 대체 어떤 도시가 자신의 가장 유명한 시인을 죽였다고 말할 수 있을까? 스페인 내전이 발발할 무렵, 20세기 스페인이 낳은 가장 위대한 시인 페데리코 가르시아 로르카가 극우 프랑코주의자 군대의 손에 살해당한 것도 바로 이곳 그라나다에서였다. 내가 이 땅에 발을 내딛기 훨씬 전에 색채와 리듬과 시의 비전을 통해 안달루시아를 나에게 소개해준 이도 바로 로르카였다.
(48쪽)
스티븐은 아주 가까운 친척들을 제외한 다른 사람들에 대해선 굉장히 비판적이었다. 그의 자신감은 회복되었고, 대화를 할 때도 예전 옥스퍼드 방식을 도입하기를 즐겼으며, 일부러 도발적인 발언으로 사람들에게 충격을 주곤 했다. 내가 우리 할머니 댁에서 주말을 보내기 위해 스티븐을 데려간 적이 있었는데, 노리치 성당은 너무나 평범한 건물이라고 말하는 바람에 온순한 할머니가 무척 상심해하기도 했다. 내 친구들은 그에겐 손쉬운 먹잇감이었다. 파티에서도 논란이 될 만한 견해를 내세우며 대화를 혼자 독점하면서도 미안해하는 기색이라곤 전혀 없었다. 그는 종종 목소리를 높여 끈질긴 논쟁을 벌임으로써 사교모임을 지배하곤 했다.
(73쪽)
아내들 중에는 목소리가 크고 달변인 이들도 있었고, 내성적이고 조용한 이들이 있는가 하면, 정말로 시무룩하고 뚱한 이들도 있었다. 소수이긴 하지만 수학이나 물리학에 관계되는 아내들은 좀 더 경쟁적이고 남성적인 태도를 취하는 경향이 있었다. 반면, 다른 분야에서 자신들의 재능이 반쯤 잊힌 채 휴면기에 들어간 이들은 까칠하고 의심이 많았다. 물리학은 그들 모두에게 대가를 요구하는 듯 보였다. 그리고 그들이 서로 좋아하건 싫어하건, 또는 사이좋게 지내건 못 지내건 간에 그들 모두에게는 한 가지 공통점이 있었다. 그들은 이미 거의 완전히 모든 점에서 과부였다. 물리학 과부.
(101~2쪽)
우리는 천천히 집 안으로 돌아와 대화를 다시 시작하려 하고 있었다. 순간, 어떤 경고의 징후도 없이 아마도 차가운 밤공기 때문에 그랬는지 스티븐은 숨이 멎을 듯한 끔찍한 발작을 일으켰다. 나는 처음으로 그의 발작을 목격했다. 그의 질병은 겉으로 보기에는 오랫동안 억눌려 있는 것 같더니 갑자기 맹렬하게 제 모습을 드러냈다. 잠복해 있던 공포가 어둠 속에서 걸어 나와 그의 목을 움켜잡았다. 그를 이리저리 휘두르고, 마치 인형의 목을 쥔 듯 그를 흔들었다. 그를 발아래에 놓고 짓밟고, 거친 기침소리를 방 안 여기저기로 던졌다. 공황 상태에 빠진 커다란 쌕쌕거림으로 사방이 가득해질 때까지. 손쓸 수 없이 적에게 사로잡힌 스티븐은 나의 힘이 닿지 않는 곳에 있었다. 나는 아무런 준비 없이 갑자기 운동신경 질환의 끔찍하고도 막강한 힘을 마주하게 되었다. 지금까지 보이지만 않았을 뿐, 우리 결혼 생활의 또 다른 동반자를 확인한 것이다.
(105쪽)
논문은 코넬에서 잠깐 훑어봤었다. 그 모든 등식과 부호와 기호들, 계수와 그리스 문자와 선 위아래로 흩어져 있는 숫자들, 그리고 유한한 우주와 무한한 우주 등등은 정신을 산만하게 했다. 그러나 그것은 과학 논문이었기에 다행히 짧았다. 게다가 내 손 끝에서 우주의 탄생이 문서로 옮겨지고 있다는 데서 오는 작은 만족감도 있었다. 이 모든 신비롭게 코드화된 숫자와 문자들, 기호들이 그 깊고 검은 무한대의 비밀을 꿰뚫고 있다는 걸 생각하면 경외심이 일었다. 그러나 너무 오래 광대무변의 우주에 대한 시적인 감상에 빠져 있을 수는 없었다. 선의 위아래로 찍혀 있는 그 모든 작은 점과 부호들에 집중해야 했기 때문이다.
(115쪽)
대략 8백년 정도 지난 후에 이들 지성의 후계자들은 이와는 반대로, 가능한 한 과학을 종교로부터 멀리 떼어놓으려 하는 것 같고, 창조의 과정에서도 신의 역할을 아예 배제시키려 하는 것 같다. 창조주의 존재를 이야기한다는 것은 신을 믿지 않는 과학자들에게는 어색한 장애물이다. 그들의 목적은 우주의 기원을 방정식과 부호로 표현되는 통일된 과학적 법칙의 테두리 안에 두려는 것이다. 전문지식이 없는 사람들에게 이러한 방정식과 부호들은, 창조의 배후에 있는 원동력이자 견인차로서의 신의 개념보다 훨씬 이해하기가 어렵다. 기묘하게도 행복한 식자층들은 이러한 방정식들이 기적적이고도 숨이 막힐 듯한 수학적 아름다움을 드러낸다고 느낀다.
(206쪽)
어느 날 저녁 그는 잠자리에 들기까지 다른 날보다 훨씬 더 시간이 많이 걸렸다. 다음날 아침이 되어서야 나는 그 이유를 알았다. 그날 밤, 그는 파자마를 입으려고 애쓰는 동안 머릿속으로는 블랙홀의 기하학을 그려보고 있었는데, 그러다 마침내 블랙홀 연구 분야의 가장 중요한 문제 하나를 해결했던 것이다. 그의 해법은 이렇다. 만약 두 개의 블랙홀이 충돌해서 하나가 된다면, 그 두 개가 합쳐진 블랙홀의 표면적은 줄어들 수가 없고, 처음 두 블랙홀을 합친 면적보다 거의 언제나 더 커져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좀 더 간단히 말하자면, 블랙홀에 무슨 일이 일어나든 상관없이 블랙홀의 표면적은 줄어들 수가 없다는 것이다. 이러한 해법은 스물여덟 살의 스티븐에게 블랙홀 이론 분야의 탁월한 권위자라는 명성을 안겨주었다.
(237쪽)
대부분의 대학들은 장애인 시설을 도입하는 속도가 느렸다. 예산이 부족하다거나, 역사적인 건축물에는 보존법을 위배하지 않고서는 실행이 불가능하다는 등의 이유를 들었다. 종종 대학의 만찬장에 참석할 때는 오직 주방을 통해서만 들어갈 수 있었다. 뜨거운 김이 뿜어져 나오는 커다란 통들과 지글거리는 그릴, 재료를 실은 카트들, 그릇들과 전채 요리가 담긴 쟁반들을 잔뜩 싣고 움직이는 삐걱거리고 냄새나는 음식 운반용 승강기, 그리고 와인 상자
등, 위험한 장애물들을 수없이 뚫고 지나가야 했다. 그렇게 어렵사리 주빈석에 늦게 도착해 앉으면 거만한 무시의 눈길이 날아들었다. 마치 그러한 실례는 몹시 창피하고도 따분한 일이라는 듯이.
(241~242쪽)
그들은 예술과 문학에 대해 이야기했다. 러시아의 거장들은 물론이고 셰익스피어, 몰리에르, 세르반테스, 그리고 로르카까지도. 프랑코 정권하의 스페인에서 만났던 내 학창시절의 친구들처럼 그들은 어떤 경우에도 시를 암송하고 노래를 지었다. 스티븐에게 바치는 시도 있었다. 한 번 더 억압적인 정권을 겪는 일쯤은 대수롭지 않게 여기는 듯했다. 그들의 조국은 언제나 전체주의 정권에 의해 지배되어 왔으며 민주주의의 경험이 없기 때문이다. 그 이전 세대의 러시아인들과 마찬가지로 그들도 예술과 음악과 문학에서 위안을 찾았다. 소련식 유물론이 지배하는 사회에서 문화는 그들의 정신적인 자원이었다. 그들을 통해 나는 이 나라의 영혼을, 탄식하는 어머니 러시아의 영혼을 만질 수 있을 것 같았다. 어머니 러시아는 언제나 추방당한 자식들을 강과 자작나무 숲이 있는 쓸쓸한 풍경 속에 보듬었다. 그들의 인격은 오히려 황량한 생활을 배경으로 더욱 빛이 났다. 마치 현대 모스크바의 삭막한 콘크리트 뒤에서 홀연히 드러나는, 잘 보존되었으나 더 이상 기능하지 않는 교회의 황금 돔처럼 말이다.
(288~9쪽)
모든 물리학자들의 은밀한 목표는 ‘현자의 돌’(중세 연금술사들이 찾아 헤매던 궁극적인 물질-역주), 즉 아직까지 공식화되지 않은 통합된 우주 이론의 비밀을 밝혀내는 것이었다. 물리학에서 뻗어나간 모든 가지들을 통합할 수 있는 이론 말이다. 그것은 스티븐과 조지 엘리스가 함께 저술하기도 한 우주의 거대구조와, 양자역학이나 소립자 물리학이나 전자기 이론 같은 극미구조를 조화시키는 이론이 될 것이었다. 블랙홀은 이 특별한 탐구의 첫 번째 단계에서 핵심 열쇠가 될지도 모른다는 전망을 담고 있었다. 블랙홀 이론이 일반상대성 이론과 열역학 이론의 법칙들과 가지는 불가사의한 유사성 때문에 더욱 그랬다.
(297~298쪽)
동시에 나는 스티븐이 저녁 시간과 주말에 너무나 많은 시간을 생각에 잠겨 있는 태도가 걱정스러웠다. 그는 종종 로댕의 ‘생각하는 사람’처럼 머리를 오른쪽 손에 괴고서는, 나와 주변에서 뛰어노는 아이들의 존재도 인식하지 못한 채 다른 차원으로 넘어가 있었다. 블랙홀 물리학의 지적인 과제가 제아무리 절박할지라도, 나는 그 정도의 자기몰입의 깊이를 상상하기가 힘들었다. 처음에는 그가 수학 문제에 빠져 있는 줄로 추측하여 나는 명랑하게, 지금 무슨 생각을 하는 중이냐고 묻는다. 그러면 그는 종종 묵묵부답이라 나는 곧바로 마음이 불안해진다. 혹시 휠체어가 불편한 건 아닌지, 아니면 몸이 안 좋은 건지를 다시 묻는다. “혹시 다음 학회에 내가 가지 않는다고 해서 화가 난 거예요?” 그가 여전히 대답이 없거나 그저 보일 듯 말 듯 고개를 젓게 되면, 나의 상상력은 나래를 펴기 시작하여 모든 가능한 이유들과 그 이상을 의심한다. 특히 점점 나빠지는 신체 상태 때문에 견디기 힘든 낙담과 실의에 빠진 것은 아닌지를 걱정한다. 그가 보인 태도는 어쨌든 예로부터 예술가들이 우울증이라고 묘사하는 증상들이 아니던가.
(298~9쪽)
스티븐에게 그러한 깊은 몰입의 기간은, 수학적인 11차원에서 생각할 수 있게끔 조용한 내부의 힘을 단련하는 데 유용한 수련 기간이었는지 모른다. 그가 그렇게 지나친 자기 밀폐의 상태에 이른 것이 대화를 하자는 나의 요구를 망각해서인지 아니면 무관심해서인지 나는 분간할 수가 없었으므로, 그러한 기간이 너무나 고통스러웠다. 특히나 그런 몰입 중에 바그너의 긴 오페라가 가미될 때는 더욱 심했다. 라디오나 전축에서 흘러나오는 니벨룽겐의 반지의 볼륨을 있는 대로 크게 틀어놓고 오래도록 듣고 있을 때면, 내 목소리가 짓눌리고 내 모든 자연스러움이 내 안으로 움츠러드는 것을 느꼈다. 바그너가 점점 싫어졌다.
(300쪽)
사실상 그 강의는 이중으로 전달되고 있었다. 한 번은 스티븐 자신이 직접, 그리고 다시 슬라이드로 확인하는 방식으로 말이다. 그러니 그 메시지에는 어떤 모호한 점도 없었다. 즉, 블랙홀은 보이는 것처럼 그렇게 검지 않다는 것이었다.
발표의 명확성에도 불구하고, 강의가 끝나자 침묵이 강의실 위로 내려앉았다. 청중은 그 간단한 메시지를 소화하기가 어려운 듯했다. 런던의 킹스 칼리지의 존 G. 테일러 교수가 의장을 맡고 있었는데, 그가 재빨리 침묵을 깼다. 블랙홀의 성스런 복음에 대한 이런 이단적인 공격에 아연실색한 그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서 엄포를 놓았다. “정말 가당찮은 논리로군요! 여태껏 이런 주장은 들어본 적이 없습니다. 이 세션은 지금 당장 끝내는 것이 좋겠습니다!”
---본문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