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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루시의 우리 무당 이야기

황루시의 우리 무당 이야기

황루시 | 풀빛 | 2000년 09월 30일   저자/출판사 더보기/감추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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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품목정보
발행일 2000년 09월 30일
쪽수, 무게, 크기 279쪽 | 148*210*20mm
ISBN13 9788974748593
ISBN10 897474859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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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사 죽음을 다루는 굿이라 해도 굿판에는 죽음과 삶이 공존한다. 죽음은 삶의 일부일 따름이다. 그래서 무속 문화에 익숙한 사람들은 굿을 하면서 절절히 죽은 이를 애도하는 동시에 주변 현실을 하나도 놓치지 않고 인식하는 능력을 보여 준다. 특히, 굿 문화를 사는 할머니들은 그런 감정적 곡예의 천재들이다.

넋건지기 굿판에서 만난 할머니가 기억난다. 유복자로 태어나 아버지 얼굴도 모르고 자란 막내 손주는 군 제대 후 며칠 후 파도에 휩쓸려 죽었다. 친구들과 백합 따러 바다에 나갔다가 갑지기 밀려든 풍랑에 스러지고 만 것이다. 성실하다고 인정받아 쉽게 취직이 되었고, 다음 월요일부터 출근할 예정이었다. 어머니는 늘 일하러 밖으로 나다니고 할머니 손에 가엾게 자랐던 젊은이. 힘들었던 시절이 다 지나 이제 나도 돈 벌어 할머니, 어머니 고생 안 시킨다면서 희망에 가득 찼었다. 그러나 인간의 운명이란 알 수 없는 것, 새파란 청춘으로 혼인도 못하고 죽었으니 그 슬픔 영혼이 어디를 헤맬 것인가. 굿하는 내내 할머니는 목이 꺽꺽해지도록 울었다. 굿이 벌어지는 마루에 앉아 세수 수건을 입에 대고 줄곧 그렇게 울고 있었다.

그렇지만 할머니는 주변에서 돌아가는 일에 지극히 민감했다. 누구든 손님이 오면 곧 울음을 멈추고 날이 차다면서 손을 잡아끌어 방안에 앉히고, 뭘 먹었느냐고 물은 뒤 어떤 상을 어떻게 차리라고 정확히 지시했다. 먼저 돌아가는 사람에게는 고맙다는 인사를 챙기고, 내일 새벽까지 굿을 하니까 형편 되면 다시 구경 오라는 말도 잊지 않았다. 하지만 그 일이 끝나면 다시 굿상의 손주 얼굴을 한 번 쳐다본 후 수건을 대고 울음으로 돌아갔다. 할머니는 울면서 넋두리를 했다. 울음은 넋두리이고 넋두리는 곧 울음이었다. 청년의 짧지만 처절한 삶은 할머니의 넋두리를 통해 정확하게 전달되었다.
---pp.219~2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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