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최병화 PD를 처음 만난 것은 그가 연출한 〈내일은 태양〉이 방송위원회 선정 ‘이달의 좋은 프로그램’으로 선정되어 상을 받는 시상식장에서였다. 〈내일은 태양〉이라는 프로는 합천 원경고등학교가 무대로, 개교 후 최초 4개월의 과정을 담은 작품이었다. 나는 당시 심사위원으로서 최병화 PD가 직접 촬영하고 연출한 그 프로그램을 심사하게 되었는데 한마디로 신선한 충격이었다. 그것은 마치, 아픈 청춘들의 고백서와도 같았다. 상처 입은 아이들과 그 아이들을 숙명처럼 끌어안길 자원한 초임교사들의 눈물겨운 드라마였다.
나는 그 작품을 연출한 사람이 누군지 궁금해졌다. 방송 경력 10년째라는 그는 아직 앳된 티가 가시지 않은 동안이었고, 첫눈에 사람을 끌어당기는 묘한 매력을 갖고 있었다. 연출자가 누구인지 궁금했다는 나의 말에 그는 빙긋이 웃었고, ‘…… 이 작품으로 인해 나는 힘들게 일어섰습니다. 내 비록 지금 여기에 있지만 마음은 아직도 그곳에 머물러 있습니다……’라는 다소 현란한 요지의 수상소감을 간단하게 말할 뿐이었다. 이 책을 읽고서야 그날 그의 실없는 웃음과 수상소감의 의미를 알 수 있었다. 그는 그곳, 지방의 작은 마을 한구석 방황하는 젊은 청춘들 속에서 자기 자신을 발견했고, 자신의 상처를 치유받기 위해 그곳에 머물렀던 것이다. 이러한 사실은 저자 자신도 고백한 부분이다. 또한 그는 아프게 자란 자신의 10대와, 항상 가슴이 시려서 방황으로 점철한 스무 살 시절, 그리고 아직도 어떻게 사는게 올바르게 사는 것인지 잘 모르겠다는 서른의 끄트머리에서 느끼는 절망들을 그곳에서 모두 보았노라고 얘기했다.
그는 그곳에서 대체 무엇을 보았을까? 삭풍 부는 합천 벌판에 홀로 선 한 삼십대 프로듀서와, 쉰세 명의 아이들. 그가 그곳에서 보았다는 십대에서 삼십대를 관통하는 그 아픈 절망의 단초는 무엇일까? 아마도 그것은 ‘사랑의 부재’가 아닌가 싶다. 저자가 하고 싶은 말은 바로 그것이었던 것이다. 그는 ‘사랑’을 이야기하고 싶었던 것이다. 그러기에 이 책은 이 시대 외롭고 슬픈 영혼을 가진 사람들, 우리 모두가 언젠가 지나왔을, 하지만 아직도 빠져나오지 못하고 있는 우리 마음속의 아픈 청춘, 그 모두에게 바치는 책이다. 청춘에 나이가 무슨 소용이란 말인가? 우리는 늙어 죽을 때까지 이 아이들이 했을 똑같은 방황과 고민들을 하며 살아갈 것이다. 부디 이 책이 ‘사랑의 부재’에 시달리는 모든 이에게 치유의 단초를 제공하게 되길 기대한다.
--- 이호철 (소설가, 경원대 교수)
나는 아직도 그곳을 ‘섬’이라고 부른다. 그 섬에서 나는 내 안의 얼굴과 꼭 빼닮은 쉰세 명의 ‘문제아’와 열다섯 분 선생님을 만났다. 그리고 그들과 부대끼며 보낸 최초의 1년. 그것은 한마디로 지독한 혼란과 광기의 시간이었다. 아이들은 제 가슴속에서 불어오는 바람의 정체를 알지 못해 떠돌았고, 선생님들은 그 실체 없는 바람의 끝자락을 붙잡고 몸부림쳤다. 되는 일보다 실패하는 일이 더 많았고, 웃는 날보다 울부짖던 날이 더 많았다. 선생님은 근엄한 훈장님이 아니었고, 아이들 역시 가르치는 대로 꼬박꼬박 배우는 학생이 아니었다. 많은 선생님들이 좌절했고, 많은 아이들이 학교를 뛰쳐나갔다가 되돌아오기를 반복했다.
그러나 그 절대적인 혼돈의 한가운데에서도 그들이 꿈꾸는 ‘새로운 학교’ 만들기를 포기하지 않았다. 때로 날카로운 손톱을 곤두세워 서로의 가슴에 생채기를 내고, 다시 새살이 돋아나고, 아픈 가슴을 보듬으면서 한걸음 한걸음 다가서는 모습은 곁에서 보기에도 눈물겨웠다.
돌이켜보면, 그것은 한때의 인연이 만든 꿈같은 나날이 아니었을까? 처음에 나는 다른 기성세대와 마찬가지로 그들에 대해 난폭한 문제아란 선입견을 가졌다. 그랬기 때문에 그들을 꾸짖어야 하는지, 타일러야 하는지 그런 것들을 고민했다. 어이없는 고민이었고, 부질없는 짓이었다. 뭔가를 해주려고 하면 할수록 나는 더 무기력해졌고, 이해하려고 하면 할수록 더 혼란에 빠졌다. 결국 아무것도 해줄 수 없었다. 나중에야 내가 아이들 속으로 들어가지 않으면 그들을 진정으로 이해할 수 없다는 것을 알았고, 내가 애써 교화하려던 아이들에게서 오히려 더 많은 것을 배웠다.
이 글은 내가 원경고등학교를 취재했던 1998년 2월부터 1999년 초까지 그곳에서 일어난 실제 이야기를 모은 것이다. 1년여의 취재노트, 선생님들과 아이들의 증언과 일기 등을 참조해서 재구성했다. 나는 교육자도 사회비평가도 아니다. 그러므로 아이들 이야기에 굳이 거창한 비평이나 분석을 가할 생각은 없다. 다만, 영화 <박하사탕>에서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는 기차가 멈춰설 때마다 순수라는 이름으로 되살아나듯, 우리 지난날을 꼭 빼닮은 아이들의 슬프도록 아름다운 ‘청춘’과 ‘사랑’을 아주 솔직하게 이야기하고 싶을 뿐이다. 기존 학교에서 쫓겨난 ‘문제아’들이 마음의 어둡고 긴 터널을 빠져나와 어떻게 세상과 화해하고, 자신을 사랑하는 법을 되찾게 되는지를.
경상남도 합천의 유별난 학교 원경고등학교. 기존 학교에 적응하지 못해 학교를 그만둔 53명의 아이들과 수많은 좌절과 배신 속에서도 포기하지 않은 열다섯 교사들의 이야기가 뭉클하다. 아이들은 자신들을 믿지 않는 어른들에 대한 원망스런 기억이 있다. 한번 찍히니까 수업시간에 만화를 봐도 아무 말을 안 하는 교실 분위기와, 공부 못하면 얼굴 한번 제대로 쳐다보지도 않는 선생님과, 수업시간에 배가 아파서 병원에 가겠다고 했더니 꾀병이라고 믿지 않았다는 아이까지, 우리네 교실 풍경이 아픔으로 다가온다. 이 책은 방황하는 아이들에게 권하고 싶다. 아이들이 학교와 교사에 대해 신뢰의 불씨를 다시 피울 수 있으리라 믿으며….
--- 이성희 선생님
"나는 아직도 그곳을 '섬'이라고 부른다. 그 섬에서 나는 내 안의 얼굴과 꼭 빼닮은 쉰세 명의 '문제아'와 열다섯 분 선생님을 만났다." 그리고 이 책 <교실 이데아>가 선을 보였다. 요사이 입시위주의 교육풍토가 강제하는 여러 가지 문제점 때문에 새로운 교육모델로 떠오르고 있는 '대안학교', 그 중에서도 가장 반사회적이며 동시에 피폐한 학생들이 모인 것으로 유명하다는 경남 합천의 '원경고등학교'가 그 무대다. 게다가 이 책의 지은이는 스스로 고백하고 있는 것처럼 교육전문가 또는 사회비평가라고 하기엔 멋쩍은 방송국 프로듀서다. 직접 카메라를 둘러메고 그 속으로 들어가 1998년 2월부터 1999년 초까지 1년여 취재한 끝에 '비평'이나 '분석'은 배제한 채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묘사했다고 한다.
프롤로그/제1부 아데프트의 야생마들/제2부 아름다운 유배지에도 봄은 오는데/제3부 여름나무에서 가을나무로/제4부 스무 살의 아침/에필로그...
차례만 들여다보면 한 편의 아름다운 다큐멘터리를 보는 듯하다. 그러나 프롤로그에서부터 조직폭력배들의 패싸움을 연상시키는 난동장면, 그것도 자기 학교를 때려부수는 학생들의 행패로부터 시작하는 내용을 읽어나가다 보면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학교라는 생각이 앞선다. 고등학생들이 교내에서 담배를 피워도 좋고, 술을 마셔도 좋은 학교. 나아가 공부하기 싫으면 언제든지 교실을 뛰쳐나가도 되고, 학교 밖에서 몹쓸 짓을 해도 퇴학이나 정학이 없는 학교......
"처음에 나는 다른 기성세대와 마찬가지로 그들에 대해 난폭한 문제아란 선입견을 가졌다. 그랬기 때문에 그들을 꾸짖어야 하는지, 타일러야 하는지 그런 것들을 고민했다. 어이없는 고민이었고, 부질없는 짓이었다. 뭔가를 해주려고 하면 할수록 나는 더 무기력해졌고, 이해하려고 하면 할수록 더 혼란에 빠졌다. 결국 아무것도 해줄 수 없었다. 나중에야 내가 아이들 속으로 들어가지 않으면 그들을 진정으로 이해할 수 없다는 것을 알았고, 내가 애써 교화하려던 아이들에게서 오히려 더 많은 것을 배웠다."
저자의 고백을 이해하려면 독자들 역시 이 책을 읽어야 한다. '학교란 이런 것이다'라는 선입견에서 보면 분명 거부감이 앞설 테지만, 이 책에 등장하는 원경고등학교 50여 명의 학생들은 어쩌면 이 땅의 제도권 교육에 몸사리고 있는 모든 고교생들의 화신인지도 모른다. 용기 없는 그들을 위해 용기 있는, 가슴이 뜨거운 이들이 몸으로 보여주는 제모습인지도 모른다. 내가 순응하며 지나온 학창시절, 그리고 내 자식이 어쨌든 지나갈 학창시절이 어떻게 대비될까 궁금한 동시에 무엇이 참교육인지 한 번 더 깨닫지 않을 수 없었다. 그리고 이 책의 지은이 '최병화' 프로듀서가 만들었다는, 원경고등학교를 배경으로 한 다큐멘터리 <내일은 태양>이 몹시도 보고싶어졌다.
--- 特約 김기태 컬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