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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보르자크 그 삶과 음악

드보르자크 그 삶과 음악

[ CD 2매 ] 우리가 사랑하는 음악가-14이동
리뷰 총점9.4 리뷰 7건 | 판매지수 2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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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품목정보
발행일 2015년 01월 15일
쪽수, 무게, 크기 340쪽 | 153*220*30mm
ISBN13 9788993818727
ISBN10 899381872X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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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소개 관련자료 보이기/감추기

저자 : 닐 웬본 (Neil Wenborn)
케임브리지대학을 졸업하고 옥스퍼드대학의 보들리언 도서관에서 근무했다. 이후 영국의 한 대표적인 독립 출판사에서 편집장으로 일했고, 1989년부터는 프리랜스 작가 겸 출판 컨설턴트로 미국과 영국에서 활동했다. 명성 높은 [History Today Companion to British History]와[A Dictionary of Jewish-Christian Relations]을 공동 편집했고,[멘델스존, 그 삶과 음악][모차르트 전기][하이든 전기][스트라빈스키 전기], 수상작 시집[firedoors]를 썼다.
역자 : 이석호
보성중고등학교와 서울대학교 경영학과를 졸업했다. 어린 시절부터 음악을 좋아해 대학 졸업 후 [그라모폰 코리아]의 편집 기자를 거쳐 EMI 뮤직의 클래식 부서에서 일했다. 현재 미국에 거주 중이며, 음악과 예술 전반에 관련된 좋은 책을 쓰고 알리는 일에 사명감을 느끼고 있다. 옮긴 책으로[바그너, 그 삶과 음악][스트라빈스키, 그 삶과 음악][버르토크, 그 삶과 음악][로드리고, 그 삶과 음악][왜 말러인가?]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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좀 더 가까이 들여다보면 볼수록 새로운 역설이 드러나고 자꾸만 쌓여간다 “체코 음악의 아버지”라 불린, 그의 선배 작곡가 베드르지흐 스메타나Bed?ich Smetana(1824-1884)는 여러 면에서 드보르자크보다 더욱 코즈모폴리턴적인 인물이었다. 그럼에도 전 세계의 이목을 체코 음악에 고정시킨 장본인은 보수적인 체코 농민의 피를 물려받은 드보르자크였다. 그런가 하면 바그너 진영과 브람스Johannes Brahms(1833-1897) 진영의 반목으로 인해 둘로 쪼개져버린 음악 지형 양쪽으로 마치 투박한 거인처럼 다리를 걸치고 선 인물 또한 드보르자크였다. 그는 열혈 바그네리안이면서도 브람스와는 개인적으로 깊은 우정을 나누었다.
--- p.9

그의 음악과 관련해 무엇보다도 두드러지는 특징은 그 넉넉한 감정적 진폭이라 할 것이며, 때로는 단 하나의 작품이 무릇 인간이 느끼는 모든 감정의 극단을 아우르고 승화시키기도 한다. 드보르자크의 음악을 심층적으로 연구한 학자 존 클래펌John Clapham은 언젠가 [피아노 오중주](Op.81)에 대해 아래와 같이 기술한 있는데, 이는 사실 드보르자크의 개성이 담뿍 담겨 있는 모든 작품에 해당된다고 해도 무방할 것이다. “웃음과 눈물, 슬픔과 흥겨움, 그리고 이러한 양극단 사이에 놓인 수많은 분위기가 병존하는 작품이다 … 그는 완벽에 가까운 솜씨를 부려, 또한 폭넓고 다양한 악기의 색채법을 발휘해 각각의 분위기를 펼쳐 보인다. 생기 넘치는 리듬은 작품 전체를 관통하며 생명력을 불어넣고 있다.”
--- p.12

드보르자크에게 음악의 소질을 물려준 것이 누구였건 간에, 확실한 사실은 아주 어린 시절부터 그 소질을 보이기 시작했다는 점이다. 위대한 예술가의 유년기는 후대 사람들의 상상력에 의해 실제 이상으로 과장되는 게 보통이고, 다섯 살배기 토니크가 깽깽이를 들고 술집 손님들의 흥을 돋우곤 했다는 이야기 또한 출처가 불분명하다. 하지만 가장 기초적인 교육을 받기 시작한 무렵부터 음악이 그의 주요 관심사 중에 하나였음에는 의심의 여지가 없다.
--- p.20

돌연히 들이닥친 현대성의 상징을 맞닥뜨린 여덟 살배기 토니크는 이후로 기차와 관련된 것이라면 무엇이든 정신없이 빠져들었다. 심지어는 세계를 호령하는 작곡가가 되고 난 뒤로도 틈만 나면 기차역에 들러 기관차 번호를 메모하거나 기관사들과 기계적인 전문 사항들에 대해 대화를 나누곤 했다. 증기기관차를 발명할 영광을 누릴 수만 있었더라면 자신의 모든 교향곡을 내버려도 아깝지 않았을 거라고 말한 적도 있다.
--- p.22

코즈마크의 밴드가 가설극장 오케스트라에 완전히 흡수 포괄된 1865년까지 드보르자크의 음악 생활은 이중인격자의 그것과 마찬가지였을 것이다. 하루는 카페에 나가 왈츠를 연주하고, 다음 날은 피트에 들어가 그랜드오페라를 연주해야 하는 생활이었을 테니 말이다. 가끔씩은 독서조합이나 신설 단체인 예술협회가 기획하는 연주회 무대에도 출연해야 했다. 돌이켜 생각해보면 드보르자크에게는 일종의 도가니와도 같은 시기였다. 대중적인 스타일과 정통적인 스타일을 힘들이지 않고 하나로 녹여내는 솜씨, 바로 그것을 배운 시기였던 것이다. 이는 또한 드보르자크 음악의 주요한 특징이 되며, 그의 음악이 유럽과 신대륙에 걸쳐 인기를 잃지 않고 살아남은 핵심 이유이기도 하다.
--- p.44

1863년 2월과 11월 조핀 섬에서 열린 세 차례의 콘서트에서는 리하르트 바그너가 지휘봉을 잡았다. 마치 쇤베르크Arnold Schoenberg(1874-1951)의 음악이 피에르 불레즈Pierre Boulez(1925- ) 세대의 작곡가들에게 막대한 영향을 미친 것처럼, 독일발 모더니즘의 전형이라 할 바그너의 음악은 드보르자크 세대의 음악가들에게 강한 마력을 행사하고 있었다. 드보르자크는 바그너의 최신작을 연주하면서 느낀 흥분이 지나친 나머지 스토킹에 가까운 영웅 숭배로까지 이어졌다고 인정했다. 20년 뒤 영국 방문 도중의 인터뷰 한 대목을 옮겨보자. “나는 바그너에 완전히 빠졌더랬습니다. 작은 거인의 얼굴을 조금이라도 더 보기 위해 그를 따라 거리를 헤매던 기억이 생생합니다.”
--- p.45

1871년은 드보르자크에게 하나의 분수령이 되는 해였다. 6월에는 자신이 그저 비올라 연주자가 아니라 작곡가로서 곡을 쓰고 있다는 사실을 마침내 공개했다. 오페라 작곡이 진행 중임을 프라하의 음악잡지 [악보Hudebni listy]를 통해 밝힌 것이다(그는 교향곡의 경우와 마찬가지로 오페라 또한 완성한 작품이 그다지 성에 차지 않으면 다시 펜을 들어 신작을 쓰는 쪽을 택했다). 다음 달에는 가설극장 오케스트라 단원직을 내던지는 용단을 내렸다. 9년간 주된 고정 수입이 되어 주었던 비올라 수석 자리를 내치고 흘러가는 운에 스스로를 내맡긴 것이다.
--- p.57

첫사랑 요세피나의 열아홉 살 여동생 안나 체르마코바와 언제부터 그런 사이였는지는 정확치 않지만, [왕과 숯 굽는 사람] 리허설이 중단된 시점 안나는 두 달 째 드보르자크의 아이를 임신 중이었다. 그들은 11월 17일 혼례를 올렸고, 드보르자크는 처가에 신방을 꾸렸다(11월 17일은 드보르자크 가문의 전통적 길일이었던 듯싶다. 드보르자크 부모의 결혼기념일이 11월 17일이며, 드보르자크 의 딸 오틸리에와 작곡가 요세프 수크가 화촉을 밝힌 것은 드보르자크의 결혼 25주년이 되는 날이었다). 안나의 임신으로 급히 치른 결혼식이었는지는 모르겠지만, 부부의 결혼 생활은 진정으로 충만했다.
--- p.66

“브람스 씨께서 귀하의 빼어난 재능을 관심 있게 주시하고 있습니다. 저 또한 그렇거니와 브람스 씨께서는 특히 체코 이중창집[[모라비아이중창집]을 말함]이 특히 마음에 든다고 하더군요. 편지와 함께 귀하가 쓴 몇 곡의 악보를 동봉해 브람스 씨께 보낼 것을 권합니다. 브람스 씨는 귀하가 제출한 심사작 중 이중창집을 따로 뽑아 그가 거래하는 출판업자에게 보이고 천거할 생각이라고 합니다. … (중략) … 귀하께서도 본인의 곡이 외국에 널리 알려지길 원하시리라 믿습니다. 체코라는 좁은 나라에서만 유명한들 그게 무슨 소용이겠습니까.”
--- p.92-93

언뜻 보기에 브람스와 드보르자크 사이에는 유사성보다 차이점이 더 많았다. 브람스는 아직 그 유명한 수염을 기르기 전이었지만 드보르자크보다는 여덟 살이나 나이가 많았고 이미 국제적으로 널리 알려진 작곡가였다. 그는 독일인이었고, 도시 출신이었다. 신교도적 가르침을 받으며 성장했지만 종교적인 측면에 있어서는 자유사상가에 가까웠고, 결혼에 뜻이 없음을 분명히 한 독신주의자였다. 반면 드보르자크는 체코인임을 자랑스러워했고, 도시보다는 시골을 판연히 선호했다. 신의 섭리에 의문을 제기하지 않는 신심 깊은 가톨릭 교도였으며, 무엇보다 가정을 소중히 여기는 남편이자 아버지였다. 그러나 조금 더 찬찬히 들여다보면 비슷한 점이 떠오른다. 둘 모두 기질적으로 주류에 동화하지 않는 아웃사이더였고, 화려한 것을 꺼리는 과묵한 성품의 소유자였다. 빈 고전주의의 거장들을 존경한다는 점도 공통적이었고, 음악원에서 배운 것만큼이나 카페와 댄스홀에서 쌓은 경험을 자양분으로 삼았다는 점도 비슷했다.
--- p.93-95

지금까지 수많은 음악학자들이 [슬라브 춤곡]에 쓰인 민속음악적 모델을 찾는답시고 무던히도 많은 잉크를 낭비했다. 확실한 점은 드보르자크가 어린 시절부터 알고 있던 춤곡 형식에서 출발
했다는 사실이다. …(중략)… 그렇지만 그가 친 그물망은 생각보다 더 넓었다. 체코 국경을 넘어 나가야 그 기원을 찾을 수 있는 곡도 일부 있고(각 곡의 명칭에 이런 점이 반영되어 있다), 서로 다른 춤곡 형식을 접목시킨 곡도 있다. 실제 민요 선율의 흥취를 연상시키는 곡이 몇 곡 있긴 하지만, 기존 춤곡의 선율을 직접 인용한 대목은 단 한 군데도 찾을 수 없다.
--- p.105

출판 작품의 제목을 체코어와 독일어로 병기해 달라는 요구와 자신의 세례명을 독일식인 ‘안톤’이 아닌 민족 및 언어 중립적인 ‘안트.Ant.’로 표기해달라는 요구를 담아 짐로크에게 보낸 편지는 바로 이러한 새로운 확신에 바탕을 둔 것이었다. 둘 사이의 격한 감정은 1885년 극으로 치달았다. 짐로크가 이름 및 작품 표기와 관련한 드보르자크의 요구를 대수롭지 않은 것으로 치부한 것이 화근이었다. 8월에 보낸 답신에서 드보르자크는 단호한 말투로 쏘아붙였다. “내 체코 동포들을 비웃지 마시오. 또한 나를 딱하게 여길 필요도 없소 … 당신은 내가 어떤 여건에서 살고 있는지 일말의 감도 잡지 못하고 있는 게 분명하군요.”
--- p.158

드보르자크에게 대중적 명성을 가져다준 단 한 곡의 작품을 고르라면 누가 뭐래도 [신세계 교향곡]이 정답일 것이다. …(중략)… [신세계 교향곡]은 드보르자크의 작품 중 가장 뜨거운 격론을 불러일으켜온 곡이기도 하다. 무엇보다 첨예한 논점은 과연 이 곡이 얼마나 미국의 민속적 요소에서 비롯된 것인지에 관한 문제인데, 이는 정작 실제 작곡이 이루어진 정황보다 즉석에서 붙인 제목에 이목이 집중된 데 기인한다. 드보르자크 본인은 작품의 제목에 대해 그저 “신세계에서 받은 인상을 담아 보내는 인사말”에 지나지 않으며, 원숙기의 다른 작품과 마찬가지로 뼛속까지 보헤미아적인 곡이라고 부연했다(그런가 하면 드보르자크는 코바르지크에게 “내가 붙인 제목 때문에 사람들이 온통 혼란스러워 하는 것 같군. 고향 사람들이라면 그 의미를 대번 알아먹을 텐데 말이지”라고 말하기도 했다고 한다).
--- p.214

미국 언론계 인사 중에서 드보르자크의 행보에 가장 깊이 공감했던 헨리 크레빌은 작곡가가 유럽으로 돌아가고 난 1년 뒤의 글을 통해 냉철한 현실 인식을 보여 주었다. “미국의 대부분 사람들에 관한 한 1892-1895년의 기간은 천사가 그들도 모르는 사이에 내려와 함께 기거한 세월이었다고 해도 조금도 지나친 말이 아니다.” 그러나 드보르자크의 신세계 모험담에 관한 마지막 결정적 이야기는 스스로의 이상을 실현하기 위해 모두를 움직였던 여인에게 돌아가야 온당할 듯하다. 제2차 세계대전 종전까지 목도할 정도로 장수했던 서버 여사는 그녀가 설립한 국립 음악원과 얽히고설켰던 십 수 년을 뒤돌아보며 이렇게 기록했다. “내가 한 일 가운데 무엇보다 자랑스러운 일은 드보르자크 박사를 미국으로 모셔온 것이다.”
--- p.243-244

드보르자크가 사망한 그날, 스메타나의 [보헤미아의 브란덴부르크 사람들] 공연을 관람하기 위해 프라하 국립극장을 찾은 관객들은 공연장 전체를 뒤덮은 검은 장막을 보고 비보를 감지했다. 5월 5일에 치러진 장례식은 온 국민의 애도 속에 거행되었다. 성 살바토르 성당을 출발해 국립극장으로 향하는 운구 행렬의 좌우에는 수만 명의 조문객이 도열해 거장의 마지막 가는 길을 배웅했다. 체코 문화의 심장과도 같은 국립극장의 발코니에서는 드보르자크의 [레퀴엠] 중 ‘입당송’이 들려왔다.
--- p.27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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