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하철에서였다. 다음 역에 도착할 때쯤 어떤 젊은 여자 분이 준수하게 생긴 남성을 향해 욕설을 했다. 남자가 추행이라도 했을까. 밤늦은 시각이라 혼잡하지도 않아서 몰래 추행할 분위기도 아니었다. 다음 역에서 열차가 서고 문이 열리자 그 남자는 분하다는 듯이 여자의 얼굴을 향해 주먹을 날렸다. 몇 미터 떨어진 곳에 있었는데도 퍽 하는 둔탁한 소리가 뚜렷이 들렸다. 눈을 향해 주먹을 날린 거다. 그러고는 그 남자는 문을 통해 유유히 사라졌다. 바로 옆에 있던 흰머리가 무성한 할아버지가 다급하게 "저 남자 아는 사람이예요?"라고 물었다. 그 아가씨는 "아니요, 몰라요"하며 울먹이며 외치는데 눈가에서는 피가 줄줄 흘러내리고 있었다. 솔직히 눈인지 눈 주위인지 정확하지는 않았다. 할아버지는 그 사람을 잡겠다고 뛰어나갔고, 그 여자 분의 눈에서는 피가 계속 흘러나와 바닥에 떨어지고 있었다. 새빨간 혈액이 그렇게 위협적이었을까. 모두들 걱정하며 안타까워하는 눈치인 듯했지만 멀뚱멀뚱 보고만 있는 것이었다.
난 가만히 있을 수가 없었다. 앞으로 나아가 "저 의대생인데요"라고 운을 일단 뗐다. 하지만 그 당시 나는 예과생이었다. 예과 2학년 겨울방학 중이었으니까, 진짜 아무것도 몰랐다. 잘하는 거라곤 국어, 물리, 화학, 생물뿐이었다. 무슨 생각으로 나섰는지. 하지만 내겐 예과를 수료하면서 익힌 비장의 무기가 있었지. 바로 피를 더이상 무서워하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난 주위를 둘러보며 말했다.
"저, 깨끗한 손수건 없어요?"
---pp.145~146
안녕하세요? 카데바 아저씨!
'아저씨, 열심히 할게요........ 그리고 정말 고맙습니다.'
비눗물로 정성스럽게 씻어드리면서 털을 깎기 시작했다. 몸 전체가 나무토막같이 딱딱했다. 언젠가 아버지께서 '죽은 사람은 안 무거워. 송장을 지고 산을 넘어가는데 나무토막 같았어' 하시던 말씀이 떠올랐다. 사후경직(Rigor Mortis)이었다. 몸이 얼마나 딱딱하게 굳었는지 힘만 세다면 배꼽 위를 잡아 한 손으로 들어올릴 정도다. 후의 일이지만 이 경직된 몸 때문에 해부하는 데 참으로 곤란한 점이 많았다.
주먹을 꽉 쥐고 돌아가셨기 때문에 손을 해부할 때 더욱 힘들었다. 손이라는 것이 얼마나 정교한지 그 얇은 손 가죽은 근육만 해도 네 개의 측으로 구분된다. 그런데 손이 펴지지가 않는 것이었다. 해부학 수업 진도를 따라가기 위해 밤늦게 까지 해부실에 남아 온 힘을 기울여 두 손으로 아저씨의 손을 억지로 펴려 했다. 그런데 감자기 '뚝' 하는 둔탁한 소리가 났다. 아저씨의 인지 손가락이 부러져버린 것이었다. 얼마나 죄송하던지....... 손가락 주위의 인대(Ligament_를 먼저 끊어내고 손가락을 펴야 된다는 것은 나중에 안 일이다.
해부학이야말로 의대생을 의대생답게 만드는 과목이다. 비록 생명 없는 몸이지만 육안적(gross) 인간을 대상으로 공부를 한다는 것, 더구나 수세기 전만 해도 금지되었던, 그만큼 비장미가 돌고 엽기적인 인체 해부를 실습하는 것이다.
--- p.43-44
근본적인 치료 없는 통증 치료는 더 큰 고통과 불행을 일으킬 것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가장 인간적이어야 할 의사들이 가장 냉혈한처럼 보인다. 그들은 때때로 인정도 없어 보이며 죽음을 웃어넘기며 웬만한 통증은 별것 아닌 듯 업신여기는 감정 없는 사람처럼 보인다. 기억하시기를 부탁드리고 싶은 것은 의사를 박애주의자까지는 아니더라도 그냥 보통 사람이라고 생각해달라는 것이다. 성격 나쁜 집단이라 해도, 사람 죽어가면 어떻게든지 살리고 싶고 고통받는 것 보면 안타까워할 것 아닌가. 오히려 인체를 더 잘 이해하기 때문에 때때로 환자 본인보다 어떻게 되지 않을까 더 걱적하고 혹시나 잘못 판단 내리지나 않았나 하고 전전긍긍하는 것이 의사다.
--- p.141-142
<한번 정도 들어왔을 듯한 우스갯소리 하나>
어느 날 밤늦은 시간에 의대 본과 1학년 학생이 학구열에 불타 해부학실에서 실습시험 준비를 위해 혼자 해부를 한 후 문을 닫고 나가려고 하는데 뒤에서 이상한 소리가 났다. 그 학생, 뒤를 돌아보고는 경악을 하고 말았다. 방금 전까지 해부했던 시신이 자신을 향해 걸어오는 게 아닌가. 그 친구는 정신 없이 도망치기 시작했는데 어느새 시신이 뒤에서 그의 등을 잡는 것이었다. 그리고는 '내 팔 가져가서 시험 공부해'하며 팔을 떼어주는 게 아닌가. 아, 말할 수 없이 그로테스크한 상황.
떨어진 팔을 잡고 뛰기 시작했는데 다시 그 시신 뒤쫓아와서 등을 잡으며 한쪽 다리를 떼어주며 '이 다리 가져가서 시험 공부해' 하는 거다. 그 친구, 양손에 팔과 다리를 들고 또 미친 듯이 뛰는데 이제 그 시신이 한 발로 껑충껑충 뛰어오더니 '내 머리 가져가서 시험 공부해' 하며 진짜 머리를 떼어주려 한다. 그러자 그 친구, 정색을 하며 목소리를 낮게 깔고 시큰둥하게 대답하길, '그건 시험 범위 아닌데요.'
시체를 해부한다는 것은 수년이 지난 지금도 약간의 긴장과 전율을 느끼게 한다. 그런데도 어떻게 그 일을 하루 걸러서, 때론 자정을 훌쩍 넘기면서까지 태연하게 지속할 수 있는 걸까.
그 이유는 첫째, 시험의 공포는 시신 해부의 공포를 뛰어넘기 때문이다. 등수를 강의실 한쪽에 붙여두는 비인간적인 일이 '자행'되는가 하면 성적이 등수와 함께 발표되기도 하는데, 평범한 의대생이라면 열심히 해야 중간 등수나 유지하는 상황이니 하나라도 더 알겠다는 의지는 참으로 강렬하다.
둘째, 익숙해진다. 의대에서 의도했는지 안 했는지는 모르겠지만 예과 시절부터 일반생물학, 유전학, 세포생물학, 동물발생학, 동물비교해부학의 과목에서는 지렁이부터 시작해서 붕어개구리(우리나라의 예쁜 참개구리를 생각하면 안 된다. 한쪽 팔뚝만한 개구리를 쓰니까), 쥐(이것 역시 마우스나 보통 집쥐 크기가 아니다. 약간 과장해서....
--- p.
<한번 정도 들어왔을 듯한 우스갯소리 하나>
어느 날 밤늦은 시간에 의대 본과 1학년 학생이 학구열에 불타 해부학실에서 실습시험 준비를 위해 혼자 해부를 한 후 문을 닫고 나가려고 하는데 뒤에서 이상한 소리가 났다. 그 학생, 뒤를 돌아보고는 경악을 하고 말았다. 방금 전까지 해부했던 시신이 자신을 향해 걸어오는 게 아닌가. 그 친구는 정신 없이 도망치기 시작했는데 어느새 시신이 뒤에서 그의 등을 잡는 것이었다. 그리고는 '내 팔 가져가서 시험 공부해'하며 팔을 떼어주는 게 아닌가. 아, 말할 수 없이 그로테스크한 상황.
떨어진 팔을 잡고 뛰기 시작했는데 다시 그 시신 뒤쫓아와서 등을 잡으며 한쪽 다리를 떼어주며 '이 다리 가져가서 시험 공부해' 하는 거다. 그 친구, 양손에 팔과 다리를 들고 또 미친 듯이 뛰는데 이제 그 시신이 한 발로 껑충껑충 뛰어오더니 '내 머리 가져가서 시험 공부해' 하며 진짜 머리를 떼어주려 한다. 그러자 그 친구, 정색을 하며 목소리를 낮게 깔고 시큰둥하게 대답하길, '그건 시험 범위 아닌데요.'
시체를 해부한다는 것은 수년이 지난 지금도 약간의 긴장과 전율을 느끼게 한다. 그런데도 어떻게 그 일을 하루 걸러서, 때론 자정을 훌쩍 넘기면서까지 태연하게 지속할 수 있는 걸까.
그 이유는 첫째, 시험의 공포는 시신 해부의 공포를 뛰어넘기 때문이다. 등수를 강의실 한쪽에 붙여두는 비인간적인 일이 '자행'되는가 하면 성적이 등수와 함께 발표되기도 하는데, 평범한 의대생이라면 열심히 해야 중간 등수나 유지하는 상황이니 하나라도 더 알겠다는 의지는 참으로 강렬하다.
둘째, 익숙해진다. 의대에서 의도했는지 안 했는지는 모르겠지만 예과 시절부터 일반생물학, 유전학, 세포생물학, 동물발생학, 동물비교해부학의 과목에서는 지렁이부터 시작해서 붕어개구리(우리나라의 예쁜 참개구리를 생각하면 안 된다. 한쪽 팔뚝만한 개구리를 쓰니까), 쥐(이것 역시 마우스나 보통 집쥐 크기가 아니다. 약간 과장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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