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쎄요, 부인이나 저처럼 어느정도 교육도 받고 일정한 규모의 생활을 하고 있는 중간층들이란 물론 어느 부분은 할 수 없이 포기하고 살아가지만, 여기서의 삶이 진이가 느끼듯 그렇게까지 엄혹하다고 느끼기는 좀 어려운 일이겠지요. 그러나 일상의 잡다한 현재의 일에서부터 앞으로 어찌될지 도무지 종잡을 수 없는 우리들의 미래에 이르기까지, 문득 돌아다보면 얼마나 우리의 삶이 속박당하고 있는가를 대번에 알게 되는군요. 누구나 말로는 아주 쉽게 남북 분단이 우리의 삶을 근원적으로 제한하고 있다고는 말하지만, 실제로는 거기에 익숙해져서 마치 무너진 집의 벽 한쪽에 받침대 대신 동시대의 우리보다 못한 사람들을 세워두고, 그들로 하여금 무너져내리는 지붕을 쳐들고 있도록 해두면서 임시로 살아가고 있는 듯한 꼴입니다. 우리는 온전한 정상의 삶을 살아가고 있는 게 아니라 내일을 기약할 수 없는 임시의 삶을 살아가고 있는 겁니다.
--- p.262-263, --- '골짜기' 중에서
그가 부르는 노래는 재빠르게 저자 바닥으로 퍼져나가 누구나 따라 부르게 되었다.
장자는 이번에는 그자의 혀를 잘라버리라고 명했다. 수추는 혀를 잘리었다. 장자의 부하들이 까마귀들에게 먹이려고 높은 감나무 가지에다 그 혀를 매달아두었다. 나무에 앉는 까마귀마다 수백번씩 그 혀를 쪼았으나 너무도 견고해서 먹질 못했고, 혀는 사람들이 지켜보는 허공에서 싱싱한 선홍의 빛깔로 펄떡이며 살아 있었다.
수추는 목구멍으로 노래를 불렀다. 그의 안으로 꽉 잠긴 노랫소리가 또 저자 바닥에 깊이깊이 스며들었고, 사람들은 몰래몰래 그것을 따라 불러 꿈만이 떠도는 밤에도 잠꼬대의 노랫소리가 울려퍼졌다.
장자는 끝내 수추의 목을 자르라고 명했다. 수추의 목이 잘려 저자의 장대 위에 드높이 효수되었다. 장대 위에 얹힌 얼굴은 이 세상에서 아무도 만나보지 못했던 행복한 자의 얼굴이었다. 사람들은 더욱 더 수추가 남긴 노래들을 불렀다. 장자는 드디어 수추에 대한 기억의 잔재를 모두 없애버리라고 명했다. 다리는 허물어지고, 오동나무이 밑동은 뽑혀지고, 나는 강 건너로 쫓겨나게 되었다. 그러나 장터 사람들의 소문에 의하면 수추의 노래는 여전히 불려지고 있으니 그가 죽었다는 것은 새빨간 거짓말이라는 얘기였다.
나는 아직도 수추의 팔딱이는 혓바닥을 품에 지니고서, 새로운 새벽이 밝을 때마다 강변으로 마중을 나가는 것이었다.
--- p.152
<몰개월의 새> 중에서
나는 승선해서 손수건에 싼 것을 풀어보았다. 플라스틱으로 조잡하게 만든 오뚜기 한쌍이었다. 그 무렵에는 아직 어렸던 모양이라, 나는 그것을 남지나해 속에 던져버렸다. 그리고 작전에 나가서 비로소 인생에는 유치한 일이 없다는 것을 알았다. 서울역에서 두 연인들이 헤어지는 장면을 내가 깊은 연민을 가지고 소중히 간직하던 것과 마찬가지로, 미자는 우리들 모두를 제 것으로 간직한 것이다. 몰개월 여자들이 달마다 연출하던 이별의 연극은, 살아가는 게 얼마나 소중한가를 아는 자들의 자기표현임을 내가 눈치챈 것은 훨씬 뒤의 일이다. 그것은 나뿐만 아니라, 몰개월을 거쳐 먼 나라의 전장에서 죽어간 모든 병사들이 알고 있었던 일이다.
--- p.192
<몰개월의 새> 중에서
나는 승선해서 손수건에 싼 것을 풀어보았다. 플라스틱으로 조잡하게 만든 오뚜기 한쌍이었다. 그 무렵에는 아직 어렸던 모양이라, 나는 그것을 남지나해 속에 던져버렸다. 그리고 작전에 나가서 비로소 인생에는 유치한 일이 없다는 것을 알았다. 서울역에서 두 연인들이 헤어지는 장면을 내가 깊은 연민을 가지고 소중히 간직하던 것과 마찬가지로, 미자는 우리들 모두를 제 것으로 간직한 것이다. 몰개월 여자들이 달마다 연출하던 이별의 연극은, 살아가는 게 얼마나 소중한가를 아는 자들의 자기표현임을 내가 눈치챈 것은 훨씬 뒤의 일이다. 그것은 나뿐만 아니라, 몰개월을 거쳐 먼 나라의 전장에서 죽어간 모든 병사들이 알고 있었던 일이다.
--- p.19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