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낙타는 십리 밖 물 냄새를 맡는다

낙타는 십리 밖 물 냄새를 맡는다

허만하 | | 2000년 10월 31일   저자/출판사 더보기/감추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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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품목정보
발행일 2000년 10월 31일
쪽수, 무게, 크기 269쪽 | 399g | 148*210*20mm
ISBN13 9788981333829
ISBN10 89813338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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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경은 연약하다. 풍경은 순간으로만 있다. 그것은 덧없이 사라진다. 시시각각 빛은 변화하는 것이다. 풍경은 언제나 너무나 단명하다. 그리고 그것은 유일무이한 것이다. 그러한 의미에서 풍격이란 나의 세계(또는 지각)의 모습이 아니라 내 자신의 모습이다. 산다는 것은 풍경을 가진다는 말에 지나지 않는다. 죽음에 대한 공포는 바로 풍경을 잃어버리는 공포다. 캄캄한 밤에 대한 공포도 마찬가지다. ... 풍경이란 언제나 그 앞에서 일인칭 단수 소유격이 붙어 있는 나의 풍경으로만 있는 것이다. 그래서 풍경은 언제나 살아서 숨쉬는 것이다. 풍경은 언제나 피를 흘리고 있는 것이다. 하나의 풍경이 나의 체험이 되고 나의 체험이 하나의 풍경이 되는 그런 일순...
--- p.30-31
리치먼드에 도착한 지 열흘째 되던 날 나는 세인트 존스 교회를 찾아보았다. 이 교회는 나지막한 언덕바지에 자리잡고 있었다. 주위는 모두 주택들이나 더러 흑인들이 살고 있는 듯했다. 이 교회는 패트릭 헨리의 '자유 아니면 죽음을 달라'라는 유명한 연설이 있었던 바로 그 역사적 장소로 유명하다. 1741년에 지어졌다는 건물은 조그마한 편이며 흰 빛깔이었다. 내가 이 교회를 찾은 것은 이 교회 묘지에 에드거 앨런 포 어머니의 무덤이 있다는 이야기를 들었기 때문이었다. 그러한 사실은 리치먼드의 관광 안내서에도 기록되어 있지 않았다. 이러한 이야기를 나에게 가르쳐준 이는 이곳 병원에서 정신과 의사로 근무하고 있는 김진택 선생이었다. 그와는 구면이었다. 오랜만의 재회를 우리는 이 교회 묘지 안에 있는 포의 어머니의 무덤을 함께 찾아보는 일로 기념하게 되었다.

떠돌이 배우로서 흥행차 흘러왔던 리치먼드에서 두 살난 포를 남긴 채 스물네 살의 나이로 이 세상을 떠났던 엘리자베드 아놀드 포. 그녀는 이미 두 해전에 같은 유랑 배우였던 남편 데이비드 포를 떠나 보냈다. 에드거가 태어난 1909년 말 실종된 남편은 그대로 행방불명이 되었던 것이다. 그 불행한 여배우의 무덤은 쉽게 찾을 수 있었다. 묘비가 유난히 컸던 것이다. 그 석비는 나의 키보다도 약간 더 높았다.
---pp.133~134
나무의 또 다른 상징은 벼랑 같은 그 수직성에 있다는 것이 내 생각이다. 송진 냄새가 자욱히 서려 있는 수령 5백년을 넘는 아름드리 전나무 숲 속에서 그런 생각을 하지 않을 수 없었다. 지난 여름 다시 찾아본 오대산 월정사에서의 일이다. 수직성이란 평면에 굴복하지 않고 일어서는 실존이란 말을 했던 철학자는 메를로-퐁티였었지.
--- p.7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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