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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 북소리

먼 북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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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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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행일 1997년 01월 31일
쪽수, 무게, 크기 436쪽 | 크기확인중
ISBN13 9788946101753
ISBN10 894610175X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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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ES24 리뷰 YES24 리뷰 보이기/감추기

--- 99/9/14 이상구(flypaper@yes24.com)
'먼 북소리'....하면 아주 인상깊게 떠오르는 구절이 하나 있다. 알리바이를 확보하기 위해 인용하면,

'.....왜 우리는 성공하기 위해 그토록 서두르며, 무모한 계획을 세우는가? 어떤이가 그의 동료들과 보조를 맞추지 않는다면, 아마 그는 다른 곳에서 들려 오는 북소리에 귀를 기울이고 있기 때문일게다. 그 음율이 어떻든, 또 얼마나 멀리 떨어져 있든, 그가 듣고 있는 그 소리에 맞춰 걸어가도록 가만히 놔둬라. 사과 나무나 떡갈 나무만큼이나 그가 빨리 여물어 가야한다는 건 그리 중요한 일이 아니다. 그의 계절은 아직 봄인데도, 그를 여름으로 넘겨야만 한다는 것인가? .....'

소로우의 초월주의적 명상록인 월든(Walden)의 결말 부분인데, 어떤 이유로 번역본을 가지고 있지 않아, 적확한 번역을 옮기지 못하고 대충 원문에서 의미만을 따 보았다.

미국적 실용주의와 자수성가형 인간을 양성키 위한 모범답안 정도로, 현대에도 끊임없이 재해석되고, 또한 그에 걸맞게 항상 새롭게 읽히고 있는 이 텍스트의 종결부에 이르러, 소로우는 누구든지 자기 북소리에 맞춰 스스럼없이 걸어가야 함을 강조하고 있다. 한 때 시위대열의 선두에서 일사불란한 대오를 유지시켜 주던 농악대의 북소리에 비유되어 자뭇 심각하게 왜곡된 채 해석되기도 했던 이 북소리 메타포는, 그 순순한 뜻에서는 '자신의 나아갈 바를 자기 페이스대로 성실하고 진지하게 견인해야 한다'는 의미 정도로 바라 볼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자기 북소리에 맞춰 걷는다'는 것이 말처럼 그리 쉬운 것은 아니다. 집단적 제의로서 들려 오던 그 시위대열의 북소리...그 북소리를 무심코 외면할 수 만은 없었던 아픈 기억을 떠올리지 않더라도, 걷든지 뛰든지 그 모든 행동 이전에, 자기 자신의 방향성을 지시해 줄 북소리는 찾기조차 힘든 것일지도 모른다. 도무지 들리지 않아서 놓치는 경우도 있고, 또한 너무 먼 곳에서 단지 미명처럼 존재함으로 인해 다가 서지 못하는 경우도 있다. 심하면, 듣고도 뭐가 뭔지 몰라서 지나쳐 버리거나 혹은 박제된 동물마냥 멍하니 듣다가 그냥 놓쳐 버리는 경우도 있다. 그래서 그 북소리란 개인이라는 한계상황 내에서 존재할 수 밖에 없고, 그 북소리를 듣는다는 자체가 인생의 전환점이라는 비유적인 의미상, 지극히 머나먼 곳에 위치할 수 밖에 없다. 말할 필요도 없지만, 우리 모두는 그 북소리를 저마다의 방식으로 찾고 있으며, 지금도 어느 한 곳에선 그 아득한 미명의 북소리를 쫓아 머나먼 고행길을 마다하지 않는 숱한 사람들이 존재한다. 하루키는 그 먼 북소리를 1986년 가을에 듣는다. 재수가 좋았다면 좋았다고도 말할 수 있는 것이다.

1989년 가을까지 꼬박 3년 동안 지속되어진 '먼 북소리'에 이끌린 이 유럽 체류 기간 동안, 하루키는 <노르웨이의 숲>과 <댄스 댄스 댄스>라는 2권의 장편 소설을 쓰고, 몇권의 번역서 및 단편집 , 그리고 유럽의 스케치를 모았다는 여행기이자 에세이인 이 책 <먼 북소리>를 탈고하게 된다.

하루키 자신도 머리말에서 밝히고 있듯이, 그는 나이 40이 되기 전에 '정말 알알하게 내 온몸으로 느낄 수 있는 생의 시간을 자신의 손으로 쥐고 싶었다'고 한다. 하지만 일본이라는 한계상황 하에선, '일상에 얽매여 있는 사이에 긴장감도 없이 질질 나이를 먹어버릴 것만 같은 기분이 들어' 무엇인가를 잃지 않고 또한 그 어떤 것을 찾기 위해 머나먼 여행길을 스스로 자처했다고 한다. 그러한 이유로 이 책에는 뭔가 절실하고 팽팽한 긴장감 같은 것이 감돈다. 숙명적인 운명의 그림자 같은 것도 엿비친다. 자칫 무거워질 수도 있는 포맷이다. 하지만, 그 상황하에서도 생생한 표현력 자체는 살아 숨쉰다. 귀염성 있는 표현도 잊지 않고 삽입되어 있다. 칼라 사진도 곁들여 있다. 장기인 동물 메타포도 아주 많다. 게다가 두껍다. 그러면서도 지루하지 않다. 한마디로 수작이다. 당연한 일이겠지만, 95년 말 군대 말년에 읽었던 느낌과는 판이하게 다를 수 밖에 없다. 고로 이번 독서를 계기로 난 무라카미 하루키 비소설 부분 순위 차트를 새롭게 조정한다.

'이번 주 무라카미 라디오...비소설 부분 1위는...' 둥둥둥둥둥둥....'네...북소리만 듣고도 벌써부터 환호하시는 팬들이 계시는군요!'. '1위는....둥둥둥둥둥둥....1위는 군에서 제대하자마자 그 기세를 몰아 5계단 초고속 상승한....<먼 북소리>입니다!!!!' 칼라시트 조각이 날리고 팡파레가 울려 퍼진다. '아사히도 트리오'의 진심어린 축하의 꽃다발, 웃고 있지만 분을 참을 수 없다는듯 표정이 어중간한 '밤의 거미 원숭이', 아랫입술을 닥다무며 반짝 스타의 꿈을 접는 '슬픈 외국어', 무슨 영문인지 몰라 하는 'A to Z', 열심히 하겠다고 다짐하는 '변경/근경', 하염없이 부러운 듯 쳐다보는 '언더그라운드'....사뭇 감동적인 광경입니다. 그럼...이번 주 순서는 <먼 북소리>의 1위곡 '터키의 옛노래'를 들으면서 이만 마치겠습니다. '....먼 북소리에 이끌려 나는 긴 여행을 떠났다. 낡은 코트를 몸에 걸치고, 모든 것을 뒤에 남기고'....그리고 페이드 아웃.....

(썰렁해서 죄송합니다) 다시 세상 속으로.

이 책은 여행기로서의 역할 뿐만 아니라 무라카미 하루키 읽기에 대한 '비하인드 스토리 북'으로서의 미덕 또한 충실히 수행한다. 오랫동안 아슬아슬하게 옆에서 지켜 보았던 절친한 친구 한쌍이 어느날... '우리 결혼하기로 했어'라며 입가에 미소를 살폿 얹고 웃는다. 그리고 비하인드 스토리를 말하기 시작한다. 난...그저 한 손으로 턱을 괸채 고개를 5도 가량 왼쪽으로 젓히구 푸근하게 듣기만 하면 된다. '으음....그랬었구나...', '정말 그런 일이 있었단 말이지?', '힘들었겠구나..하지만 참 잘 극복했어...' 등등...난 그냥 땅콩이나 만지작 거리면서 가만히 듣고 있으면 된다. 그러면 하나씩 하나씩 궁금증이 풀리기 시작한다. 입가의 미소는 눈으로 옮아 간다.

<노르웨이의 숲>에서 장면마다 왜 그렇게 비가 많이 내렸던가 하는 이유를 알게 된다. <댄스 댄스 댄스>에서 '나'는 왜 하와이를 찾아 떠났는지를 알게 되고, '나'가 호텔 로비에서 유미요시를 기다리며 읽던 잭런던의 자서전은 역시 <마틴에덴> 이였구나를 확인하게 된다. 레이먼드 카버의 단편 <깃털>에 나오는 반은 야생화된 공작 'Joey'는 그리스 로도스 섬의 야생공작이 무대가 되었음을 알게 되고, 움베르토 에코의 에세이 <연어와 여행하는 방법>에서 소개되었던 엉터리 이탈리아 만물상에 대한 디테일을 다시 한번, 더욱 더 생생한 울림으로 확인하게 된다. 이 역시 당연한 생각이겠지만, 그런 비하인드 스토리는 책읽는 잔재미를 한층 더 산뜻하게 만들어 준다. 더욱 더 강력하게 매료시킨다. 이제서야 깨닫는다. 엘리베이터에서 만난 옆집 여고생이 HOT의 라이브 사진집을 왜 그렇게 소중하게 안고 있었는지, 집 근처에 살던 사촌 동생이 왜 그렇게 컴퓨터 하드웨어의 업그레이드에 집착하게 되었는지, 아파트 지하 주차장에 세워진 파이어 버드 디스플레이 패널 상단부에 왜 똑같은 모양의 미니카가 접착제로 붙어 있었는지에 대한 궁금증을 어렴풋이 깨닫는다. 그렇구나..하고 깨닫는다. 문화란...중.독.성.이 있는 것이였구나...하고 새삼스레 깨닫는다.

책 속으로 책속으로 보이기/감추기

이탈리아 텔레비젼 프로그램중에서 가장 유쾌한것은 뭐니뭐니해도 일기예보다. 우선 가장 재미있는 점은 일기예보를 하는 사람의 제스쳐가 굉장하다는것이다. 날씨가 좋으면 입이 찢어져라 벙긋벙긋 웃고 신나하는 표정인데 비가 오거나 춥거나 하면 마치 자신의 실책을 여러분에게 폐를 끼치고 있다는 식의 어두운 얼굴로 아나운서를 한다. 목소리도 착 가라앉아 있다. 이 가을 꼬박 일주일 동안 비가 내렸을때는 목이라도 매달지 않을까 걱정이 될만큼 심각하게 낙담하고 있었다. 한손을 천장을 향하여 들고 눈을 감고 고개를 저으며 ' 여러분 이 비구름은 말입니다 ...' 하고 예보를 하는 장면을 보고 잇노라면 그래봐야 겨우 날씨가지고 뭘 이라면서 태평하게 있을 수 없을 듯한 기분이 든다.
--- p.272
사우러 십이일, 일요일. 팜 선데이, 우사코 우비 씨 부부와 나와 나의 아내 네 명이서 메타 마을로 놀러 간다. 메타 마을은 로마에서 자동차로 북서쪽을 향해 달려 두세 시간 정도 거리에 있는 아주 조그만 마을이다. 꽤 상세한 지도에도 실려 있지 않다. 가도에서 멀리 떨어진 산꼭대기에 있기 때문에, 일부러 찾아가는 여행자는 전혀 없다. 인구는 천명 정도. 마을 한가운데에 바르가 있어, 여기에서 간단한 식료품 같은 것을 팔고 있다. 그 외에 마을에 가게라고는 한 군데도 없다. 촌민의 직업은 전부 농부. 필요한 것은 모두 스스로 만드니까, 뭔가를 살 필요가 거의 없는 것이다. 그런 마을이다. 왜 일부러 그런 마을을 찾아가는가 하면, 거기가 우비 씨가 태어난 고향이기 때문이다.
--- p.191
맨 처음 존재했던 자신의 사고에서 무언가를 '제거'하고, 또 거기에 무언가를 '삽입'하고, '복사'하고, '이동'시켜, '새롭게 보존할'수가 있다. 그런 작업을 몇 번이고 거듭하는 사이에, 자신이란 인간의 사고나 혹은 존재 그 자체가 그 얼마나 일시적인 것이며 과도기적인 것인지를 깨달을 수 있다. 나에게는 지금도 저 먼 먼 북소리가 들린다. 고즈넉한 오후에 귀를 기울이면, 그 울림을 귀로 느낄 수 있다. 까닭없이 어딘가로 여행을 떠나고 싶어지는 일도 있다.

하지만 나는 문득 이런 식으로도 생각한다. 지금 여기에 있는 과도기적이며 일시적인 나 그 자체가, 내 존재의 영위 그 자체가, 말하자면 여행이란 행위가 아닌가, 하고. 그리하여 나는 어디든 갈 수 있고, 아무 데도 갈 수 없는 것이다.
--- p.432
마흔살이 되려 하고 있었다는 것.그것이 나를 긴 여행으로 몰아낸 이유중의 하나이다. 하지만 그것뿐만은 아니다....몇가지 실제적인 이유가 있고, 몇가지 메타포적인 이유가 있다. 하지만 지금은 그런 것들에 대해서 언급하고 싶지 않다. 지금으로선 그런 것들이 이미 아무래도 상관없는 일이 되어버렸기 때문이다....어느 날 문득,나는 도무지 긴 여행을 떠나지 않고서는 견딜 수가 없었다.
--- p.16
누군가 우리를 그림으로 그려주지 않으려나, 하고 생각한다. 고향에서 멀리 멀리 떨어져 있는 서른 여덟살의 작가와 그의 아내. 테이블 위에는 맥주. 그저 그런 인생. 그리고 때로는 오후의 양지 바른 쪽.
--- p.26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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