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저하게 자기를 부정하라!
예술은 자기부정을 통해 창조된다.
음악을 위해서라면 학대에 가까울만큼 자신을 몰아세워야한다...
- 에리크 사티
--- p. 본문중에서
'자신을 그렇게 비하하지 마셍. 당신은 무례하지 않고 예의바른 사람이에요. 그리고 뻔뻔하다기보다는 오히려 수줍음이 많은 사람이에요. 물론 때로는 냉소적이기도 하지만, 결국 사람들은 당신의 따뜻한 인품과 익살에 미소를 짓게 되죠. 성마르고 덜렁대는 면이 전혀 없다고는 할 수 없지만, 당신을 만나면 언제나 느끼는 건 느긋한 너그러움이에요. 화창한 일요일 오후, 양지바른 곳에서 사이좋은 고양이와 함께 한가롭게 일광욕을 즐기고 있는 듯한 느낌, 당신은 바로 그런 느낌을 주는 사람이라구요.'
--- p.459
에라크 사티가 59년의 생애를 통해 고집스러울 만큼 고수한 것은 두가지다. 첫째는 평생동안 줄곧 가난했다는 것 젊은 시절의 사티가 '무슈르 포브르'(가난뱅이씨)라는 별명으로 불린 것은 이 책에서도 말했지만, ~ 그는 죽을때까지 가난했다.
--- p.539
만년의 사티는 단순히 유명한 게 아니라 묘하게 신경 쓰이는 존재가 아니었을까. 작곡가로서는 동시대의 누구보다도 앞서 나가는 선구적 존재였고, 생전부터 이야기나 전설이 잘 어울리는 기이한 인물이기도 했다.
하지만 사후에는 이상하게도 급속히 잊혀졌다. 아무도 사티에 대해 언급하지 않았고, 아무도 사티의 곡을 연주하려 하지 않았다. 그리고 사티는 세기말의 파리에 피어난 열매 없는 꽃 같은 이단의 작곡가로 경시되고, 음악사의 한귀퉁이로 밀려나버렸다.
세월이 흘렀다. 묻혀 있던 사티를 재발견한 것은 영화였다. 1963년, 루이 말 감독은 <도깨비불>에서 영화 음악으로 사티의 피아노곡을 사용했다. 영화가 개봉되자 전세계가 깜짝 놀랐다.
'정신이 아찔해질 만큼 아름다운 이 음악은 도대체 누가 작곡한 거지? 뭐? 사티라고? 도대체 그게 누구야?'
이리하여 사티의 이름은 38년 만에 되살아났다. 모래더미 속에서 발굴된 고대 조각처럼.
--- p.
다양한 이미지, 분절과 방출, 그리고 정착. 이 방법론은 결코 음악에만 한정되는 것은 아니지 않을까? 정착 방법이 우연히 음표와 악보였기 때문에 '음악'이 되었을 뿐, 그 수단이 만약 물감과 캔버스였다면 '회화'가 되었을 테고, 정과 대리석이었다면 '조각'이 되었을 테고, 펜과 원고지였다면 '문학'이 되지 않았을까.
--- p.500
'검은 고양이' 카바레 무대에서는 다양한 공연이 펼쳐졌다. 시인은 자작시를 낭송하고, 가수는 세상을 풍자하는 샹송을 불렀다. 주인 로드루프 살리스의 즉흥 만담도 인기있는 레퍼토리 가운데 하나였다. 그는 오만 불손한 동작으로 관객을 사로잡고, 정치인이나 은행가들을 철저히 조롱하여 박수갈채를 받았다. 하지만 모든 공연 중에서 가장 인기를 모은 것은 '테아트르 동브르', 즉 그림자 연극이었다. 노동자에서부터 신분을 감추고 찾아오는 불랑제 장군이나 외국 귀족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사람들이 저녁마다 그림자 연극을 보러 몰려들었다.
그림자 연극의 주역들은 가위로 오려낸 판지나 금속판이나 유리판에 불과했다. 하지만 뒤쪽에서 빛을 비추면 그것들을 당장에 생명이 불어넣어진 인형처럼 살아났다. 그리고 무대 위에 설치된 세로 1미터 50센티미터, 가로 1미터 20센티미터의 스크린에 투사되면, 당장에 그림자 황제나 괴물이나 공주나 악마가 되어 날아다니곤 했다.
스크린 뒤쪽에는 악단이 대기하고 있었다. 상연 종목에 따라서는 스무 명으로 구성된 합창단이 추가되기도 했다. 그림자 연극이 진행되는 동안 진짜 배우가 등장하여, 스크린에 비친 그림자들과 공연하는 경우도 있었다.
조명 기구와 기술을 구사한 빛과 그림자의 움직임에는 리얼리티가 있었다. 때로는 극적으로, 때로는 암시적으로 연출되어, 관객들을 몽환의 왕국으로 끌어들였다. 계산된 음향과 색채 효과, 장면에 걸맞게 분위기를 돋우는 반주 음악, 그리고 배경과 인간의 몽타주 등 후세의 영화인들이 구사하게 되는 연출 기법은 거의 다 그림자 연극이 이미 선수를 치고 있었다.
--- p.278-27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