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쟁의 원인이 인간의 본성에 있다면 항구적인 평화 구축은 요원하다. 야심적이고 이기적인 인간의 본성이나, 자국의 이익만을 추구하는 국가의 속성은 결코 바꿀 수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p.18
인류는 ‘평화’를 누리기 위하여 다양한 노력을 기울여 왔다. 이러한 노력은 크게 두 가지 담론으로 구분된다. 첫째, 항구적 평화만이 최고의 선(善)이며 이를 인간의 이성으로 달성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법과 규범을 제정하고 국제기구를 만들며 외교적 활동과 경제제제 등을 통해 항구적 평화를 구축하려는 활동이 여기에 해당한다. 둘째, 평화를 위해 전쟁에 대비하는 것이 보다 현실적이며 효과적이라는 주장이다. 확실한 전쟁대비책을 강구하여 상대에게 승리할 가능성이 없음을 인식시킴으로써 전쟁 자체를 방지하거나, 혹은 자신에게 ‘보다 유리한 평화’를 구축하기 위하여 전쟁을 적극적 수단으로 활용하는 논리이다. ---p.18-19
기술력의 발전이 전쟁 양상을 결정하고 나아가 기술력의 우위가 전쟁의 승패를 가름할 것이라는 기대와는 달리, 우리가 목도하는 21세기 현대의 전쟁은 사뭇 다른 모습을 보이고 있다. 미국은 2001년과 2003년에 각각 시작된 아프가니스탄전쟁과 이라크전쟁에서 압도적인 기술력과 화력의 우세를 바탕으로 탈레반 정권과 사담 후세인 정권을 비교적 쉽게 무너뜨리는데 성공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서 정체가 모호한 반군세력들하고의 전쟁을 통해 종전 이후 오히려 더 많은 희생을 치르고 있다. 전쟁의 양상이 변화하고 있는 것이다. ---p.24-25
클라우제비츠는 전쟁을 ‘불확실성’의 영역으로 간주했다. 전쟁을 수행하는 과정에서 예상치 않았던 많은 ‘마찰(friction)’과 ‘우연(chance)’이 작용하여 최초 계획과 달리 전쟁을 엉뚱한 곳으로 끌고 갈 수 있기 때문이다. … 결국 전쟁은 국가가 의도한 대로 수행되는 것은 아니다. 애초에 정치적 목적이 부적절하게 설정되어 전쟁이 지연될 수도 있고, 때로는 군사전략이 제대로 이행되지 않아 쉽게 끝낼 수 있었던 전쟁을 망칠 수도 있다. 혹은 예상치 못하게 제3국이 개입하거나 상대국가의 동맹국이 동맹조약을 발효하여 개입함으로써 전쟁은 장기화되고 그 규모 및 범위가 커질 수 있다. ---p.93
오늘날 국제관계를 둘러싼 환경을 돌이켜 볼 때 앞으로의 전쟁은 ‘언제, 어떻게 시작할 것인가’보다 ‘언제, 어떻게 끝낼 것인가’의 문제가 더욱 중요해질 것으로 예상한다. 사실상 제2차 세계대전 이전까지는 전쟁을 어떻게 치르고 어떻게 끝내는지 개략적으로 정해진 공식이 있었다. 교전 당사자들은 특정 영토의 영유권 문제 같은 명확한 목표를 둘러싸고 전쟁을 하였으며, 한쪽이 굴복하고 다른 쪽이 원하는 지역을 장악할 때까지 싸웠고, 전쟁이 끝나면 승자와 패자가 분명하게 갈렸다. ---p.140
전쟁 종결의 측면에서 볼 때 현재 또는 향후의 국제환경은 타 국가에 대한 정복 또는 무조건 항복을 받아내기가 어렵고, 완전한 군사적 승리만을 강조할 경우 전쟁목표를 달성하기가 어렵다는 시대적 특성을 지니고 있다. 결과적으로 이러한 현실은 전쟁계획을 구상할 경우 완전한 군사적 승리에만 집착하지 않고 전장에서 소기의 승리를 바탕으로 협상을 통해 종전을 이끌어내는 ‘전쟁 종결전략’의 중요성을 새삼 일깨워주고 있다. 특히 많은 전쟁의 경우 정책결정자들은 적군이 완전히 소멸하기 이전 또는 더 이상 전쟁 수행목표 달성이 불가능한 시점에서 전쟁을 끝내야만 하는 상황에 직면할 수 있음을 염두에 두고, 각 상황(시나리오)별로 어떻게 전쟁을 종결할 것인가에 대한 구체적인 종결상태(end state)와 종결계획(war termination plan)을 사전에 수립해 둘 필요가 있다. ---p.141
제2차 세계대전 이후 핵시대가 개막하면서 강대국들은 상호 공멸을 가져올 핵전쟁을 막기 위해 스스로 전쟁을 제한하였을 뿐만 아니라 전쟁의 확대 방지를 위해 주의를 기울였다. 그 결과 현대전은 제한전쟁 양상을 보이게 되었다. 또한 탈냉전시대의 전쟁은 새로운 형태의 위협과 함께 게릴라전, 테러리즘, 민사작전, 심리전 같은 비정규전 양상과 정보혁명에 의하여 등장한 NCW, EBO, 사이버전, 비선형전, 마비전, 동시·병렬적 통합작전 같은 ‘정보전’ 양상으로 대별되었다. 근·현대의 전쟁에서 약소국이 첨단무기체계로 무장한 강대국과의 전쟁에서 승산이 없다고 판단할 경우 비정규전으로 대응했으며, 이 경우 사회적 차원의 전략이 무엇보다 중요하다는 점이 입증되었다. 나폴레옹 군대에 대항한 에스파냐의 게릴라전과 러시아 초토화전략, 장제스의 군대와 대항한 마오쩌뚱의 인민전쟁전략, 미국을 상대로 싸운 북베트남의 항불투쟁(降不鬪爭) 등이 그 예이다. 또한 정보화시대에도 전략·전술의 본질은 변하지 않았고, 다만 정보기술을 빌려 전략을 보다 효율적으로 수행하게 되었다. 따라서 현대전을 수행함에 있어서도 정보화된 시스템을 발전시키는 노력과 더불어 그것을 어떻게 운용할 것인가를 더욱 고민해야 할 것이다. ---p.229-230
현재와 미래 핵시대에 군사력 운용의 주요 이슈는 ‘국가이익을 달성하면서도 그에 수반하는 위험 발생을 최소화하기 위해서 군사력을 어떻게 사용할 것인가?’이다. 군사력을 지나치게 선별적이고 제한적으로 운용할 경우에는 주도권을 상실하게 되어 분쟁은 장기화하고 지원요구가 증가한다. 반면에 핵 또는 비핵군사력을 무분별하게 사용한다면 전면(핵)전쟁의 발발 가능성이 높아진다. 제한전쟁은 이러한 양극단 사이에서 국가목적을 달성하면서도 도덕적이며 정당한 방법으로 전쟁을 통제할 수 있는 균형점을 발견하는 것이 핵심이다. ---p.298
특히 현대의 4세대 전쟁은 재래식전쟁으로는 패배시킬 수 없는 거대한 적에 대항하여 새로운 방식으로 전쟁을 수행하는 것으로써 중국의 마오쩌둥이 이러한 형태의 전쟁을 시작했다. 그 이후 성공의 교훈을 이어받은 베트남의 보응우옌잡, 쿠바의 체 게바라가 이를 적용하여 더욱 정교한 전쟁방식으로 발전시켰으며, 니카라과의 산디니스타, 1차 인티파다, 아프가니스탄과 이라크, 알카에다 네트워크들은 4세대 전쟁의 전형을 보여주고 있다.---p.312
4세대 전쟁은 정치적 우세를 적절히 사용하여 거대한 경제력과 군사력을 패퇴시키는 진화된 형태의 분란전이다. 4세대 전쟁은 이전 세대의 전쟁과는 다르게 적의 군대를 패배시킴으로써 승리하려고 하지 않는 대신, 네트워크를 통해 적의 정책결정자들의 정치적 의지를 직접적으로 파괴하기 위한 공격을 한다. 4세대 전쟁은 몇 달이나 몇 년이 아니라 수십 년이 소요되는 장기간의 전쟁이다.
---p.3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