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전통가족이 지닌 혈연적 수직 구조라는 본질은 근대화 이후에도 변화하지 않고 있다. 다만 농촌 공동체에서의 상속물이 었던 토지라는 생산수단이 교육이라는 생활수단으로 바뀌었을 뿐이다 한국의 중산층 가정에 일반화된, 거의 광적인 교육열을 ㄴ바로 이런 가족주의의 산물이라고 할 수 있다. 이런 폐쇄적인 집단으로서의 가족에 대해서 소설가 앙드레 지드는 '가족이라는 것, 나는 너를 증오해!'([지상의 양식])라고 일갈한 바 있다.
--- 본문 중에서
우리가 지금 목격하고 있고, 다가오는 세기에 완성해야 할 혁명은 개인주의 혁명이다. 그 혁명은 조용하지만 근본적인 혁명일 것이다. 이 혁명이 만들어내고 있는 개인주의는 일상적 삶의 체계적 개성화(또는 프라이버시화)를 유연하고 느슨한 사회화와 묶는 새로운 민주주의를 창출할 것이다. 그것은 풍속을 포함한 문화 전반의 소포트화를 동반하는, 쾌락주의적이고 너그러운 새로운 자본주의와 어울린다. 그 혁명의 주체는 전체가 아니라 개인이고, 수동적은 붙박이들이 아니라 능동적인 떠돌이들일 것이다.
--- 본문 중에서
사상의 자유는 민주주의의 중요한 심리적 터전인 관용과 밀접한 관련을 맺고 있다. '위대한 반대자(the Great Dissenter)'로 불렸던 미국 연방 대법원 판사 올리버 웬델 홈즈(Oliver Wendell Holmes)가 지적했듯, 사상의 자유를 보장한다는 것은 우리가 동의하는 사상의 자유를 보장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증오하는 사상의 자유을 보장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지금까지도 '준법서약서'의 형태로 남아 있는 사상전향제도는 양심 및 사상의 자유와 정면으로 충돌하는 것이다.
--- 본문 중에서
동성애자 해방 운동이 새롭게 힘을 얻은 것은 1960년대 말이다. 1969년 6월 28일 그리니치 빌리지의 동성애자 전용 술집 스고, 몇 주 후에 뉴욕의 게이들과 레즈비언들은 '게이 해방전선'이라는 단체를 조직해 힘을 통한 동성애자 해방을 선언했다. 1990년대 초 미국과 영국에서는 '퀴어 네이션'과 '분노!'라는 동성애자 단체가 각각 만들어졌고, 1994년에는 20여만명이 '런던 동성애자 긍지 축제'에 참여했다. 동성애자들의 축제 시위는 그 이후 도시를 바꿔가며 이어졌다. 지난 세기의 후반 50년 동안 이밖에도 미국의 '마타신 회'(1950)와 '빌리티스의 딸들'(1955), 유럽의 '문화 및 오락 센터'(1996) 등 수많은 동성애자 조직이 생겨났고, 크고 작은 시위가 조직되었다.
그러나 아직까지도 세계 대부분의 나라에서 동성애자들은 떳떳하지 못하다. 동성끼리 성행위만이 아니라 공공 장소에서의 입맞춤까지 범죄로 규정하고 있는 나라들이 수두룩하다. 동성끼리의 결혼은 아직도 대부분의 나라에서 인정되지 않고 있다. 유럽이나 미국에서조차 게이 파티는 그 '난잡함'을 이유로 흔히 경찰의 단속 대상이 된다. 고용이나 사회 보장에서 동성애자들은 커다란 차별을 받고 있다. 1967년 동성애 금지법을 폐지한 영국에서도 동성애자들은 교사나 외교관이 될 수 없다. 언론들도 동성애에 대해서 대체로 부정적이다. 에이즈와 관련된 편견은 동성애자들에 대한 심리적ㆍ물리적 박해를 더 강화시켰다.
동성애적 성향이 생물학적인 것이든 사회적으로 습득된 것이든, 그것은 결국 개인들이 성적 취향일 뿐이다. 동성애는 합리적 이유로 형법의 제재를 받고 있는 '어린이 성애'(페도필리아)와는 전혀 다른 것이다. 민주주의의 본질적 구성 요소가 자유와 평등이라면, 그리고 그것의 심리적 기반이 너그러움이라면, 동성애자들에게 가해지고 있는 법적 차별과 관습적 편견은 부당한 것이다.
다른 취향에 대한 너그러움과 개인의 영역에 대한 불간섭이 한 사회의 에토스로 자리잡을 때, 동성애자들과 이성애자들은 서로를 무심하게 대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부부와 자녀로 구성되는 지금의 가족 제도가 견고히 남아 있는 한, 동성애자들의 소외와 차별이 완전히 사라지지는 않을 것 같다. 그것은 여성 해방과 마찬가지로 동성애자 해방도 가족의 미래와 밀접한 관련이 있음을 뜻한다.
--- 본문 중에서
'갈기갈기 터지고, 희희낙락하고, 야만적이고, 행보하고, 무분별하고, 기괴하고, 살아내기 어렵고, 해방적이고, 소름끼치고, 종교적이고, 세속적이고,.. 그것이 21세기일 것이다. '말하자면 이런 서로 모순된 진술들을 통해서 아탈리는 도망갈구멍을 미리 마련해 놓고 있는 것이다. 아니, 모든 시대가 그랬듯. 21세기도 틀림없이 모순의 시대일 것이다. 그리고 그 모순은 독자들이 대하고 있는 이책에도 어김없이 반영되었을 것이다.
--- 본문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