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부터 우리가 직시해야 할 것이 있습니다. 21세기부터 인류는 과거에 너무 많이 일해서 야기된 잉여 생산을 나누고 즐기는 문화의 시대로 접어들 것이라는 사실입니다. 더 많이 생산하겠다고 동물을 학대하고 환경까지 파괴하는 ‘부지런을 떠는 사고뭉치들’ 이 아니라, ‘게으른 낭만주의자들’ 이 더 필요한 세상이 되어 가는 것이지요. 웬만한 연예인이 고소득 전문직보다 돈을 많이 버는 시대이니, 성적표에 연연해서 자녀들을 너무 닦달하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 “날씨도 문화도 돈이다”에서(1장)
우리 기술은 이제 막 걸음마를 배우는 맹아 단계가 아닙니다. 거의 모든 것을 알고 있는데, 마지막 2%가 모자라서 고급 기술을 구사하지 못하는 상태입니다. 국산 자동차들도 그렇습니다. 잘 굴러가긴 하지만, 독일의 고급 자동차와 비교하면 아직 많이 초라합니다. 그런데 이 둘 사이에 많은 차이가 있나요? 갈 때 가고, 설 때 서고 하는 것을 빼면, 겨우 2% 정도의 차이밖에 없습니다. 하지만 가격은 두 배 이상 차이가 납니다.
2%의 기술 차이가 200%의 가격 차이를 만드는 것입니다. 그리고 상위 2%의 기술은 형이상학적인 연구로는 얻을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마지막 2%는 논문에 안 나오기 때문입니다. … 모자라는 2% 극복은 자신만의 힘으로, 그리고 스킨십으로만 가능합니다. 만져 보고, 두드려 보고, 조여 보고, 풀어 보며 수십 번 수백 번 고민과 의심을 반복하고 나서야 비로소 무릎을 탁 치는 깨달음이 주어집니다. 하이테크를 손으로 만져 봐서 자기 기술로 만드는 ‘하이터치’ 가 필요한 것입니다.
--- “2%의 기술 차이가 200%의 가격 차이를 만든다”에서(1장)
계산으로 얻어진 숫자는 정답입니다만, 그 정답의 의미를 다른 사람들에게 어떻게 알리냐에 따라 정답의 가치는 무척 달라집니다. 그리고 그런 가치를 설득하는 과정에서는 감성이 중요한 역할을 합니다. 국제 프로젝트를 함께 진행하는 엔지니어 중에는 감성이 퇴화된 사람들이 꽤 있습니다. 오랫동안 이공계에 종사한 탓에 생기는 일종의 직업병입니다. 감성 퇴화는 우리나라 과학계만의 문제는 아닌가 봅니다.
--- “정답보다 더 중요한 것은 전달력”에서(1장)
우리가 주변에서 가지고 노는 것들이 연구 주제가 되어야 정말 재미있어집니다. 공과대학에서 악기를 연구한다는 실험실은 안타깝게도 아직까지 들어보지 못했습니다. 앞선 로봇 기술로 골프 샷을 멋지게 날리는 로봇은 왜 선보이지 못하는 걸까요? 타이거 우즈를 초청해서, 우즈와 박인비가 한 조, 최경주와 로봇을 한 조로 하여 골프 경기를 치를 수는 없을까요?
이런 면에서 바하의 악보를 수학적으로 분석할 필요가 있고, 다빈치의 미술을 공학적으로 점검해 볼 가치가 있습니다. 이제는 전통적 공학 제품인 자동차는 흔하고, 가전제품은 넘치니까요. 언제까지 스마트폰으로 먹고 살 수 있을지 장담하기 어렵습니다. 특유의 카피 실력으로 언제든 거리를 좁힐 수 있다고 생각하면 영원히 머슴 신세를 벗어날 수 없습니다. 이제는 성숙의 시대와 노는 시대를 제대로 이해하고 준비해야 합니다. 물론 천박하게 놀아서는 안 되기에 많은 고민이 필요할 것입니다.
--- “놀이하는 인간이 성숙의 시대를 이끈다”에서(1장)
인간은 새가 되고 싶은 욕망이 있었지만, 새의 날갯짓에 너무 집착하는 바람에 비행의 본질을 보지 못했습니다. 새를 카피하되 꼭 그대로 하지 않았거나, 새의 날갯짓을 좀 더 자세히 보고 비행 거리와 몸무게 대비 날개 크기 등으로 나누어 면밀히 관찰해 봤더라면 비행기의 발명은 훨씬 빨랐을지도 모릅니다. 오히려 ‘새 때문에’ 한동안 날지 못한 것이지요. 이처럼 우리가 받은 어떤 힌트는 출발은 쉽게 해주지만, 후에는 우리가 더 발전하지 못하게 하는 문턱이나 덫으로 작용할 때가 많습니다. 힌트가 강박관념이나 고정관념이 되는 것이죠.
사실 항상 애를 먹이는 것은 전혀 다른 것이 아니라 아주 비슷한 것들입니다. 이런 고정관념들을 깨지 못해서 결국은 일정 수준까지만 가고 멈추어 버린 것들이 많습니다.
--- “생각의 점프를 막는 것들: 날개와 날갯짓”에서(2장)
인류 역사는 각성된 소수의 개인들이 화두를 던지고, 깨달은 민중이 그 뒤를 따르면서 계몽되어 온 역사입니다. 뜨거운 열에 녹았던 쇠가 굳을 때도 전체가 서서히 굳어지는 것이 아니라, 액체인 쇳물에서 작은 점 같은 ‘씨앗’ 이 생기기 시작합니다. 이 작은 고체 씨앗을 주변의 쇳물이 둘러싸고 커지면서 쇠가 굳어집니다. 창조적 소수가 사회 전체를 만들 수는 없지만, 최초의 동기는 제공하는 것이지요. 한국 현대사에서도 김주열, 전태열, 박종철, 이한열 같은 사람들이 사회 전체를 움직이지는 못했지만, 한 사회가 민주화하는 데 기폭제가 되었던 것처럼요. 이런 기폭제가 더욱 자유롭게 작용하려면 개개인에게 남과 다를 수 있는 자유를 인정해 줘야 합니다.
--- “개인주의는 이기주의가 아니다”에서(3장)
노벨상은 수상 10년 전부터 그 징후가 관측된다고 합니다. 영향력이 큰 논문을 발표하고, 인용지수가 올라가고, 관련 분야에서 유명한 상을 수상하다가 노벨상을 받게 된다는 것입니다. 가끔 돌발 상황도 생기지만, 노벨상의 권위를 유지하려면 너무나 당연한 수순인 것이지요. 그런데 이런 기준으로 볼 때, 국내에는 10년 내 수상이 가능한 후보자가 없으며, 외국에서 활동하는 한인 과학자를 포함하면 콜롬비아 대학의 김필립 교수가 거의 유일하다고 합니다.
--- “강남 스타일과 노벨상”에서(4장)
--- 본문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