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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품목정보
발행일 2015년 03월 05일
쪽수, 무게, 크기 232쪽 | 256g | 128*188*20mm
ISBN13 9788972885689
ISBN10 897288568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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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소개 (1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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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나이 스물세 살, 전 재산 9,820원. 어제 현금 인출기 앞에서 180원 때문에 절망했다. --- p.102

달마다 체중이 늘었다. 1킬로씩, 때론 2킬로씩. 44 사이즈의 날씬한 몸을 가졌던 나였는데. 이제는 라지 사이즈도 터질 것같이 꽉 끼었다. 호두가구가 망하고 집안이 어려워질수록 체지방이 쌓였다. 경제적 어려움과 체지방의 증가는 분명히 비례 관계가 있다. 뿐만 아니라 경제적 어려움과 고독감도 비례 관계가 있다. 빌어먹을 비례식이다. 나는 자주 허기졌다. 그 때문이다. 언젠가부터 폭식하는 습관이 생겼다. 폭식 후에는 더 큰 고독감이 밀려왔지만 당장의 고독 앞에서 무릎을 꿇을 수밖에 없었다. --- p.145

그랬던 엄마가 마트에 나가면서부터 달라졌다. 일이 끝나 집에 돌아오면 소파에 길게 몸을 늘어뜨리고 꼼짝하지 않았다. 바퀴벌레가 떼 지어 거실에서 리셉션을 벌여도 멍한 얼굴로 바라만 보겠지. 그러다 기운 없는 목소리로 바퀴벌레한테 물을 것이다.
바퀴벌레야, 내 인생은 왜 이런 거니? --- p.64

스포츠센터의 자동문을 통과하자 녹음된 인사말이 들린다. 어서 오십시오. 고객님! 천국에 오신 것처럼 편안하게 모시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주리는 자동문을 통과할 때마다 비꼬듯 말한다.
“우린 오늘도 천국 같은 데 온 거네.”
“우린 고객이 아니잖아.”
“맞다. 이제부터 지옥의 일을 시작하자.”
“이 정도면 꽤 괜찮은 지옥이야.”--- p.71

“엄마, 뭐 해. 날려버려!”
카트를 밀던 사람들과 엄마에게 핀잔을 주던 손님들이 동작을 멈추고 내 쪽으로 고개를 비튼다. 그런데 엄마만 나를 돌아보지 않는다. 화가 나면 폭풍우를 몰고 올 수도 있는 사람이 우리 엄마다. 당신은 이제 죽었어. 그런데 엄마는 왜 저러나.
“고객님, 정말 죄송합니다. 제가 일이 익숙지 않아서요. 오래 기다리게 해서 정말정말 죄송합니다…….”
“똑바로 하세요.”
여자가 몇 마디 더 투덜대고는 총총히 사라진다. 나는 화가 나서 음료수 병을 계산대 위에 탁 소리가 나게 내려놓는다.
“엄마, 왜 참았어? 진짜 실망이야.”
“어서 오십시오, 고객님.”
“엄마…….”
엄마는 사라지고 마트의 친절 마크가 방긋거린다.
누굴까. 엄마의 표정을 가져가 버린 사람은. --- p.94~95

그녀의 체인 목걸이에 눈이 끌린다. C 브랜드의 신상품이다. 모조품이 아니란 생각이 들자 갑자기 심통이 터진다. 화려하게 빛나던 나 로라만 밀걸레 같은 처지가 된 것인가. 나는 밀걸레를 움켜쥐고 거울을 흘끔 본다. 리뷰왕을 할 때보다 살이 붙었다. 54,900칼로리를 소비하면 예전으로 돌아갈 수 있을까? 무언가 많이 어긋나버린 것 같다. 나는 상상한다. 내가 쥐고 있는 이 밀걸레가 요술 할멈의 빗자루라면 얼마나 좋을까. 시급 따위 잊고 싶다. 당장이라도 이걸 타고 보라보라를 탈출하고 싶어진다. 왜 이곳은 누군가에게는 낙원이면서 누군가에게는 지옥이 되어야 하는 거지? 그것보다 누가 감히 낙원과 지옥을 만들어놓은 걸까? --- p.83~84

“또.옹!”
수영장을 이용 중이던 사람들은 귀를 틀어막고 여교수가 가리키는 방향을 향해 합창을 하듯 다함께 소리를 질렀다. “또.오.옹!” 절묘하고 강력한 화음이었다. 수영장 천장의 불투명 유리에 번개 모양의 금이 간 것도 그 소리 때문이라고 했다. 교수는 어찌나 비명을 질렀는지 목이 쉬어버렸다.
그녀는 물기가 마르지 않은 목소리로 사장에게 따졌다.
“수영장 관리를 이렇게 해도 되나요?”
그러나 사장은 여교수의 말을 알아들을 수 없었던 모양이다.
“쉑켱징 켁헉욱 쑝쁘링 니수 씼나헉?”
그는 저녁 약속이 있어 여교수를 향해 한 번 환하게 웃어준 후 스포츠센터를 빠져나갔다. 여교수는 스포츠센터 홈페이지에 접속해 분노를 표출했다. --- p.73~74

로라는 더 마른 몸을 갖고 싶다며 닭의 가슴살만 먹었고, 그것들을 냉장고에 꽉꽉 채워두었다. 냉장고 문을 열면 팩으로 포장된 가슴살들이 바닥으로 우르르 떨어질 때도 있었다. 도대체 몇 마리의 가슴살을 도려낸 것일까. 가슴살을 인간에게 주고 슬피 울었을, 아니 슬픔을 느끼기도 전에 하직했을 닭들에게 묵념을 하고 싶을 지경이었다. --- p.15

“판매천지 지랄천지 그쪽에서 먼저 우리 물건을 팔아보겠다고 해서 밤새 공장 돌려 가격 맞춰 납품했더니, 경쟁 방송에서 원 플러스 원 행사를 했다는구나.”
아저씨는 잔뜩 독이 오른 얼굴이다. 우유나 과자를 하나 더 주는 행사는 봤어도 책장을 하나 더 주는 행사는 처음이다. 그런 날이 올까. 자동차를 한 대 사면 자동차를 한 대 더 주고, 집을 한 채 사면 집을 한 채 더 주고, 친구를 하나 사면 친구를 하나 더 주고, 애인을 하나 사면 애인을 하나 더 주는……. --- p.30~31

엄마가 마트에서 6개월 동안 일해 번 돈을 한 푼도 쓰지 않아야 그레이스 케이의 블라우스 한 장을 살 수 있다고 했다. 나한테 R 컬렉션은 비상식적인 곳이었다. 하지만 로라에게는 달랐다. R 컬렉션에서 일하는 걸 즐거워했다. 아니, 즐거워하는 정도가 아니라 몸 어딘가에 애드벌룬이라도 달아놨는지 늘 붕 떠 있었다.
“오빠, 그레이스 케이의 가방을 보잖아. 그럼 그 가방의 아우라에 몸이 마구 떨리는 거 있지.”
로라는 그딴 말을 하고 또다시 전기뱀장어처럼 꿈틀거렸다. --- p.110

눈을 감고 중얼거린다. 밤낮없이 일을 하다보면 우리 가족은 결국 부자가 되고 말 거야. 정말 엄청난 부자 말이야. 밥을 굶지 않고 관리비 같은 건 밀리지도 않는 부자 말이야. 열심히 일하다보면 희망찬 새날을 맞이할 수 있을 거야.
--- p.160~16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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