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다란 모래밭이 펼쳐진 샌터 바버라 해변은 이곳을 찾는 모두에게 공원이 된다. 30km가 넘는 구불 구불한 해안선과 얕은 바다에 장식된 바위들이 빼어난 경치를 이뤄, 여행객들은 물론이고 이 지역 사람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다. 두말할 나위 없이 아름다운 이곳은 끊임없이 사람들을 한자리에 모으는 쉼터 역할을 한다. 샌터 바버라 해변은 사람들을 손짓해 부르고, 다시 찾게 하고, 오래 머물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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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월 말경이지만 위스콘신Wisconsin 주 매디슨Madison에는 아직도 눈이 쌓여있다. 몬태나Montana 주 미줄라Missoula 농산물 직거래 장터도 몇 주 뒤에나 문을 열 것이다. 그러나 온화한 샌터 바버라에서는 언제나 신선한 농산물을 구할 수 있다. 매주 화요일 저녁이면 시내 쇼핑가는 차량 통행을 금지해놓고 활기찬 시장으로 탈바꿈한다. 농부들은 이곳의 기름진 땅에서 얻은 선물을 가판대에 한가득 쌓아놓고서 손님을 기다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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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류는 장미를 증류해서 정유를 추출하는 방법으로 그 에센스를 얻기 시작했다. ‘향유’라고 부르는 것이 더 익숙한 장미수Rosewater는 정유를 추출하는 과정에서 생기는 부산물로, 3~4세기경 메소포타미아에서 가장 먼저 만들었다고 전해진다. 대량 생산은 10세기 페르시아에서 시작한 것으로 추측되는데, 작업 과정이 정교해지면서 먹을 수 있는 장미수가 등장했다. 장미는 마침내 부엌에서도 가치를 인정받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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극작가 데니스 포터Dennis Potter는 산들바람에 실려오는 매화 향기에서 완벽한 ‘현재성’의 본질을 느꼈다. 그는 췌장암 말기에 이르러 창밖을 보다가 ‘세상에서 가장 하얗고, 가장 하늘거리는, 가장 꽃다운 꽃’을 발견했다. 포터는 암에 걸리고 나서야 우리 모두가 지금 이 순간을 즐기지 못한 채 과거를 추억하고 미래를 예측하느라 너무 많은 시간을 허비하고 있음을 뼈저리게 깨달았다. 포터는 “우리가 확실히 아는 단 한 가지는 현재 시제다. 모든 것에 내재된 현재성은 참으로 경이롭다.”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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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미는 음식에 새콤한 맛과 향을 더할 수 있기 때문에 주재료보다는 향신료로 적합하다. 곤충은 그 감칠맛으로 우리를 사로잡기도 한다. 많은 곤충, 특히 메뚜기목에 속하며 살이 많은 곤충과 딱정벌레목에 속하는 모든 다육질 곤충은 왜소해 보이는 생김새와 달리 높은 단백질 함유량을 자랑한다. 이들 곤충은 대부분 날로 먹든 익혀서 먹든 고기 맛이 나며, 맛이 좋다. 그러나 세계 곳곳의 여러 문화 속에서 예부터 채소와 생선을 발효시키고, 고기를 훈제하고, 치즈를 숙성시키면서, 일부 먹을거리를 배양한 것처럼, 발효 과정을 거쳐서 곤충의 단백질을 아미노산으로 분해한다면 감칠맛을 한껏 살릴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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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담한 만灣을 끼고 모여있는 돌기둥은 오랜 세월, 바람과 파도에 시달린 탓에 저마다 침식된 흔적을 지녔다. 가장 키 작은 돌기둥이 모여있는 곳은 마치 테라스처럼 보이고 육각형 판돌에는 동그랗게 물이 고여있다. 키 큰 돌 기둥들은 철썩이는 파도를 뚫고 산마루처럼 우뚝 솟아있다. 바람은 거센 물보라를 일으키지만 관광객들은 단단히 마음을 먹은 듯 돌기둥을 힘차게 밟으며 오른다. 거인의 장화Giant’s Boot, 벌집Honeycomb, 낙타의 혹Camel’s Hump 등 쉽게 볼 수 없는, 수백만 년 세월이 만든 침식의 흔적은 우리의 눈길을 사로잡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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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살이 벌어졌던 거리는 옛 모습을 잃었지만 주택가 한 박공벽에는 유명한 문구가 있다. ‘여기부터는 프리 데리입니다YOU ARE NOW ENTERING FREE DERRY.’ 화강암을 H 모양으로 깎아 만든 단식투쟁 기념비 근처에 ‘피의 일요일’ 희생자들을 추모하는 기념비가 서있다. 총상 현장의 사진들과 함께 1972년 7월 모토맨 작전Operation Motorman에서 사망한 제임스 시머스 브래들리James Seamus Bradley의 가족이 받은 편지 한 장이 철책에 붙어있다. 이름을 밝히지 않은 국방부 장관 보좌관이 2013년에 쓴 편지에는 이렇게 적혀있다. “그의 사망에 대해 영국 정부가 사과하는 것이 적절하다는 그 어떤 근거도 찾지 못했습니다.” 이 작전으로 프리 데리는 독립성을 잃었으며 서유럽에서 삼엄한 무장 지역 중 하나가 돼 22년이라는 세월을 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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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이킹 시대에 스칸디나비아인이 애지중지하던 북유럽의 말을 9세기에 처음, 바위투성인 레이캬네스카지Reykjanesskagi 반도로 데리고 온 순간부터 이 말은 아이슬란드인의 삶에 없어서는 안 될 존재가 됐다. 오늘날 ‘아이슬란딕Icelandic’이라는 이름의 품종으로 알려진 이 말은 지난 세월 동안 아이슬란드의 사회와 문화 곳곳에 자취를 남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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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슬란드에서는 북극광을 ‘노르뒤리오우스norðurljos’라고 부르고, 북극광의 학명인 ‘오로라 보리애리스’는 라틴어로 ‘북녘 아침노을’을 뜻한다. 핀란드인은 불꽃처럼 반짝이는 눈송이를 꼬리로 흩뿌리는 북극여우에 얽힌 전설을 떠올리면서 북극광을 ‘레본툴렛revontulet’또는 ‘여우 불’이라고 부른다. 이뉴잇족은 북극광을 살해된 아기들의 영혼이라고 믿으면서 불길한 것으로 여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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