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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기의 여자

위기의 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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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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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행일 2000년 11월 30일
쪽수, 무게, 크기 234쪽 | 365g | 크기확인중
ISBN13 9788973410507
ISBN10 89734105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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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소개 (1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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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자 : 오증자
서울 출생으로 서울대 문리대 불문과 및 동 대학원을 졸업하였다. 서울대 문리대 불문과 강사와 월간「샘터」주간을 역임하였으며, 현재 서울여대 교수로 재직중이다. 역서로『바다의 침묵』『에밀』『몽테크리스토 백작』『아름다운 영상』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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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건 특별한 무대 장치인데, 마을 한구석에 몇 세기를 두고 버려져 있는 이 도시의 스케치는...... 나는 반원형의 방을 끼고 중간까지 걸어가서 중앙 건물의 계단을 올라갔다. 그리고 그 건물의 소박하면서도 위엄 있는 모습을 오랫동안 바라보았다. 그것은 실용적인 목적을 위해서 세워진 것이었지만 실은 전혀 아무데도 소용되지 않았던 건물들이었다. 의젓하게 떡 버티고 서 있는 진짜 건물이건만, 오랫동안 버려져 있던 탓으로 지금 이 건물들은 비현실적인 환영으로 변모하고 만 것이다. 왜 그랬을까? 가을 하늘 아래서 따스한 풀잎과 낙엽의 향기는 내가 현실 세계에 있음을 증명해 준다. 그러나 나는 2백년 전의 과거 속으로 물러나 있었다.

나는 소지품을 챙기러 차로 돌아갔다. 땅바닥에 담요와 쿠션과 트랜지스터 라디오를 꺼내 놓고 모차르트의 음악을 들으며 담배를 피웠다. 앞에 보이는 건물의 먼지 낀 창문 뒤에는 사람이 있는것 같았다. 아마 사무실인 모양이다. 트럭 한 대가 육중한 문 앞에 와서 서더니 남자 몇이 그 문을 열고서 트럭 뒤에 짐을 실었다. 그 밖에는 오후의 정적을 깨뜨리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이곳을 찾아드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음악이 끝나자 나는 책을 읽었다. 마음은 다시 먼 곳으로 달린다. 머나먼 곳, 낯선 강변으로. 눈을 들자 나는 내 생활에서 멀리 떨어진 이 돌들 틈에 있는 나 자신을 발견했다. 가장 놀라운 일은 내가 이곳에 와 있다는 사실과 이 유쾌한 기분이다. 파리로 혼자 돌아가는 일이 쓸쓸할까봐 몹시 불안했었는데...

지금까지 남편 모리스가 없을 때는 딸들이 여행을 동반해 주었기 때문이다. 나는 꼴레뜨의 황홀해 하는 모습과 요구가 많은 뤼시엔느의 고집이 그리울 줄로 알았었다. 그런데 뜻밖에도 잊혀졌던 환희 같은 것이 내게 되살아난 것이다. 이 자유는 나를 20년이나 다시 젊어지게 했다. 책을 덮자 나 자신을 위해 이런 글을 쓰기 시작했을 정도니까. 마치 스무 살 때 처럼. 모리스의 곁을 떠날 때마다 나는 가벼운 마음으로 그와 헤어진 적이 없다. 학회는 불과 일주일 동안이었지만 그런데도 무쟁에서 니스의 비행장까지 차로 달리는 동안 나는 계속 목이 메었다. 남편 역시 마음이 산란했던 모양이다. 스피커에서 로마로 가는 여객들을 부르자 그는 나를 꼬옥 껴안아 주었다.

'자동차 사고로 죽으면 안 돼.' '비행기에서 죽으면 안 돼요.' 남편은 비행장 밖으로 사라지기 전에 한번 더 나를 돌아다 보았다. 그의 눈에 어려 있던 불안스러운 빛이 내 가슴 속으로 파고 들었다. 비행기의 이륙은 사뭇 극적이었다. 사발기가 서서히 떠올랐다. 그것은 기나긴 작별이다. 제트기는 결별의 잔혹성과 함께 지상을 박차고 튀어 오른다. 그런데 얼마 안 지나서 나는 기분이 들뜨기 시작한 것이다. 아니, 딸들이 없다는 사실이 나를 슬프게 하기는커녕 오히려 그 반대이다. 나는 기분 내키는 대로 차를 빨리도 몰 수 있으며 천천히도 몰 수 있다. 가고싶은 곳으로 가고 서고싶은 곳에서 멈출 수가 있다. 나는 남편이 없는 일주일 동안을 이리저리 떠돌아다니기로 결심했다.

아침이면 햇살과 함께 일어난다. 차는 마치 충실한 동물처럼 길이나 뜰 안에서 나를 기다린다. 차는 아침 이슬에 흠뻑 젖어 있어 나는 그 이슬을 닦아 주고 빛나는 하루 속으로 유쾌하게 뛰어든다. 내 옆에는 흰 백과 미슐랭 지도, 여행 안내서, 책, 카디건 스웨터 그리고 담배가 있다. 그것들은 나의 신중한 동반자이다. 내가 여인숙의 안주인에게 닭과 가재 요리법을 물어도 누구 하나 곁에서 조바심을 피울 사람도 없다. 날이 저물려고 한다. 그러나 기온은 아직도 따스하다. 지금은 감동적인 순간의 한때. 대지는 인간과 너무도 잘 어울려 있어 마치 모든 사람이 행복하지 않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처럼 느껴지는 순간이다.
--- pp.6-8
'여자? 아주 단순한 거지. 단순한 공식을 좋아하는 사람들의 말이다. 여자란 자궁이며 난소이다. 여자란 암컷이다. 이 암컷이라는 말은 여자를 정의하기에 충분하다. 남자의 입에서 암컷이란 형용사는 경멸하는 말처럼 발음된다. 하지만 남자는 자기의 동물성을 부끄러워 하기는 커녕, 그 반대로 그를 가리켜 '저건 수컷이야' 하면 더욱 득의 만만해진다. 이 암컷이라는 말이 경멸의 언사로 들리는 이유는 여자를 자연 속에 놓아두지 않고 그녀의 섹스(성) 속에 감금시키기 때문이다.'
--- p.6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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