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른쪽 발가락을 몽땅 잃어버린 나병 환자를 만난 적이 있다. 꼭 끼는 좁은 신발을 억지로 계속 신었기 때문에 그렇게 되었다. 또 어떤 사람은 엄지손가락을 거의 잃었는데, 자루걸레의 손잡이를 너무 꽉 쥐어서 생긴 쓰린 상처 때문이었다. 그 병원에 있는 수많은 환자들이 장님이 되고 있었다. 고통을 느끼는 세포들이 죽어서 눈을 깜빡거려야 할 때를 알 수 없었던 것이다.
나병 환자들과의 만남을 통해 나는, 크고 작은 수많은 방법으로 고통이 매일 우리를 섬긴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우리가 건강하다면 고통을 느끼는 세포가 우리에게 신발을 바꾸어야 할 때를, 자루걸레나 갈퀴의 손잡이를 느슨하게 잡아야 할 때를, 눈을 깜박거려야 할 때를 경고해 줄 것이다. 간단히 말해 고통은 우리가 자유롭고 활발한 삶을 영위하도록 돕는다. 지난번에 쓴 『내가 고통당할 때 하나님은 어디 계십니까?』에서 나는 우리 몸 안에 있는 고통망(網)의 놀랄 만한 특징에 대해 서술했다. 그 책의 전부를 여기서 반복할 수는 없지만 한두 가지 다시 언급하는 것이 좋을 듯하다.
고통의 경고가 없다면 대부분의 스포츠는 상당히 위험할 것이다. 고통이 없다면 섹스도 없을 것이다. 왜냐하면 성적인 즐거움은 대개 고통 세포에 의해 저달되기 때문이다. 고통이 없다면 에술도 문화도 매우 한정적일 것이다. 음악가, 댄서, 화가, 조각가 모두 고통과 압력에 대한 육체의 민감성에 의존한다. 예를 들어 기타리스트는 기타 줄의 어디에 손가락을 놓아야 할지, 얼마나 세게 눌러야 할지를 정확하게 느낄 수 있어야 한다.
고통이 없다면 우리의 삶은 끊임없이 생명의 위험 가운데 있을 것이다. 맹장염이나 심장 마비, 골수 종양에 대한 경고도 받지 못할 것이다. 간단히 말해 고통은 이 땅에서 정상적인 삶을 유지하기 위해 필수적이다.
고통은 하나님이 단지 우리의 삶을 비참하게 만들기 위해 창조의 마지막 순간에 만드신 새로운 장치가 아니다. 하나님이 크게 실수하신 것은 더더욱 아니다. 나는 지금 보호에 대한 우리의 욕구를 정확하게 측정하면서, 우리의 온 몸에 퍼져 있는 엄청난 숫자의 통점들을 본다. 이는 하나님의 무능력이 아니라 능력을 보여 준다.
--- pp.13-14
삶이 고통스러울 때 제기하는 질문들에 대한 최선의 대답은 그리스도의 몸, 곧 교회에서 발견된다. 고통받는 사람들을 돌보면서 우리는 우리를 통해 하나님의 위로를 흘려 보낸다. 이런 일을 하면서 우리는 세상으로 하여금 하나님이 진짜 누구이신지 알게하는 것이다.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하고 하나님 안에서 다른 사람들을 사랑하면, 하나님이 없애기를 기뻐하시는 것이 우리 가운데서 고통을 통해 없어지는 것을 우리는 기뻐할 것이다. 왜냐하면 없어지는 모든 것들이 중요한 것이아님을알기때문이다. 우리가 하는 모든 일 가운데 하나님의 영광이 뚜렷하게 드러나기 위해, 우리는 삶의 필요없는 폐기물들을 고통이 삼켜버리기를 더욱 원할 것이다.
--- p.58~59
놀랍게도 나는 고통이 없는 세계가 실제로 존재함을 알게 되었다. 그 곳은 나병 환자를 위한 병원이었다. 오늘날 한센병이라고 부르는 이 나병 환자들은 육체적인 고통을 느끼지 않는다. 그렇지만 알다시피 바로 이 고통 없음이 그들의 특이한 비극이다.
--- p.13
고통은 하나님이 단지 우리의 삶을 비참하게 만들기 위해 창조의 마지막 순간에 만드신 새로운 장치가 아니다. 하나님이 크게 실수하신 것은 더더욱 아니다. 나는 지금 보호에 대한 우리의 욕구를 정확하게 측정하면서 우리의 온 몸에 퍼져있는 엄청난 숫자의 동정들을 본다. 이는 하나님의 무능력이 아니라 능력을 보여준다.
--- p.16
'...그렇지만 대개 불행하게도 하나님의 두 손이 묶여 있다.'
고 끝난다.단지 하나님은 이 세상의 문제를 푸실만한 능력이 없다는 것이다.그렇지만성경은 우리에게 그렇게 가르치지 않는다. 구역성경을 펼쳐,자신이 받을 만한 것이 아닌 큰 고통을 당한 사람을 보라 참으로 하나님의 무능력이 문제였다면 하나님은 이 점에 대해 욥과 논의할 수 있는 완벽한 무대를 가지고 계셨다.
--- p.21
'...그렇지만 대개 불행하게도 하나님의 두 손이 묶여 있다.'
고 끝난다.단지 하나님은 이 세상의 문제를 푸실만한 능력이 없다는 것이다.그렇지만성경은 우리에게 그렇게 가르치지 않는다. 구역성경을 펼쳐,자신이 받을 만한 것이 아닌 큰 고통을 당한 사람을 보라 참으로 하나님의 무능력이 문제였다면 하나님은 이 점에 대해 욥과 논의할 수 있는 완벽한 무대를 가지고 계셨다.
--- p.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