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의 강함은 우리나라의 복이 아니다. 일본이 혹 조금 먼저 개화된것을 믿고 조선에 대해 반드시 허세를 부리며 공갈하는 사태가 벌어질까 두렵다"고 어윤중은 우려했다. 그리고 우리의 국사 교과서나 역사책에서는 이렇게 말한다. 우리도 조선후기부터 근대지향적 실학사상과 자본주의의 싹이 발아하고 있었으며, 개항 이후에도 갑신정변, 갑오경장, 독립협회 운동 등 근대 국가 수립에 매진했지만 서구 제국주의 열강과 이를 모방한 청나라와 일본의 침략 때문에 자주적인 근대국가 수립에 실패했다. 일본이 근대국가를 수립할 수 있었던 것은 근대 이전 일본의 정치, 경제, 문화적 역량이 조선보다 월등히 높았기 때문도 아니고, 메이지유신의 주역들의 대응능력이 탁월했기 때문도 아니다. 또 일본이 식민지 종속의 길을 모면할 수 있었던 것은 막부 말기에서 메이지유신에 이르는 근대국가 수립기에 외압이 거의 없었고 발빠르게 서구에 문호개방을 했으며 조선을 침략하여 희생양으로 삼을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과연 우리들에게는 책임이 없을까? 우리는 평화를 사랑하는 백의민족임을 강조하면서 제국주의 열강과 일본의 침략성을 부각시키는 것만으로 한 세기 전 참담한 실패의 역사에서 자유로울 수 있을까? 사실 우리의 선조가 세상의 변화에 능동적으로 대응하지 못하고 우물 안의 개구리로 자족하면서 서양의 발전한 문물을 수용하는 데 게을렀기 때문에 일본에 나라를 빼앗겼다고 본 알렌의 지적은 일면 타당하다. 물론 지금까지 살펴본 조사시찰단의 예를 보더라도 당시의 한국인들이 수수방관하면서 세월을 보낸 것은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알렌의 말은 우리의 가슴을 예리하게 찌른다. 우리도 좀 더 빨리 시작했더라면, 아니 외세의 간섭이 없었더라면, 조사시찰단을 계기로 일기 시작한 서구 근대 문물의 따라 배우기는 성공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일본이 서양 탐험에 열중하던 1860년부터 20여 년 동안 우리는 알렌과 후쿠자와의 지적처럼 미몽에 사로잡혀 다시는 되돌릴 수 없는 역사의 시간을 허송했으며, 서구 근대 문물을 능동적으로 섭취하는데 미흡했다. 여기서 한 세기 전 우리의 참담한 실패의 역사가 시작되었다. 결국 우리는 서구 국가들이 두 세기 전에, 그리고 일본이 한 세기 전에 달성한 근대 국민국가의 수립을 아직도 미완의 과제로 떠안고 있다. 이같은 실패의 역사에서 하나의 교훈을 찾을 수 있다. 역사의 시간은 우리를 기다려주지 않는다는 것이다. 한 세기 전 이 땅의 사람들은 동시대의 서구 열강과 일본에 살던 이들에 비해 이중의 과제를 안고 있었다. 서구 열강과 일본의 경우 봉건제도를 타파하고 근대국가를 이룩하는 데 자신들의 힘을 쏟을 수 있었던 반면, 우리에게는 제국주의 열강의 침입에 맞서 국가를 지켜야 할 또 하나의 과제가 부과되어 있었다. 반봉건과 반외세라는 이중의 과제가 우리 선조들의 어깨를 짓누르고 있었다.
이와 마찬가지로 오늘을 사는 우리에게도 과중한 부담이 지어져 있다. 우리는 분단을 극복하고 민족과 국가의 통합작업을 완수해야 하며, 진정한 시민사회를 구현해야 한다. 나아가 한반도를 둘러싼 국가들과 동등한 입장에서 동반자적 관계를 수립하여 동아시아 및 세계의 공동 번영을 도모해야 한다. 요컨대 세계사의 진전 방향에 우리 역사의 시계바늘을 합치시켜야 한다. 한 세기 뒤 우리 후손들이 우리를 시대적 요청에 잘 부응해 나간 자랑스런 선조로 기억할 수 있기 위해서는 우리는 주어진 역사의 시간에 충실하고 시대적 과제에 적극적으로 대응하는 고밀도의 삶을 살아야 할 것이다. 한 세기 전 실패의 역사의 책임은 당시의 지배계급이었던 왕실과 양반들이 져야한다면, 시민사회를 운위하는 오늘 시민임을 자각하는 모든 이들은 시대적 과제를 달성할 책임을 회피할 수 없다.
우리에게 부여된 소명을 다할 때 다시는 우리에게 주어진 역사의 시간을 허송했다는 비판을 듣지 않을 것이고, 한 세기 전의 참담한 실패를 반복하는 어리석음도 범하지 않을 수 있을 것이다. 우리의 역사에서 외세의 침략에 저항해 목숨 걸고 국가를 지킨 인물들도 당당하게 기록되어야 할 것이다. 그러나 그 못지 않게 비록 좌절되었을지라도 시대적 한계 속에서도 그 현실적 대응에 충실했던 사람들의 삶 또한 그 시대의 한계와 아우르면서 조명하는 노력을 기울일 때 비로소 우리는 동일한 역사를 되풀이하는 소극을 연출하지 않게 될 것이다.
--- pp.288-290
"일본의 강함은 우리나라의 복이 아니다. 일본이 혹 조금 먼저 개화된것을 믿고 조선에 대해 반드시 허세를 부리며 공갈하는 사태가 벌어질까 두렵다"고 어윤중은 우려했다. 그리고 우리의 국사 교과서나 역사책에서는 이렇게 말한다. 우리도 조선후기부터 근대지향적 실학사상과 자본주의의 싹이 발아하고 있었으며, 개항 이후에도 갑신정변, 갑오경장, 독립협회 운동 등 근대 국가 수립에 매진했지만 서구 제국주의 열강과 이를 모방한 청나라와 일본의 침략 때문에 자주적인 근대국가 수립에 실패했다. 일본이 근대국가를 수립할 수 있었던 것은 근대 이전 일본의 정치, 경제, 문화적 역량이 조선보다 월등히 높았기 때문도 아니고, 메이지유신의 주역들의 대응능력이 탁월했기 때문도 아니다. 또 일본이 식민지 종속의 길을 모면할 수 있었던 것은 막부 말기에서 메이지유신에 이르는 근대국가 수립기에 외압이 거의 없었고 발빠르게 서구에 문호개방을 했으며 조선을 침략하여 희생양으로 삼을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과연 우리들에게는 책임이 없을까? 우리는 평화를 사랑하는 백의민족임을 강조하면서 제국주의 열강과 일본의 침략성을 부각시키는 것만으로 한 세기 전 참담한 실패의 역사에서 자유로울 수 있을까? 사실 우리의 선조가 세상의 변화에 능동적으로 대응하지 못하고 우물 안의 개구리로 자족하면서 서양의 발전한 문물을 수용하는 데 게을렀기 때문에 일본에 나라를 빼앗겼다고 본 알렌의 지적은 일면 타당하다. 물론 지금까지 살펴본 조사시찰단의 예를 보더라도 당시의 한국인들이 수수방관하면서 세월을 보낸 것은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알렌의 말은 우리의 가슴을 예리하게 찌른다. 우리도 좀 더 빨리 시작했더라면, 아니 외세의 간섭이 없었더라면, 조사시찰단을 계기로 일기 시작한 서구 근대 문물의 따라 배우기는 성공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일본이 서양 탐험에 열중하던 1860년부터 20여 년 동안 우리는 알렌과 후쿠자와의 지적처럼 미몽에 사로잡혀 다시는 되돌릴 수 없는 역사의 시간을 허송했으며, 서구 근대 문물을 능동적으로 섭취하는데 미흡했다. 여기서 한 세기 전 우리의 참담한 실패의 역사가 시작되었다. 결국 우리는 서구 국가들이 두 세기 전에, 그리고 일본이 한 세기 전에 달성한 근대 국민국가의 수립을 아직도 미완의 과제로 떠안고 있다. 이같은 실패의 역사에서 하나의 교훈을 찾을 수 있다. 역사의 시간은 우리를 기다려주지 않는다는 것이다. 한 세기 전 이 땅의 사람들은 동시대의 서구 열강과 일본에 살던 이들에 비해 이중의 과제를 안고 있었다. 서구 열강과 일본의 경우 봉건제도를 타파하고 근대국가를 이룩하는 데 자신들의 힘을 쏟을 수 있었던 반면, 우리에게는 제국주의 열강의 침입에 맞서 국가를 지켜야 할 또 하나의 과제가 부과되어 있었다. 반봉건과 반외세라는 이중의 과제가 우리 선조들의 어깨를 짓누르고 있었다.
이와 마찬가지로 오늘을 사는 우리에게도 과중한 부담이 지어져 있다. 우리는 분단을 극복하고 민족과 국가의 통합작업을 완수해야 하며, 진정한 시민사회를 구현해야 한다. 나아가 한반도를 둘러싼 국가들과 동등한 입장에서 동반자적 관계를 수립하여 동아시아 및 세계의 공동 번영을 도모해야 한다. 요컨대 세계사의 진전 방향에 우리 역사의 시계바늘을 합치시켜야 한다. 한 세기 뒤 우리 후손들이 우리를 시대적 요청에 잘 부응해 나간 자랑스런 선조로 기억할 수 있기 위해서는 우리는 주어진 역사의 시간에 충실하고 시대적 과제에 적극적으로 대응하는 고밀도의 삶을 살아야 할 것이다. 한 세기 전 실패의 역사의 책임은 당시의 지배계급이었던 왕실과 양반들이 져야한다면, 시민사회를 운위하는 오늘 시민임을 자각하는 모든 이들은 시대적 과제를 달성할 책임을 회피할 수 없다.
우리에게 부여된 소명을 다할 때 다시는 우리에게 주어진 역사의 시간을 허송했다는 비판을 듣지 않을 것이고, 한 세기 전의 참담한 실패를 반복하는 어리석음도 범하지 않을 수 있을 것이다. 우리의 역사에서 외세의 침략에 저항해 목숨 걸고 국가를 지킨 인물들도 당당하게 기록되어야 할 것이다. 그러나 그 못지 않게 비록 좌절되었을지라도 시대적 한계 속에서도 그 현실적 대응에 충실했던 사람들의 삶 또한 그 시대의 한계와 아우르면서 조명하는 노력을 기울일 때 비로소 우리는 동일한 역사를 되풀이하는 소극을 연출하지 않게 될 것이다.
--- pp.288-29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