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번에 남친 많다고 분명히 이야기했잖아. 넌 그래도 나에게 고백했고.”
“그, 그거야 그냥 하는 말인 줄 알았지. 농담처럼! 좋아, 그럼 하나만 묻자. 남친이 왜 그렇게 많은 건데”
“친구는 여럿 사귀면서, 남친은 왜 꼭 한 명만 사귀어야 해”
“허 참, 몰라서 물어? 사랑하고 우정은 다른 거니까!”
“다를 게 뭐가 있어. 여자 친구랑은 나랑 맞는지 안 맞는지 사귀어보면서 알아가잖아. 근데 왜 남자 친구는 먼저 선택하고 나중에 사귀어야 하는 거지? 얘도 만나보고 쟤도 만나보면서 내가 누구를 좋아하는지 알아가는 게 나쁜 건가”
“그렇다면 한 명 만나고 헤어지고 나서, 또 다른 사람 만나고 헤어지고 그래야지!”
“한두 번의 실수나 싫은 점이 보이면 단칼에 헤어져야 하는 거야? 칼로 무 자르듯 그렇게 헤어져야 하는 거야? 여자 친구들은 얘도 만났다 쟤도 만났다 해도 되고, 남자 친구는 꼭 한 명만 집중해서 만나야 하는 이유가 뭔데!”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몰랐다. 난 그저 내 마음을 이야기했다.
“이유는 나도 몰라. 다만 난 너랑 있을 때가 제일 좋아. 다른 여자들 만나고 싶지 않아. 재미가 없다고! 그뿐이야. 그래서 다른 사람을 만나고 싶지 않아. 난 너랑 영화 보는 것도 제일 좋고, 음악 이야기를 하는 것도 제일 좋아. 그게 다야!”
“나도 그럴 줄 알았는데, 꼭 그런 건 아니더라고! 난 내 심장을 믿어. 심장은 정확해. 난 널 만날 때 심장이 뛰고 흥분이 돼. 난 너를 만나러 가는 길은 나도 모르게 걸음이 빨라지고, 서둘게 되더라고! 또 너와 함께 있으면 너무 기쁘고 좋아. 근데 놀랍게도 어제 그 사람을 만날 때도 그런 마음이 드는 걸 어떡해!”
“그건 날 안 좋아하는 거야!”
참담했다. 그녀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아니, 그렇지 않아! 나 진짜로 너 좋아해. 아니, 사랑해! 널 보면 심장이 뛰고 같이 있고 싶고, 기쁘다고! 그게 왜 사랑이 아니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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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가 막혔다. 대놓고 그렇게 뻔뻔하게 너도 남친이고 쟤도 남친이라고, 너도 사랑하고 쟤도 사랑한다고 어떻게 말할 수 있지? 그게 어떻게 정상인가? 도무지 이해할 수가 없었다. 미쳤다. 미친 거다. 어디서 그런 거지같은 이야기를 하는지! 재수 없다. 똥이다, 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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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 진지하게 묻는 건데 기분 나쁘게는 듣지 마.”
엄마는 내 말에 살짝 긴장하는 듯했다.
“엄마는 그 사람이랑 평생 살 자신이 있어?”
“평생이라고?
엄마는 고개를 갸웃거리더니 말을 이었다.
“글쎄다! 지금 마음이야 이 사람과 영원한 사랑을 하고 싶고, 그럴 자신도 있는데……. 나중에 어떻게 될지는 나도 모르겠는데”
“뭐야? 그럼 살아보고 안 맞으면 또 다른 사람 만나려고”
톡 쏘듯 말해도 엄마는 부드럽게 답했다.
“또 다른 사람을 만나고 안 만나고는 그 누구도 장담을 할 수 없는 거잖아. 사랑은 예기치 않게, 마치 번개를 맞은 것처럼 오기도 하니까.”
“어휴, 괜히 물어봤네!”
“왜? 그런 거 마음에 안 들어”
“당연하지! 사랑하는 마음, 그게 다 뭐야? 그놈의 사랑, 그게 뭐라고…….”
내가 할 소리가 아니라선지 저절로 끝말이 흐려졌다.
“난 사람을 가장 사람답게 하는 일이 사랑이라고 생각해. 다른 사람을 받아들이는 마음, 그래서 내가 변하는 것, 그것이 사랑의 힘이잖아. 그 좋은 걸 왜 안하려고!”
“됐고! 그나저나 이번에는 좀 진득하니 살아봐, 오래도록! 난 엄마가 힘들지 않고, 외롭지 않았으면 좋겠어.”
“오, 아들! 진짜 멋지다! 그래 이번에는 8월의 들꽃처럼 사랑할게. 쉽게 지지 않는 여름 꽃처럼 오래 사랑할게. 와락 달려드는 사랑 말고 아껴서 야금야금 사랑해볼게.”
엄마는 슬쩍 내 손을 잡았다. 이게 뭔가 싶었지만 가만히 있었다. 그러다 그만 나도 모르게 내 맘도 털어놓고 말았다.
“엄마. 그럼 한 가지만 묻자. 한 명만 사귀는 게 아니고, 여러 명이랑 사귀는 것은 어떻게 생각해”
“동시에 여러 명을 사귄다고”
“응, 문어다리처럼 여러 명을 사귀고 사랑하는 것은 어떤 것 같아”
“글쎄다. 어려운 질문인데? 음 근데 하하야, 최근에 엄마가 책을 읽었는데 이런 말이 있더라. 방법을 가진 사랑은 사랑이 아니래.”
“뭐? 그게 무슨 말이야”
“그러니까 사랑에는 방법이 없다는 거지. 방법이 없으니까 결국 사람마다 다 다를 수밖에 없는 거고.”
이제껏 엄마가 했던 말 중에 최고로 가슴에 와 닿았다. 오 오 엄마! 다시 봤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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