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 만약에 네가 한국에 가서 너희들이 좋아하는 치즈를 구해다가 아침을 먹고 있는데 냄새나니까 공개된 장소에서 먹지말라고 하면 어떻겠니? 또 만약에 너희들이 좋아하는 자우어크라우트를 냄새난다고 못 만들어 먹게하면 기분이 좋겠니? 음식문화는 옷 문화나 주거문화와 같아서 제삼자가 가타부타 함부로 얘기하면 안 되는 주제라는 것 정도는 알잖아? 너는 그래도 편견과 오만으로부터 아직은 자유로운 젊은이고 학생이잖아. 게다가 우리나라는 아직 그렇지 않지만 너희 나라는 소위 문화선진국인데 그게 뭐니? 다른 문화, 다른 가치관에 대한 보다 깊은 이해가 그 바탕 아니겠어? 그런데 너는 어떻게 그렇게 생각이 짧아? 그런 사고방식이 어쩌면 인종 차별 의식을 은연중에 가지고 있다는 증거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은 안 드니?'
--- p.192
내가 다니던 어학코스에서는 두 번 중 첫번째 읽어줄 때는 메모를 하지 말라고 가르쳤다. 전체 내용을 알아야 메모를 해도 문맥과 메시지에 맞게 재구성할 수 있다는 논리였다. 이 방법의 단점은 금방 점수가 올라가지 않는다는 것이었고, 반면, 장점은 그 단계를 지나면 갑자기 점수가 엄청 뛴다는 사실이었다. 그러나 그렇게 되기까지는 인내가 필요했다. 적어도 한 달 정도의. 그러나 한국 유학생들에게 그 정도의 인내심을 요구하는 것은 대체로 무리였다. 그들에게는 몇 퍼센트 정도의 어휘를 받아 적었으며 그게 전에 비해 얼마나 향상된 것인지를 가리키는 구체적인 숫자가 훨씬 자극적이고 스타일에 맞았다. 어제와 오늘이 비교가 안되고 따라서 자꾸 세월만 가는 것 같은 방법은 도대체 한국적이지 않았다.
그들은 날마다 도서관에 나와서 시험지 노트에다 빽빽이 단어를 채워 넣으며 속으로 단어를 외웠다. 슈바르츠(schwarz)는 검은색, 슈바르츠는 검은색, 슈바르츠는 검은색, 포오르트(Vorort)는 교외, 포오르트는 교외, 포오르트는 교외, 포오르트 교외, 포오르트 교외 … 하루 종일 도서관에서 그렇게 수십 개의 단어를 외고 문법 문제를 풀고 독해를 하고 저녁 어스름이 깔리고 해가 홍조 띤 얼굴로 서쪽 하늘에 걸릴 때쯤 밖으로 나오는 그들의 표정에는 뿌듯함과 피곤이 적당히 섞여 있어 보기에는 좋았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그들은 잘 드는 도끼가 필요하다는데 칼을 갈고 나온느 중이라는 걸 모르는 것 같았다. 그리하여 때가 오면 수개월 동안 갈고 닦아 둔 칼로 장작을 패려고 용을 쓰다가 실패하고, 그렇게 된 것인지도 모른 채 다시 더 좋은 숫돌을 구하여 열심히 칼을 가는 일을 반복하고 있었다. 새카맣게 단어가 휘갈겨진 시험지 노트는 쌓여가고 다 쓴 볼펜도 늘어가고 마치 고시 준비를 하는 듯한 착각에도 빠졌겠다. 우스겟소리로 어학 시험을 외무고시 일차 시험이라고 표현하기 시작한 그들의 얼굴에는 비장한 자긍심까지 어렸고 어학 시험에 떨어질 대마다 재수 탓, 일진 탓, 시험관의 나쁜 발음 탓을 해냈다.
나는 기회 있을 때마다 내가 배운 방법과 하늘이 가르쳐 준 노하우를 사람들에게 전수했다. 그들은 듣는 순간에는 내 논리에 감탄을 금치 못 했고 꼭 그렇게 하리라고 스스로 다짐했다. 그러나 단 일주일을 버티는 사람이 드물었다. 그리고는 나에게 이렇게 말하는 것이었다.
"그 방법은 저한테 맞지 않는 것 같아요. 저는 원래 공부하는 방법이 좀 다르거든요."
그런 이야기를 들을 때마다 내 머리 속에는 언제나 도끼와 칼, 그리고 숫돌과 통나무가 왔다갔다 춤을 추었다.
--- pp.77-78
그녀의 말은 그러니까 내가 쓴 어휘가 십년 전에나 사용하던 것들이라는 것이었다. 그러면서 내가 책상 위에 올려놓은 독독사전의 연도를 확인해 보더니 당장 사전부터 새로 사란다. 그 사전의 출판연도는 글쎄, 1970년이었다. 황당하고 아연해서 할 말을 잃은 나는 그 날 이후 정말 말이 없는 사람이 되었다.
--- p.63-6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