품목정보
발행일 | 2001년 01월 31일 |
---|---|
쪽수, 무게, 크기 | 288쪽 | 652g | 158*232*20mm |
ISBN13 | 9788930100175 |
ISBN10 | 8930100171 |
발행일 | 2001년 01월 31일 |
---|---|
쪽수, 무게, 크기 | 288쪽 | 652g | 158*232*20mm |
ISBN13 | 9788930100175 |
ISBN10 | 8930100171 |
1. 1부 매화(梅花) 게〔蟹〕 말과 소 검려지기(黔驢之技) 선부(善夫) 자화상 조어삼매(釣魚三昧) 구와꽃 두꺼비 연적(硯滴)을 산 이야기 『강희자전(康熙字典)』과 감투 털보 신세일가언(新歲一家言) 한운야학(閑雲野鶴)의 연명(淵明)을 본받아 석분음재(惜分陰齋) 고독 머리 표정(表情)과 의상(衣裳) 모델과 여성의 미 답답할손 X선생 팔 년 된 조끼 안경 동해로 가던 날 추사(秋史) 글씨 김 니콜라이 은행이라는 곳 답답한 이야기 스리꾼의 도덕 신형 주택 이동 음식점 서울 사람 시골 사람 노시산방기(老枾山房記) 동일(冬日)에 제(題)하여 육장후기 원수원(袁隨園)과 정판교(鄭板橋)와 빙허(憑虛)와 나와 생각나는 화우(畵友)들 화가와 괴벽(怪癖) 백치사(白痴舍)와 백귀제(白鬼祭) 화가의 눈 기도(碁道) 강의 십삼 급(級) 기인(碁人) 산필(散筆) 2. 2부 시(詩)와 화(畵) 미술 예술에 대한 소감 회화적 고민과 예술적 양심 골동설(骨董說) 거속(去俗) 한묵여담(翰墨餘談) 조선조의 산수화가 조선시대의 인물화 최북(崔北)과 임희지(林熙之) 오원(吾園) 일사 청전(靑田) 이상범(李象範)론 승가사(僧伽寺)의 두 고적(古蹟) 광개토왕 호우(壺우)에 대하여 |
힘을 갖은 글을 만나는 즐거움
"댁의 매화가 구름같이 피었더군요. 가난한 살림도 때로는 운치가 있는 것입니다."로 시작하는 글 '매화梅花'을 읽었다. 글이 주는 매력에 읽기를 반복한다. 멀리서 매화 향기가 전해지는 듯하여 문득 고개를 들어본다. 글쓴이가 궁금하여 찾아보니 김용준이라는 사람이다.
김용준(金瑢俊, 1904-1967), 동양화가이자 미술평론가, 한국미술사학자로, 호는 근원(近園), 선부(善夫), 검려(黔驢), 우산(牛山), 노시산방주인(老枾山房主人)이다. 서울대학교 동양화과 교수, 동국대학교 교수로 재직했다. 1950년 9월 월북해 평양미술대학 교수, 조선미술가동맹 조선화분과위원장, 과학원 고고학연구소 연구원으로 활동했다. 저서로는 ‘근원수필’(1948), ‘조선미술대요’(1949), ‘고구려 고분벽화 연구’(1958) 등이 있으며, 회화작품으로는 수묵채색화 〈춤〉(1957)이 있다.
‘새 근원수필近圓隨筆’은 2001년에 발간된 근원 김용준 전집 1권으로 이미 1948년에 발간된 근원수필에 스물세 편을 더해 엮은 김용준 수필 완결판이라고 한다. 기존에 발간된 형식을 유지하며 화인전과 같은 미술관련 글을 구분하여 엮었다.
“툭 튀어나온 눈깔과 떡 버티고 앉은 사지四肢며 아무런 굴곡이 없는 몸뚱어리―그리고 그 입은 바보처럼 ‘헤―’하는 표정으로 벌린 데다가 입속에는 파리도 아니요 벌레도 아닌 무언지 알지 못할 구멍 뚫린 물건을 물렸다. 콧구멍은 금방이라도 벌름벌름할 것처럼 못나게 뚫어졌고 등허리는 꽁무니에 이르기까지 석 줄로 두드러기가 솟은 듯 쪽 내려 얽게 만들었다.”
‘두꺼비 연적硯滴을 산 이야기’다. 이디서 읽었을까. 읽어가는 내내 어디선가 읽었던 기억이 떠올라 고개를 갸웃거리다 다 읽고 나서야 알았다. 교과서에 수록된 글이었다. 뿐만 아니라 '노시산방기老枾山房記'에 나오는 문장이다. 감나무 예찬으로 이보다 더 감성적인 글이 또 있을까 싶다.
김용준의 글의 영역은 제한이 없다. 일상에서 마주하는 아주 익숙한 것들이 중심이면서도 전혀 새로운 시각을 선보인다. 친근하여 거부감이 없고 세심하여 새로움을 전해준다. 또한 활동하던 시기의 문화상을 그대로 담고 있어 후대 사람이 글을 통해 시대상을 엿보기에도 충분하다. 또한, 2부에서 접하는 미술과 관련된 글 역시도 수필에서 느끼는 자유스러운 사유의 영역을 확인하게 된다.
“남에게 해만은 끼치지 않을 테니 나를 자유스럽게 해달라.”
근원수필의 발문에 나오는 문장이다. ‘무엇보다도 자유스러운 심경’으로 살고자 했던 김용준의 마음이 담긴 글을 통해 지금 내가 살아가는 모습을 돌아보게 된다. 힘을 가진 글이 주는 혜택이다.
김용준은 화가이자 미술평론가이자 미술사학자이며 수필가이다. 1904년생으로 일제 강점기 미술평론가와 미술사학자로 주로 활동을 하였다. (김용준은 1950년 한국전쟁 발발 이후 월북하여 평양미술대학 교수가 된 이후 1967년 사망하기까지 조선미술가동맹 조선화분과위원장, 과학원 고고학연구소 연구원 등으로 활동하였다) 1967년 사망하기까지 또한 1948년 을유문화사에서 출간된 <근원수필>은 해방을 전후한 시기의 작품들 중 가장 빼어난 것으로 평가를 받고 있다. 열화당에서 나온 <새 근원수필>은 1948년 출간된 <근원수필>의 내용에 1939년에서 1950년 사이에 발표된 김용준의 다른 글들을 묶고, 일부의 문장 표현을 다듬어서 다시 출간된 산문집이다.
“... 평생 남의 흉내나 겨우 내다가 죽어 버릴 인간이라 근원(近猿)이라고 헸더니 같은 동물에 같은 글자이면서도 밉고 고운 놈이 있는지 아호에다 원(猿) 자만은 붙이기가 딱 싫어서 원(園)자로 고치고 말았다... 실은 청말(淸末)에 나와 꼭같은 김근원(金近園)이란 사람의 호를 보고 무슨 인연으론지 근(近) 자 한 자가 두고두고 못 잊혀서 그 아랫자를 다른 자로 고르다 못해 종내 원(猿) 자가 되었다가 급기야엔 원(園)으로 돌아가고 만 것이다.”
<새 근원수필>은 두 개의 챕터로 나뉘어져 있는데, 첫 번째 챕터에서는 일제 강점기를 비롯한 시기의 생활상과 작가 개인의 소소한 일상 그리고 시대에 대한 소회가 담겨져 있는 글들로 채워져 있고, 두 번째 챕터에서는 작가의 예술론과 예술가론으로 채워져 있다. 다듬었다고는 하지만 고풍스러운 한자어 표현이 다수 포함되어 있기는 하지만 수필 문학의 정수라는 평가에 어울릴 법한 읽는 사람을 편안하게 만드는 문장의 기술이 돋보인다.
“... 불행인지 행인지 모르나 마음속에 부글부글 괴고만 있는 울분을 어디에다 호소할 길이 없어, 가다오다 등잔 밑에서 혹은 친구들과 떠들고 이야기하던 끝에 공연히 붓대에 맡겨 한두 장씩 끄적거리다 보니 그것이 소위 내 수필이란 것이 된 셈이다.”
겉멋에 휘둘리지 않고 자신의 생활을 솔직하게 표현하는 글이 정갈하여 읽기에 좋으니 수필이라는 문학 장르의 특징을 교과서적으로 보여주고 있다고 하겠다. 동시에 자신이 몸 담고 있는 시대에 대해서도 할 말은 다 하고 있는 것 또한 김용준의 장점이라고 하겠다. 그러니 조금 길게 인용하는 바, 일제 강점기를 살아낸 지식인이 가지는 심정은 팔십여년이 흐른 우리에게도 온전히 전달되는 힘을 가지고 있다.
“사십 남짓한 나이에 수세기 이상의 세월을 겪었다면 듣는 사람은 그놈 미친 놈이라 할 것이다... 그러나 오늘날 우리 조선 사람, 적어도 내 나이 이상의 사람이면 누구나같이 경험한, 그야말로 엄연한 역사적 사실인데야 어찌하랴... 어느덧 상투가 달아나고 시기스런 자전차가 나타났다가, 다시 국파군망하여 외적의 종놈 노릇을 하게 되고, 신풍조란 과도기를 만나 규중 처녀들이 신여성이란 간판을 달고 마구 연애를 할 수 있는 시기가 있더니, 폭풍우 같은 전쟁이 지나가고 이제는 국제 노선이 휘날리고 세계사의 발전이란 새 간판이 눈을 부시게 한다... 아무리 초인의 속보로 따르려야 이제는 숨이 헐떡거려 진정 따라갈 수 없다. 기구한 운명을 타고 난 민족에게는 기구한 운명이 낳는 비극이 따르는 법이지만... 안타까운 이 고민의 세대가 지나가는 날 우리의 후손에게는 설마 고민의 대가가 받아지려니 하는 것이 오직 하나의 염원이었다.”
이와 함께 산문집의 두 번째 챕터에 등장하는 예술론과 예술가론에 대한 내용도 흥미롭다. 아름다움을 대하는 기준에 대한, 어찌 보면 당대의 신지식인이라 할 수 있는 김용준의 시각은 이미 세련되어 있다. 더불어 우리의 미와 이제 막 들어오기 시작하는 서구의 미 사이의 혼돈이랄지, 제대로 알려지지 않은 우리의 작가들에 대한 애정이 드러나는 글들도 읽어볼만 하다.
“미는 처처(處處)에 산재합니다. 추(醜)도 미(美) 될 수 있고 악(惡)도 미 될 수 있습니다. 추니 악이니 하는 것은 도덕적 규범 안에서 사용하는 말이요 그것이 절대의 추나 절대의 악은 아닙니다. 예술가의 순결 감정을 통하여 재현될 때에 악은 벌써 악이 아니요 미요, 또한 선이 되는 것입니다... 미술이란 대상의 미추(美醜)를 가리지 않습니다... 오직 그 지고한 감정을 통하고 세련된 기술로써 연마될 때, 제재의 여하를 막론하고 진정한 한 개의 미술품이 창작되는 것입니다...”
지금으로부터 칠팝십여 년 전이지만 막연하고 먼 시기로만 여겨지는 시기, 그 시기를 예술가로 살아낸 작가의 글을 읽는 일이 재미있다. 아주 오래 전, 이라고 생각되던 그 시기의 사고와 현재의 사고를 비교해보는 일, 그 시간의 간극을 사이에 두고 차이점과 공통점을 눈여겨 보는 일 등이 작가의 수필집을 읽으며 해볼 만 한 일이다. 그리고 왠지 작가의 글을 읽고 있으면 한없이 차분해진다. 수필이란 것이 본래 그런 것일런지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