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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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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용택 | 이레 | 2000년 12월 31일   저자/출판사 더보기/감추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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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품목정보
발행일 2000년 12월 31일
쪽수, 무게, 크기 190쪽 | 352g | 크기확인중
ISBN13 9788985599405
ISBN10 89855994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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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소개 (1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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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택이의 글들은 용택이네 엄마의 언어작용과 닮아 있다. 그것은 삶과 긴밀히 사귀는 언어의건강함이다. 용택이의 문장 속에서 삶은 말에 기대어 있지 않고, 말이 삶에 기대어 있다. 거기에는 관념의 조작이 없고 기발한 이미지나 남을 놀래키려는 수사학적 장치가 없다. 그리고 많은 경우에, 그의 기쁨과 슬픔은 농업공동체적인 삶의 질감과 그 아름다움, 그리고 그 공동체적인 삶을 파괴하는 사회경제적인 해체작용 사이에 끼여 있다. 그가 보여주는 아름다움이, 더 이상 미래사회의 전망이나 구성원리로서 무력한 것이라고 폄하하는 일은 아주 쉽다. 그리고 그 “무력”은 아마도 맞는 말일 수도 있다. 그러나 그가 보여주는 아름다움은 인간이 끝끝내 단념하지 못할 한바탕의 운명인 것이다. 산다는 것은, 직접적으로 살아간다는 뜻이라야 옳을 것이다. 삶은 영원히 아날로그인 것이다.
--- p.190
산중의 달은 사람들에게 각별하다. 보리가 익을 무렵 우리들은 마을 앞 느티나무가 있는 보리밭에서 숨바꼭질을 했다. 어스름 달이 뜬 봄밤, 밤이 깊은 줄 모르고 달빛 뒤에 몸을 숨기며 숨바꼭질을 하다보면 달이 어느덧 저만큼 가 있곤 했다.
--- p.61
내가 사는 진메 마을은 지금 나 혼자 감당할 수 없을 만큼 꽃사태가 났다. 하루가 다르게, 시간시간이 다르게 꽃들이 피어나 나를 깜짝깜짝 놀라게 한다. 자고 일어나 보면 느닷없이 앞산이 훤하게 산벚꽃이 피어 있고, 길을 가다가 뒤돌아보면 눈길 가는 곳에 봄맞이꽃, 제비꽃, 금창초꽃, 현호색이 피어 있다.

봄맞이꽃 앞에 앉아 희고 작은 꽃잎을 들여다본다. 어쩌면 이토록 작은 것들이 이렇게나 예쁘게 꽃을 피울 수 있을까. 그 추운 겨울 꽁꽁 언 땅속에서 얼어 죽지 않고 살아 이 여린 꽃을 피우다니 장하기도 하지. 다시 일어나 걷다 뒤돌아보면 어느새 노란 꽃다지꽃이 봄바람 속에 종종종 따라온다.

앞산엔 어느새 산벚꽃 따라 복숭아꽃이 붉게 피어나고 밭 둔덕엔 조팝꽃이 하얗게 무더기로 여기저기 피어난다. 곧 자운영 붉은 꽃이 푸른 풀밭 속에 피어나 저문 물에 붉게 어리리라.
---p. 73
나무는 누가 옮기지만 않으면 태어난 그 자리에서 죽을 때까지 한 걸음도 떼지 않고 산다. 그러면서도 나무는 세상에 필요한 것들을 만들어낸다. 나무는 여행을 다니지도 않고 그 어떤 치장도 않는다. 그러면서도 세상의 모든 아름다운것들을 부른다.
--- p.116
나는 평생 동안 강을 보며 살았다. 강물을 따라왔던 것들은 눈부셨고, 강물을 따라 가버린 것들도 눈부셨다. 아침 강물은 얼마나 반짝이고 저문 물은 얼마나 바빴던고. 그러면서 세월을 깊어지고 내 인생의 머리 위에도 어느덧 서리가 내렸다.
--- p.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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