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망연한 기분이라는 것을 눈치챘는지 치아키는 알랑거리는 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농담이야, 농담. 사실 내가 관심 있는 것은 마츠우라 야스에의 시체였어.”
“시체?”
“그래. 왜 이렇게 토막을 낸 걸까 싶어서. 그 이유 말이야.”
“이유라니. 이유가 뭐 있겠어?”
생각해보지도 않았기 때문에 나는 순간 말문이 막혔다.
“그런가?”
“그래. 뭐, 굳이 말하자면 야스에를 너무 증오한 나머지 그런 거 아닐까?”
“하지만 본 적도 없는 도시코에게도 같은 짓을 하려 했잖아.”
--- p.21-22
히라츠카 형사는 파이프 의자에서 몸을 일으키고 주변 공기를 휘젓듯이 양팔을 들어 보였다.
“말 그대로 밀실. 그것도 움직이는 밀실이란 말입니다. 밀실 안에서 범인은 대체 어떤 방법으로 여자를 살해했는가. 아니, 죽인 게 다가 아니죠. 순식간에 시체의 옷을 훌렁 벗기고, 머리와 팔다리를 절단했다고요, 주임님. 8층에서 1층까지 엘리베이터가 논스톱으로 내려오는 데 얼마나 걸린다고 생각하십니까? 딱 16초. 고작 16초라고요. 그사이 무슨 수로 이 정도의 작업을 완수한 것인가. 다들 짐작도 못하고 있어요. 정말이지 머리가 다 지끈거립니다. 도대체 범인은 무슨 마법을 썼을까요……?”
--- p.77-78
“으음, 어제 노리 군이 유치원에 간 시점에 인형은 어디 뒀는데?”
치아키는 벤치에서 일어나더니 전철길 맞은편 빌딩 앞 육교를 바라보았다.
“노리 군의 방이었대. 그러니까 이런 거지. 그제 수수께끼의 인물이 고미야마 씨 집에 몰래 들어왔다. 집에는 삿키와 노리 군이 있었지만, 그 사람은 개의치 않고 노리 군이 화장실에 들어간 사이 곰돌이 팔을 어머니의 재단용 가위로 절단하고, 그 김에 욕실 빨래 바구니에 들어 있던 욧짱의 손수건을 슬쩍해서 사라졌다. 그리고 다음 날, 그러니까 어제, 그 사람은 거실 유리문을 통해 다시 고미야마 씨 집에 침입. 2층 노리 군 방에서 팔을 다친 곰돌이를 가지고 나와 전날 슬쩍했던 욧짱의 손수건을 붕대 삼아 곰돌이 팔에 감아놓고 거실 소파에 두고 떠났다……. 이 사람이 대체 누구인가? 그리고 그 목적은 무엇인가? 이 두 가지 수수께끼를 풀면 오늘 밤에 초밥이든 스테이크든, 네가 원하는 것을 먹을 수 있어.”
“수수께끼의 인물, 그런 녀석이 과연 존재할까?”
--- p.157
“으음……, 붙어 있던 포스터가 전부 피해를 당한 거야?”
포스터 속에서 미소 짓고 있는 모델을 물끄러미 보며 치아키는 그 의도를 상상해보려고 했다. 과연, 레오타드 차림으로 화려하게 스트레칭 포즈를 잡고 있는 몸뚱이만 있을 뿐 머리 부분이 까맣게 비어 있다면 상당히 기분 나쁠 것이다.
“아무래도 전부 다 그런 건 아닌 모양이에요.”
“회사 접수처 같은 곳에 붙어 있는 건 무사했다는 것 같아요. 하지만 전신주나 주택 벽에 붙은 것은 거의 같은 장난을 당했대요.”
“몇십 장이나 되니까. 아니, 몇십 장이 아닐지도 모르지. 그것을 한 장씩, 그것도 머리만 잘라내러 다니다니, 보통 장난이라는 생각이 안 드는데.”
“바로 그거예요. 사실 이 모델, 우리도 아는 사람이에요.”
--- p.206
“두 시체의 머리를 잘라 바꿔놓는다…….”
나카고시 쇼이치라고 자신을 소개한 남자는 안경 너머 술에 취해 게슴츠레한 눈으로 치아키를 바라보았다.
“뒤틀린 논리에 따른 양식미라고 할 수 있을지도 모르죠. 하지만 거기에 지극히 합리적인 이유가 있다면 어떨까요? 어떻습니까? 다쿠미 씨는 뭔가 떠오르는 게 없습니까?”
“실제로 있었던 사건입니까?”
얼굴 전체로 봤을 때 약간 언밸런스할 정도로 동그란 눈동자의 움직임을 흥미진진하게 관찰하면서 치아키가 술을 입에 머금었다.
“실제로 일어났던 사건입니다. 극히 최근에요.”
“저……, 현직 형사분이 일반 시민과 그런 얘기를 해도 됩니까? 게다가 이런 곳에서?”
치아키는 벌써 취기가 도는 듯 이자카야 내부를 두세 번 천천히 둘러보았다.
--- p.375
어느 작가분이 본격 미스터리, 특히 신본격이라 불리는 작품들이 이상하게 저평가되는 현상을 한탄하셨죠. 그분 말씀이, 약간의 트릭을 집어넣어 완성하고 머리 없는 시체를 널브러뜨리는 것만으로 미스터리를 쉽게 쓸 수 있는 것쯤으로 얕보고 있다더군요.
머리 없는 시체만 나뒹굴면 미스터리는 쉽게 쓸 수 있다, 항간에는 그런 식으로 인식되고 있는가 싶어, 치밀하고 교묘한 논리가 뒷받침된 ‘해체물’을 편애하는 나로서는 조금 충격적이었습니다. 그 작가분의 한탄이, 주제넘지만 절실하게 와 닿았습니다. 그렇다면 내가 걸작을 써서 그런 어이없는 오해를 풀어주리라 속으로 결심했던 것입니다, 하고 마무리 지으면 후기로서 더없이 멋있겠지만, 실은 정반대였습니다.
나는 이렇게 생각했습니다. 그래, 머리 없는 시체를 내놓기는 쉽다고 사람들은 생각하는구나. 그럼 머리 없는 시체가 나오는 작품은 쓰지 않는 편이 좋지 않을까 하고요. 한심하지만 진심으로 그렇게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동시에 문득 묘한 생각이 떠올랐습니다.
머리 없는 시체가 하나뿐이라면 간단하다고 여길지 모르지만, 터무니없이 여기저기서 튀어나오는 이야기라면 어떨까 하고요.
--- p.408-40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