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수가 서영을 처음 만난 곳은 삼척 소재의 어느 병원 수술실 앞에서이다. 아내 수진의 교통사고 소식을 듣고 허둥지둥 달려왔을 때, 그녀 역시 남편 경호의 사고 소식을 듣고 달려와 초조하게 수술이 끝나기를 기다리고 있었던 것. 경찰서에서 다시 만났을 때 두 사람은 뭔가 석연치 않은 느낌에 사로잡히는데…… 인수와 서영은 사고 당시 두 사람의 소지품을 찾는 과정에서 휴대전화기의 문자메시지와 디지털 카메라에 저장된 동영상을 통해 자신들의 아내와 남편이 불륜의 관계였음을 알게 된다. 두 당사자는 의식불명인 가운데, 배우자에 대한 사랑과 믿음이 확고했던 인수와 서영은 배신감으로 인한 상처로 고통스러워한다. 조명 오퍼레이터인 인수는 일손이 안 잡히기도 했지만, 어쨌든 아내의 병간호를 해야 했기에 병원 옆 모텔에 장기 투숙하게 된다. 서영 역시 그 모텔에 투숙하고 있었는데…… 서로의 깊은 상처를 알고 있는 두 사람은 동병상련의 마음으로 서로를 지켜본다. 그러던 어느 날, 곤드레만드레 취한 인수가 ‘얘기 좀 하자’며 서영의 방으로 찾아오고, 다음 날 서영의 방에서 깨어난 인수는 ‘냉장고에 물 있습니다’라고 적힌 서영의 메모를 읽고 그 배려의 마음을 읽게 된다.
교통사고 당시 가장 큰 피해를 입은 트럭 운전사가 결국 죽었다는 소식을 듣고 두 사람은 땅끝마을까지 문상을 가게 된다. 사고를 낸 배우자로서 상주로부터 고초를 겪고 돌아오는 길에 서영은 내면 깊숙한 곳에서부터 치솟아 오르는 슬픔을 토해내고, 이를 말없이 지켜보는 인수…… 그리고 다시 삼척으로 돌아오는 길에 서영은 인수가 운전하는 차 안에서 오랜만에 깊고 편안한 잠을 잘 수 있었다. 사랑의 배신감과 그로 인한 상처를 견뎌야 한다는 현실을 받아들이는 순간, 불면의 고통 역시 이길 수 있었던 것. 그날 이후 두 사람은 서로에 대해 보다 깊은 관심과 배려를 하는 사이로 발전하고……
어느 날 두 사람은 함께 술을 마시다가 “우리 사귈래요?” 하는 말을 나누기도 한다. 왠지 끌리는 마음, 좋아하는 마음, 그래서 서로의 행동반경을 서로 지켜보게 되는 마음, 그러나 배우자들의 불륜에 대한 보복으로 보일 수밖에 없을 오랜 금기를 넘어설 수 없다는 죄의식 사이에서 두 사람의 갈등은 지속된다. 그러면서 불륜을 저지른 배우자들의 마음도 조금은 이해할 수 있겠다고 여겨지던 어느 날, 그리고 병원 옆 공원에서 수명이 오래된 나무들을 바라보며 기나긴 생(生)을 느끼던 그날, 인수는 용기를 내 서영의 볼을 만지지만 서영은 무너지게 될 자신이 두려워 그의 손을 떼어낸다.
그로부터 다시 서먹한 관계가 된 두 사람…… 그러나 인수가 일 때문에 서울로 올라왔던 날, 뒤따라 올라온 서영은 인수에게 전화를 걸게 되고, 한강변을 걷던 두 사람은 서로를 받아들이는 의미의 입맞춤을 나누게 된다. 그리고 그들(경호와 수진)도 이런 망설임을 겪으며 금기의 장벽을 넘었으려니, 생각하게 된다. 그들도 이렇게 사랑했을까…… 그로부터 얼마 뒤, 동해안의 도로를 달리던 인수와 서영은 말없는 동의로 호텔 방에 들게 된다. 금기를 깨는 행위, 음악 소리·빛·감각의 향유를 느끼는 치명적 쾌락을 경험한 두 사람은, 금기와 쾌락과 응보에 대한 기억을 나누어 갖는다.
그런데 5억 3천만 년 동안 만들어졌다는 환선굴에 함께 갔던 그날, 인수는 수진이 깨어났다는 전화를 받고 황급히 병원으로 돌아가고, 서영 혼자 동굴에 남게 된다. 그후 수진은 깨어나 차츰 회복되지만 경호의 상태는 점점 불안정해지는 상황이 지속된다. 그리고 인수와 서영의 사랑에 대한 미련과 죄의식이 깊어지던 어느 날, 또한 서영이 경호를 서울의 큰 병원으로 옮길지 결단을 내려야 하는 어느 날 아침, 인수가 잡아끈 손길을 따라 서영은 호텔로 향하고 하룻밤을 보내게 된다. 그리고 이제 사랑을 잃는다 해도 분노하지 않으며 인수를 떠날 수 있겠다 싶은 다음 날…… 경호의 죽음 앞에 모든 감정은 무너져 내리고 만다.
그리고 1년 뒤, 수진과의 관계를 되돌릴 수 없었던 인수는 결국 이혼을 했고, 서영은 출판사에 취직해 일을 시작했다. 그 4월의 봄날 밤, 조명 작업을 하던 인수와 출판사 창밖을 내다보던 서영의 눈앞에 각기 눈이 내리고…… 두 사람은 봄눈이 인상적이던 강원도의 한 소도시를 떠올린다. 그리고 두 사람은 추억이 깃든 그 소도시를 향해 각자 떠나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