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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도 한때는 자작나무를 탔다

나도 한때는 자작나무를 탔다

: 제2회 한겨레문학상 수상작

한겨레문학상-02이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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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품목정보
발행일 1997년 10월 31일
쪽수, 무게, 크기 333쪽 | 148*210*30mm
ISBN13 9788984315860
ISBN10 898431586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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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소개 (1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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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호와 헤어지고서 수민은 결심했었다. 이제 내 눈으로 세상을 보자고. 인간은 자율적이고 주체적이어야 한다고 그렇게 외쳤으면서도 정녕 자신은 세상에 두 발로 서 있었던가. 배려란 이름으로 끊임없이 그의 눈치를 봤고, 실천이란 이름으로 그와 행동을 같이 했었다. 그렇게 말도 많고 탈도 많던 운동권의 사상논쟁에서도 수민은 언제라도 한 번 자신의 목소리를 가졌던가. 그가 보는 대로 이 사회의 물적단계를 보았고, 모순 관계를 보았고 그의 평가대로 인간들을 재단했으며 그가 받아들인 사상을 수민의 것인 양 행세했었다.

그렇게 살아온 세월이었다고, 그러나 이제는 더 이상 그렇게 살지 않겠다고 스스로에게 맹세했었다. 이제 이 두 눈으로 세상을 보고 이 두 발로 세상 속으로 걸어가겠다고. 그러나 두 발로 걷기는 커녕 걸음마도 제대로 떼지 못할 때 다시 규를 만났고 이번엔 그의 눈으로 세상을 보고 그 품에 안주하기를 꿈꾸지 않았던가. 한쪽 끝에서 맞은 편 다른 쪽 끝으로, 중심에는 한 번도 다다르지 못한 채 허랑한 몸짓만을 계속하는 천칭처럼 어지러운 세월이었다. 혼자 힘으로 일어나야 한다고 마음 속으론 늘 소리쳤으면서도...
--- pp.327-328
'우리 사회에서 로자 같은 여자가 나오려면 훗, 백 년은 기다려야 할까. 이런 세상에선 희민이나 하나나 두리가 커도 로자처럼 자유로운 인간을 될 수 없을 거야. 유교적 구습과 자본주의적 가부장제가 만나 기형적인 모습으로 뒤틀린 우리 사회에서는....내가 진정으로 로자가 되길 원했다면, 결혼제도 속에 편입하지 말았어야 했어. 우리는 서구의 이성과 합리주의 그리고 민주주의 이념을 교육받은 세대야. 나는 모든 인간은 평등하다고 믿는 그런 머리를 가지고서 조선시대같은 가부장제에 적응하려고 하는 거야...수민아, 이런 속에 분열된 정신을 갖지 않는다면 그건 도리어 이상체질일 거야.'
--- p.294
마누라와의 산행 때문에 동지와의 약속을 지켜낼 수 없었던 철호는 여관방의 침대에 눕자마자 수민에게서 등을 돌렸다. 그의 등허리는 한번 오르기를 소망할 수조차 없는 험산 준령의 바위처럼 수민을 거부하고 있음이 역력했다. 수민도 그 등에서 등을 돌렸다. 그와 함께 설악에 왔다는 사실만으로도 들떠서 어린아이처럼 쉴 새 없이 들까불었던 자신의 어리석음이 부끄럽다 못해 치욕스러워 돌로 발등이라도 내리치고 싶은 심정으로.
--- p.92
또 한여자가 있었다. 수민은 그녀도 아리랑 고개의 여인이라고 이름붙인다. 그녀는 고향 집 근처 고속도로에서 달려오는 트럭에 몸을 내던졌다. 또 한 여자가 있었다. 그녀도 아리랑 고개의 여인이라고 명명한다. 그녀는 하필이면 모진 바람 부는 한겨울에 제 집 아파트 베란다에서 떨어졌다. 또 다른 많은 여인들이 있을 터이다.
--- p.9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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