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세키와 루쉰의 앞에 높인 과제는 둘이면서 하나였던 셈이다. 두 사람 모두 '뒤쳐진 동양'에서 출발하여 안이한 서양 모방을 거부하고 독자적인 근대의 창출을 목표로 하였던 것이다. 다만 차이는 있다. 즉 루쉰을 포함한 중국인에게는 수천 년래의 전통이 수갑과 족쇄가 되어 보다 무겁게 들러붙어 있었던 데 비해, 소세키의 발 밑에는 제국주의로 직결하는 의사근대(疑似近代)가 압도적인 형국으로 진행되고 있었다.
--- p.107
내가 관심을 두고 있는 문제는 이른바 비교문학론이 아닙니다. 나쓰네 소세키라는 일본의 근대가 낳은 가장 뛰어난 문학자를 통하여 일본 근대의 특수한 조건을 탐색해보고, 그 특수한 조건하에서 소세키가 치뤄야 했던 악전고투의 흔적을 뒤돌아보고자 합니다. 그때 루쉰의 악전고투가 하나의 거울 역할을 할 수 있을 것이고 역의 경우도 성립할 수 있을 터입니다. 이렇게 말하는 것은 두 사람에게는 후진국에 있어서 근대화라는 공통의 과제가 맡겨져 있었기 때문입니다.
--- p.248-249
『마음』을 쓰고 난 수개월 후에 소세키는 학습원(學習院)에서 예의 「나의 개인주의」라는 제목의 강연을 행한다. 1914년(大正 3) 11월 무렵이다. 이 강연에서 그가 말한 자기본위에 관하여 서장(序章)에서 이미 얘기한 바 있다. 그곳에서 나는 바로 이 자기본위야말로 소세키문학의 근저에 있는 사상태도일 수밖에 없다고 했다.
반복하자면 자기본위(自己本位)란 압도적인 서양문화 앞에 움츠리고 있던 소세키가 '문예에 대한 자신의 입각지를 견고히 하기 위해', '견고히 한다기보다는 새롭게 건설하기 위해' 필요로 했던 절박한 입장이었다. 그것은 남의 흉내나 내는 타인본위(他人本位)와 대치되는 말이다. 소세키는 자기본위에 도달하기 이전 타인본위였던 무렵의 자신을 '뿌리 없는 부평초와도 같이 그 근처를 아무렇게나 떠다니고 있었다'라 형용하고 있다. 이 장의 모두(冒頭)에서 제시했던 한시의 일절, '이리저리 동서로 오가는 모습 부평초와 같구나'에 보이는 '부평초'와 동일한 말을 여기에서 사용하고 있다는 것은 요시카와 고지로의 가설이 가설에 그치지 않게 하는 하나의 유력한 증거가 될 것이다.
이리하여 자기본위라는 네 글자로 새로이 마음을 가다듬은 소세키는 독자적은 문학관을 세우기 위한 『문학론』에 전력을 기울인다. 이 장대한 기획은 '여러 가지 사정'으로 도중에 좌절되긴 했지만, 그가 기도했던 바는 창작을 통하여 실현되었다. 『나는 고양이로소이다』에서 『마음』까지 써 온 소세키에게는 이 점에 관한 한 대단한 자신감이 있었던 것처럼 보인다. 이와 관련하여 소세키는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 '그렇지만 자기본위라는 그때 품었던 나의 생각은 지금도 변함이 없습니다. 아니 해가 지남에 따라 점점 강해집니다. 저작 사업(『문학론』의 기획을 일컫는다-인용자)은 실패로 끝나고 말았지만, 그때 확실하게 파악했던 자기가 주인이고 남은 손님이라는 신념은 오늘날 나에게 비상한 자신감과 안도감을 주고 있습니다. 나는 그 연속선상에서 오늘도 이렇게 살아내고 있는 것이 아닌가라는 생각이 들 정도입니다.'
--- pp.203-204
『마음』을 쓰고 난 수개월 후에 소세키는 학습원(學習院)에서 예의 「나의 개인주의」라는 제목의 강연을 행한다. 1914년(大正 3) 11월 무렵이다. 이 강연에서 그가 말한 자기본위에 관하여 서장(序章)에서 이미 얘기한 바 있다. 그곳에서 나는 바로 이 자기본위야말로 소세키문학의 근저에 있는 사상태도일 수밖에 없다고 했다.
반복하자면 자기본위(自己本位)란 압도적인 서양문화 앞에 움츠리고 있던 소세키가 '문예에 대한 자신의 입각지를 견고히 하기 위해', '견고히 한다기보다는 새롭게 건설하기 위해' 필요로 했던 절박한 입장이었다. 그것은 남의 흉내나 내는 타인본위(他人本位)와 대치되는 말이다. 소세키는 자기본위에 도달하기 이전 타인본위였던 무렵의 자신을 '뿌리 없는 부평초와도 같이 그 근처를 아무렇게나 떠다니고 있었다'라 형용하고 있다. 이 장의 모두(冒頭)에서 제시했던 한시의 일절, '이리저리 동서로 오가는 모습 부평초와 같구나'에 보이는 '부평초'와 동일한 말을 여기에서 사용하고 있다는 것은 요시카와 고지로의 가설이 가설에 그치지 않게 하는 하나의 유력한 증거가 될 것이다.
이리하여 자기본위라는 네 글자로 새로이 마음을 가다듬은 소세키는 독자적은 문학관을 세우기 위한 『문학론』에 전력을 기울인다. 이 장대한 기획은 '여러 가지 사정'으로 도중에 좌절되긴 했지만, 그가 기도했던 바는 창작을 통하여 실현되었다. 『나는 고양이로소이다』에서 『마음』까지 써 온 소세키에게는 이 점에 관한 한 대단한 자신감이 있었던 것처럼 보인다. 이와 관련하여 소세키는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 '그렇지만 자기본위라는 그때 품었던 나의 생각은 지금도 변함이 없습니다. 아니 해가 지남에 따라 점점 강해집니다. 저작 사업(『문학론』의 기획을 일컫는다-인용자)은 실패로 끝나고 말았지만, 그때 확실하게 파악했던 자기가 주인이고 남은 손님이라는 신념은 오늘날 나에게 비상한 자신감과 안도감을 주고 있습니다. 나는 그 연속선상에서 오늘도 이렇게 살아내고 있는 것이 아닌가라는 생각이 들 정도입니다.'
--- pp.203-20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