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평론집은 이렇게 되어 있습니다
이 책은 모두 2부로 되어 있습니다.
여기서 1부는 주로 ‘동시’에 대해 말하고 있습니다.
모두 알다시피 우리 아이들은 ‘동시’를 동화처럼 재미있게 또 감동을 받으며 읽지 않습니다. 초등학교 6년 동안 160편 남짓 되는 ‘동시’를 배워도 우리 아이들은 스스로 동시집을 찾아 읽지 않습니다. 아마 초등학교 교과서에서 동시를 가르치지 않는다면 우리 아이들은 ‘동시’라는 장르조차도 모를 겁니다. 동시 작가가 아무리 글을 써서 발표해도 어느 어린이 하나 그걸 읽지 않는다면 대체 그 ‘동시’는 왜 쓰는지……. 하지만 그 때도, 지금도 이런 형편은 마찬가지입니다.
이오덕 선생님은 왜 이렇게 되어 버렸는지, 그 책임은 누구에게 있는지, 이런 것을 1부에서 아주 자세히 밝히고 있습니다.
〈시정신과 유희정신〉에서는 ‘동시’를 쓰는 ‘정신’이 어떠해야 하는지, 진정 아이들에게 사랑받는 ‘동시’가 되기 위해서 우리 동시 작가들이 하루빨리 버려야 할 게 뭔지 말하고 있습니다. 선생님은 그 버려야 할 정신 가운데 가장 첫 번째로 ‘유희정신’을 들고 있습니다.
선생님은 “아기의 귀여움이 유희 대상이 되고, 심리가 유희의 대상이 되고, 풍경이 완상(玩賞)의 대상이 되는 이 유희의 세계, 장난감의 세계가 우리 동요?동시의 90퍼센트(%)를 차지하고 있다.”(〈시정신과 유희정신〉 27쪽)고 말합니다. 그런데 동시 작가들이 쓰는 이 ‘유희 세계’란 것도 잘 들여다보면 사실 “아이들의 놀이를 그들의 살아 있는 현실의 한 토막에서 싱싱한 모습 그대로 잡을 줄을 모르고, 잡은 것이 아니다. 정말 아이들의 놀이 생활조차 붙잡은 것이 없다. 아이들의 놀이가 아니고 시인 자신의 공상적 유희 상태를 그려 낸 것이다. 그들은 완전히 아이들과 유리된 딴 세상에서 살고 있다. 아이들을 인형으로, 위안물로 여기는 어른 중심의 개인주의적이고 향락주의적인 유희정신으로 작품을 매만지고”(28쪽) 있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러니 우리 아이들이 동시 작가들이 쓰는 ‘동시’를 외면할 수밖에 없지 않느냐 합니다.
〈동시란 무엇인가〉에서는 어른이 아이들에게 써 주는 ‘동시’와 어린이들이 쓰는 ‘시’(선생님은 어른이 쓰는 ‘동시’와 구별해서 ‘어린이 시’라고 합니다-51쪽)가 어떻게 다른지, 여기서부터 시작해서 ‘동시’에 대해 ‘누가 쓰는가’, ‘누구를 위해 쓰는가’, ‘무엇을 어떻게 쓰는가’ 이렇게 장을 나누어 설명합니다. 이 장을 읽으면 우리 나라 어린이들이 왜 어른들이 쓰는 ‘동시’를 따라 쓰고 흉내내고 있는지 알 수 있습니다. 그리고 우리 나라 초등학교 교실에서 왜 아직까지도 어른들이 쓰는 ‘동시’와 ‘어린이 시’를 구별하지 못하고 어른들이 쓰는 ‘동시’를 쓰게 하는지도 알 수 있습니다.
〈부정의 동시〉에서는 60년대에 가장 많은 활동을 하였고 동시인들에게 큰 영향을 끼친 박경용(1940~ )과 신현득(1933~ )의 동시를 들면서 이 동시에서 우리가 무엇을 부정해야 하는지, 무엇을 얻어야 하는지 말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이 두 시인 이후 후배 동시인들은 이 두 시인에게서 부정되어야 할 것만 알뜰히 붙잡고 있다 하면서 걱정합니다.
〈진실과 허상〉은 이 세상을 본 대로 느낀 대로 쓰지 않고, 있지도 않은 현실을 예쁜 말로 다듬어 쓰는 짓을 비판하고 있습니다. 선생님은 이런 동시를 ‘허상의 동시’라고 하면서, 이런 허상의 동시는 있을 수 없는 일을 억지로 지어 쓰기 때문에 결국 이 세상 아이들이 처해 있는 현실과 이 시대 농촌 현실을 왜곡할 수밖에 없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표절 동시론〉과 〈모작 동시론〉은 말 그대로 남이 쓴 시를 표절하거나 모작하여 쓴 시를 비판하고 있습니다. 아주 보기글을 들어 가면서 말하고 있기 때문에 읽다 보면 적잖이 놀랄 수밖에 없습니다. 그리고 왜 이런 표절?모작 시가 다른 문단도 아닌 어린이문학계에서, 그것도 동시 문단에서 나올 수밖에 없는지, 그 까닭도 당시 동시 문단의 흐름을 보여 주면서 낱낱이 짚어 주고 있습니다.
〈아동문학 작가의 아동 기피1?2〉는 이상현(1940~ ) 씨의 〈동시의 기능분화〉(문학사상?1975년 6월)와 〈네가티브적 시론을 추방한다〉(한국일보?1975년 8월 12일) 이 두 글을 비판하는 글인데, 이 글은 이 두 글의 비판도 비판이지만 우리 동시 작가들이 얼마나 우리 아이들의 현실을 모른 척하고 있는지, 어떻게 우리 아이들의 삶을 애써 기피하고 있는지 하나하나 따져 살피고 있는 글입니다.
2부는 1부와 달리 어린이문학의 여러 문제를 다루고 있습니다.
선생님은 〈책 끝에〉에서 이런 말을 합니다. 이 책에 수록한 논문 중 “가장 근자에 발표했던 것이 〈열등의식의 극복〉인데, 이것은 지금까지 논급(論及)해 온 여러 가지 문제 중에서도 가장 핵심 되는 부분이라 할 수 있고 내가 도달한 결론”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제2부 첫머리는 〈열등의식의 극복〉으로 시작합니다.
〈동심의 승리〉는 이윤복의 일기 문집 《저 하늘에도 슬픔이》(김광배 그림. 신태양사. 1964)를 분석한 글입니다. 이 일기 문집을 야스모도 스에꼬가 쓴 일기 문집 《니안짱 にあんちゃん》(‘둘째 오빠’라는 일본말), 안네 프랑크(Anne Frank 1929~1945)가 쓴 《안네 프랑크의 일기 The Diary of Young Girl Anne Frank》(1947)와 견주어 가면서 이 일기가 얼마나 솔직하고 절실한 글인가를 말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우리 어린이문학이 이 일기에 나타나 있는 진정한 ‘동심’을 찾아 가졌으면 좋겠다 합니다.
〈아이들은 어떤 동화를 재미있게 읽는가〉는 선생님이 초등학교에서 아이들을 가르치실 적에 당시 아이들이 어떤 동화를 재미있게 읽는가 조사 연구한 글입니다. 이 글은 선생님의 꼼꼼한 성격을 엿볼 수 있는 글이기도 합니다.
〈아동문학과 서민성〉에서는 강소천(1915~1963) 김요한(1927~1997) 마해송(1905~1966) 이주홍(1906~1987) 이원수(1911~1981) 이현주(1944~ ) 권정생(1937~ )의 작품을 들면서 그 작품에 서민성이 어떻게 그려지고 있는가를 말하고 있습니다.
〈아동문학의 문제점〉은 그 동안 선생님이 다루었던 서민성?동시?동심?전원문학?표절과 모작 문제를 다시 정리한 글이고, 〈어린애 흉내와 어른의 넋두리〉는 동시?동화 작가들이 어린애를 흉내내고 자기들의 기분이나 넋두리를 풀어놓는 글이 자라나는 우리 아이들에게 어떤 영향을 주고 있는지 분석한 글입니다.